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생 김두리] 역사에서 생략된 여성들의 진짜 역사 이야기
[29년생 김두리] 역사에서 생략된 여성들의 진짜 역사 이야기
  • 최규화 작가
  • 승인 2021.05.07 08:50
  • 수정 2021-05-11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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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프롤로그
2014년 여름 포항 바다에서 김두리 여사(왼쪽)와 작가 ⓒ최규화
2014년 여름 포항 바다에서 김두리 여사(왼쪽)와 작가. ⓒ최규화

오래된 숙제를 끝냈다. 내 할머니, 김두리 여사의 삶 이야기를 채록한 때는 2017년 2월이었다. 할머니는 그때도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이셨다. 아마 그때쯤부터, 명절 때 할머니를 뵙고 오면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지 모른다’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거다. 마지막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할머니 이야기를 녹음해두고 싶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포항에 갔다. 3박 4일 동안 약 열 시간 분량의 구술을 녹음했다. 이야기는 한 번에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두 시간까지 이어졌다. 할머니께 그만한 기력과 총기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할머니는 식사를 하시다가도 불쑥, 텔레비전을 보시다가도 불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하지만 구술 채록을 마치고 나니, 솔직히 마음이 좀 풀어졌다. 회사 일은 늘 바빴고, 과외로 다른 책 작업까지 시작하게 됐다. 할머니 구술 기록 작업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렇게 한 해, 또 한 해 넘어가는 동안 마음의 짐은 점점 더 커졌다. 그러던 중 2020년 말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이 기록 작업을 하기 위해 사표를 썼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회사를 그만두면 가장 먼저 이 작업부터 끝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사실이다.

2021년 1월, 그렇게 4년 만에 숙제를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의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더 늦기 전에 숙제를 마쳐야 한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책상 앞에 붙들어두는 데는, 그런 책임감보다 ‘재미’가 더 큰 이유가 됐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를 독자들 앞에 내놓겠다는 생각도 못했을 거다.

할머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모노드라마 속 배우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할머니와 손자로 만나온 40여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구술자와 기록자로 만나니 할머니의 진면목이 반짝반짝 빛났다. 가끔은 밥 먹는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낡은 서랍 속에서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우리 할머니에게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니! 지난 13년 동안 기자로 먹고살면서, 매일같이 남의 이야기를 듣고 쓰는 게 내 일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도 기록하지 않는 것은 직업적 책임감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생각도 했다.

할머니의 시동생, 즉 나의 작은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전 민간인 학살로 돌아가셨다. 이전까지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그 죽음에 대해 자세히 듣지 못했다. 아마도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이 두려우셨을 거다. 할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뜬 자식들 이야기도 그렇다. 숨기고 싶은 이야기, 아프고 힘들어서 그만 잊고 싶었던 이야기도 많았을 거다. 하지만 내게는 그 모든 이야기가 할머니가 내게 주신 가장 값진 유산 같았다.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

사실 작업 초반에는 사투리 기록에 대한 욕심 때문에 무척 답답한 날들을 보냈다. 나도 대구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으니, 경상도 사투리를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한 착각이었다. 미디어 환경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은 우리 세대의 사투리와는 완전히 다른 말처럼 느껴졌다.

할머니의 말이 90년 전 포항 지역 사투리를 원형에 가깝게 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욕심을 냈다. 글자 하나하나, 최대한 할머니의 발음 그대로 활자로 옮기고 싶었다. 하나의 발음을 몇 번씩 반복해서 듣는 동안 작업 시간은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났다. 심지어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도저히 문자로 옮길 수 없는 음성들도 있었다. 약 2주 동안 그런 고생을 사서 한 끝에, 결국 모종의 ‘타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급하게 선택한 결혼, 눈물 속에 견딘 매운 시집살이, 전쟁과 함께 찾아온 가족의 비극, 세상이 바뀌어도 평생 벗지 못한 지긋지긋한 가난……. 이렇게 간단히 써놓으면 그 시절 여성들의 흔한 삶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시절 그렇게 흔했을 이야기는 왜 그만큼 흔하게 기록되지 못했을까. 바로 이 질문에서, 이 기록이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인구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은 숫자가 아니라 생애로 기억돼야 한다.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의 강을 건너, 역사에서 생략된 여성들의 진짜 역사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특히 할머니의 이야기는 개인의 생애를 넘어 공동체의 역사와 만나는 지점들이 많다. 할머니의 삶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위안부'와 강제징병, 그리고 해방 후 좌우대립과 민간인 학살,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들로 확장된다.

할머니의 생애를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현대사 연표에 한 줄 사건으로 기록된 일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는 어떤 모습의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혹독했던 시절의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하게 담고자 애썼다. 한 여성의 인생 이야기이자 같은 시대를 건너온 모든 여성들의 역사 이야기로 이 연재가 읽히기를 희망한다.

“구술사료란 사료로 이용될 수 있는 기록을 남기지 못한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서술에 참여하여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역사’ 혹은 ‘역사의 민주화’ 가능성을 열고 있다.”(<구술사> 한국구술사연구회, 선인, 2005년)

나는 한 여성의 생애를 글로 옮겼다. 하지만 그 작업은 한 여성만을 위한 일은 아니다. 독자들이 김두리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름도 얼굴도 내력도 다른 수많은 ‘김두리들’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많은 ‘김두리들’의 삶 또한 긍정과 존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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