취업사기 걸려 성매매 강요받던 피해여성
경찰, 6인실 병실서 공개조사...권리 고지도 안해
인권위 “인신매매 피해자 여부 먼저 확인했어야”

ⓒ홍수형 기자
ⓒ홍수형 기자

경찰이 성매매 단속과정에서 추락사고로 심하게 다친 이주여성을 여러 명이 있는 병실에서 신문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태국 출신 A씨는 19세였던 2018년, 마사지 업소에 취업할 목적으로 한국에 왔다. 그러나 알선업체에 여권을 빼앗기고 성매매를 강요받았다.

2020년 2월, A씨는 경찰의 성매매 단속을 피하려다 오피스텔 건물 4층에서 뛰어내려 온몸에 골절상을 입을 정도로 크게 다쳤다. 응급실을 거쳐 6인실 입원실에 실려 갔는데, 경찰이 찾아와 다짜고짜 성매매 혐의를 조사했다. 피해자는 “당시 부상이 심했고, 입원실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경찰은 어떠한 고려도 없이 바로 성매매 사실, 가격, 콘돔 사용여부 등 성매매 혐의에 대해 물었다. 의지할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꼈다”고 밝혔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12일 “경찰이 성매매 단속과정에서 추락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주여성을 사고 당일 다인실 병실에서 조사해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신뢰관계인 동석과 영사기관원과의 접견·교통에 대한 권리 고지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의 인격권,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조사를 통해 A씨가 태국에서 에이전시로부터 허위의 근로 정보를 받고 한국에 입국했으며, 태국 국적의 에이전시에 여권을 빼앗긴 채 성매매 일을 하는 등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된 점을 확인했다.

경찰은 “A씨가 조사 중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주장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으나, 인권위는 “이주여성인 피해자가 당시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접근성이 낮으며, 인신매매에 따른 성 착취 피해에 쉽게 노출될 위험이 큰 집단에 속하므로 조사 강행 전 인신매매 피해자 여부에 대한 식별조치가 선행될 필요가 있었다”고 봤다.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인신매매 피해자에 대한 식별절차·방식 및 보호조처 등 관련 규정 및 매뉴얼을 세부적으로 마련하고 일선 경찰서에 교육할 것과 △이주여성 등 취약한 계층을 수사할 때 신뢰관계인의 동석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관기관 및 단체와 연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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