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검사, 엄마, 작가입니다
우리는 검사, 엄마, 작가입니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21.04.17 09:52
  • 수정 2021-04-17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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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늘도 ①]
에세이집 『여자 사람 검사』 펴낸
9년차 박민희·서아람 검사 인터뷰
엄마로 살며 잃어버린 ‘나’ 찾으려 쓴 글
평검사·여성 검사들이 쓴 첫 책 됐다
육아휴직 마치고 올 초 복직
안 힘드냐고? 검사는 하루면 몸 풀려
엄마 되니 사건 보는 눈 깊어져
‘금녀지대’ 검찰은 옛말...여성들끼리 으쌰으쌰
더 많은 여성·아빠 검사들 이야기 나오길

[엄마는 오늘도] 일, 육아, 나의 삶. 모두 잘 해내려 분투하고, 좌절하고, 다시 힘을 내는 워킹맘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멋지고 유능한 워킹맘’ 신화보다, 울고 웃는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비슷한 길을 걷는 여성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인터뷰 내용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왼쪽부터) 8일 서울 서초구 우리동네서재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서아람(35) 수원지검 형사부 검사, 박민희(35) 수원지검 안양지청 공판검사. ⓒ여성신문
(왼쪽부터) 8일 서울 서초구 우리동네서재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서아람(35) 수원지검 형사부 검사, 박민희(35) 수원지검 안양지청 공판검사. ⓒ여성신문

검사님, 작가님, 어머님~. 사람들은 우리를 이렇게 불러요. 우리가 누구냐고요? 박민희(35) 수원지검 안양지청 공판검사, 서아람(35) 수원지검 형사부 검사입니다. 올해 9년 차지만 여전히 부장님의 결재 반려에 한숨 쉬는 평범한 직장인들이죠. 아이 키우느라 고민 많은 엄마들, 커리어를 고민하는 여성들이기도 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해요. 변호사시험 동기인 김은수(36·필명) 검사와 함께 3월 말 우리의 일과 삶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 『여자 사람 검사』를 펴냈습니다.

평검사들, 그것도 여성 검사들이 직접 진솔한 이야기를 책으로 낸 건 처음입니다. 보수적인 조직 특성상 목소리를 내려니 조심스러웠는데 많은 격려를 받았어요. 여자 선배들은 “남편도 모르는 내 마음을 너희들이 알아줬다”고 하셨죠. 박범계 법무부 장관님, 지휘부 선배들, 주변 남자 검사들도 응원해주셨고요. 가족들은 ‘네가 이런 일을 해왔구나’, ‘목소리 내는 모습이 멋지다’며 지지해줬어요. 남편이요? 든든한 지지자죠. 우리가 인터뷰하는 동안 휴가 내고 집에서 애들을 보고 있어요.

차기작도 준비하려는데 당장은 글 쓸 틈이 없네요. 우리 둘 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올해 초 복직했거든요. 힘들지 않냐고요? 몸 푸는 건 하루면 충분해요. 검사는 자리에 앉자마자 검사가 돼야 합니다. 사건이 밀려드는 한 검찰청엔 휴일이 없어요. ‘어리버리’해서도, 판단을 미룰 수도 없어요. 

사실 검찰청이 너무 그리웠어요. 아이는 사랑스럽고 경이로운 존재지만, 정신없는 육아 속에서 ‘나’는 점점 사라졌어요. 다른 건 모두 사라지고 ‘엄마’로서의 정체성만 남은 듯했죠. 회사 앞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사서 사무실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진상 피의자와 고래고래 소리 질러가며 대면 조사하고 싶었어요. 밥 먹듯 야근하던 날들, 부장님의 잔소리마저 그리웠어요.

그래서 글을 썼어요. 아이가 잠든 새벽이면 책상 앞에 앉았어요. 글 쓰는 시간이 소중했어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죠. 아이가 잠에서 깨면 한 손엔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론 노트북을 두드렸습니다. 젊은 날의 우리들 이야기를 쓰고 돌아보는 게 즐거웠어요, 검사라는 직업은 참 가치 있는 일이구나. 돌아가면 또 열심히 일하기로 마음먹었죠.

검사는 거대 악에 맞서는 사람들 아니냐고요? 그건 영화·드라마 속 얘기에 가깝고요. 현실 검사들은 대개 중고 사기, 악플, 온라인 도박, 절도 같은 민생 사건 처리에 바빠요. 서 검사도 요즘 사행행위. 교통사고, 가정폭력 등 민생 사건을 주로 담당합니다. 가정폭력 당사자들의 사연을 듣고, 협의이혼·소송 등 여러 선택지 중 무엇을 원하는지 등을 확인하죠. 얼마 전 동갑내기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사건을 맡았는데요. 같은 엄마 입장에서 댁의 아이가 지금 몇 개월이냐, 얼마 정도 지나면 편해질 거다 등등 얘기하다 보니 대화가 술술 풀리더군요.

박 검사는 법원 합의부에서 근무하면서 아동학대 사건, 고액 사기 사건 등 중범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검사가 나쁜 사람을 처벌하는 건 당연한 거고요. 억울한 사람들을 도울 때, 불기소할 때가 더 보람차요. 책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지만, 지자체 보조금을 마음대로 사용한 혐의로 고발당한 목사님의 결백을 밝힌 적 있어요. 청소년 사업을 꾸준히 펼쳐오셨고, 범죄전력도 전혀 없었죠. 계좌 6~7개를 다 살피고 사용처가 불분명한 부분은 모두 확인했어요. 결국 목사님 말이 맞다는 걸 밝혔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요.

엄마가 되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사건도 가벼이 다루지 않게 됐어요. 아무래도 아동 관련 사건에 더 마음이 가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가 피해자인 사건과 일반 성인이 피해자인 사건의 차이를 머리로만, 법조문으로만 익히고 이해하고 있었어요. 지금은 가슴으로 이해해요.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어른들이 지킬 수 있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서아람, 박민희, 김은수 검사의 에세이집 『여자 사람 검사』(라곰) ⓒ라곰
서아람, 박민희, 김은수 검사의 에세이집 『여자 사람 검사』(라곰) ⓒ라곰
(왼쪽부터) 8일 서울 서초구 우리동네서재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서아람(35) 수원지검 형사부 검사, 박민희(35) 수원지검 안양지청 공판검사. ⓒ여성신문
(왼쪽부터) 8일 서울 서초구 우리동네서재에서 여성신문과 만난 서아람(35) 수원지검 형사부 검사, 박민희(35) 수원지검 안양지청 공판검사. ⓒ여성신문

워킹맘으로, ‘엄마 검사’로 산다는 게 쉽진 않아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몸살이 나도 파스 붙이고 진통제 맞아가며 일해요. 2년마다 인사발령이 날 때면 ‘또 어디서 시터(육아도우미)를 구하나’ 한숨부터 나죠. 검사 파견·유학 등으로 결원이 생겨서 확 바빠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워킹맘들은 눈치를 보게 되죠.

그래도 여성들끼리 함께 일하며 으쌰으쌰 서로 돕는 분위기입니다. ‘금녀지대’ 검찰은 옛말이에요. 요즘 여성 검사가 조직의 32%(700여 명)입니다(2020년 9월 기준). 고위직은 90% 이상이 남성이지만, 실무 현장에선 여성의 활약이 크게 늘었어요.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100% 여성인 곳도 드물지 않아요. 우리 부서도 그래요. 여성들끼리 사건 이야기, 시시콜콜한 일상과 육아 고민을 나누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려요. 유연근무제, 모성보호휴가제, 육아시간 등 일·가정 양립 제도 활용도 편리해졌어요. 많은 여성 검사들이 아이 키우며 일하고 승진까지 하고 있고요. 우리도 꾸준히 열심히 일하다 보면 위로 올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검사를 꿈꾸는 여성 독자가 있다면 꼭 이 말을 전하고 싶어요. 화려한 이미지만 보고 검사의 길을 택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어요. 하지만 범죄자에게 나쁜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소신을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약한 사람의 편에 서고, 사람들이 행복해질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는 일. 그런 일이 좋다면 한 번 도전해보세요. 더 평등하고 멋진 검찰을 만들기 위해 그때까지 저희도 열심히 노력할게요.

‘남자·아빠·사람’ 검사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우리 사회가 아직 잘 몰라서 그러지, 주말에 아이와 열정적으로 노느라 온몸에 파스 붙이고 출근하는 부장님, 야근 후 늦게 귀가해도 애들과 꼭 놀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빠 검사들도 많아요. 우리가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으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더 많은 검사들의 솔직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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