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환승구역서 숙식하던 아프리카 출신 남성 A씨
정치적 박해 피해 지난해 2월 한국 도착했으나
난민신청 기회도 못 받아...오랜 공항 생활로 건강 악화
법원 “난민 신청자 공항 방치 행위는
인신보호법상 ‘수용’ 해당” 첫 판결

인천공항에서 423일간 난민생활을 이어온 아프리카인 A 씨가 법원의 판결로 지난 13일 한국땅을 밟게 됐다. 사진은 A씨가 인천공항에서 생활하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독자 제공)
인천국제공항에서 14개월 동안 갇혀 있던 아프리카 국적의 A씨가 법원의 판결로 423일만에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사진은 A씨가 인천공항에서 생활하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독자 제공)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인천국제공항에서 14개월 동안 갇혀 있던 아프리카 국적의 A씨가 법원의 판결로 423일 만에 공항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지난해 2월15일 고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A씨는 난민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항공권의 목적지가 다른 나라고 한국은 경유지인 ‘환승객’이라는 이유로 출입국관리소가 접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결국 1터미널 43번 게이트 앞 의자에서 쪽잠을 자며 버텨야 했다. 여행객이 주는 과자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화장실에서 씻어야 했다. 

인천지법은 앞서 지난해 6월 1심 판결에서 “법무부가 A씨의 난민 신청 기회도 주지 않은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A씨의 손을 들어줬지만, 법무부가 이에 불복해 항소를 진행하면서 2심이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환승구역에 대해 자유로운 통행과 출국이 가능해 수용상태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A씨의 공항 생활도 기약 없이 길어졌다.

하지만 13일 인천지법은 A씨가 공항 환승구역에 방치된 것을 사실상 출입국 관리소가 인신보호법상 ‘수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임시로 해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인천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고승일)는 13일 A씨가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낸 수용 임시해제신청 사건에서 “A씨의 수용을 임시로 해제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수용자 A씨는 난민 신청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환승구역을 벗어날 수 없으며, 환승구역에서 사생활의 보호·의식주·의료서비스 등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처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결정 이유를 밝혔다.

인천공항에서 423일간 난민생활을 이어온 아프리카인 A씨가 법원의 판결로 지난 13일 한국땅을 밟게 됐다. 사진은 A씨가 인천공항에서 생활하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독자 제공)
이번 재판부의 결정은 난민 신청자를 공항 환승구역에 방치한 행위를 법원이 인신보호법상 수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첫 사례다. 사진은 A씨가 인천공항에서 생활하던 모습. ⓒ뉴시스·여성신문 (독자 제공)

이번 결정은 난민 신청자를 공항 환승구역에 방치한 행위를 법원이 인신보호법상 수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첫 사례다.

인신보호법은 자유로운 의사에 반해 국가·지방자치단체 등이 운영하는 의료·복지·수용·보호시설에 수용·보호 또는 감금된 사람을 ‘피수용자’로 규정한다. 법원은 신체의 위해 등을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피수용자 수용을 임시로 해제할 수 있다. 

재판부는 “수용을 계속하는 경우 A씨에 대해 신체의 위해 등이 발생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피수용자의 현재 상황과 처우, 방치된 기간 및 수용자(법무부)의 태도 등에 비춰 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 또한 인정된다”고 밝혔다. 

A씨는 고국의 박해를 피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지병을 얻었는데, 공항 환승구역 내 불규칙한 생활로 탈장 증상이 생겨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검사도 받지 못한 채 진통제를 먹으며 하루하루 버텨왔다. 이번 판결로 A씨는 공항 밖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다만 법원은 A씨가 종합병원을 지정하면 즉시 법원에 주거지를 신고하고, 부득이한 사유가 없는 경우 오후 8시 이후에는 정해진 주거지 밖으로 외출하지 말 것 등을 지정 조건으로 내세웠다. 또 외출할 경우 변호인이나 변호인이 지정한 자와 동행해야 하며, 외출 후 즉시 법원에 사유와 경위를 보고하고 치료 결과를 한 달 단위로 정기적으로 법원에 알리도록 했다.

A씨를 지원해 온 사단법인 두루의 이한재 변호사는 이번 결정에 대해 “난민 신청자를 공항에 방치하는 것이 ‘수용’에 해당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며 “‘입국 자격’과 같이 법에 근거 없는 기준을 가지고 난민 신청 접수를 거부하고, 1심에서 A씨가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항소해 한 사람을 오랫동안 고통 속에 살게 한 법무부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변호사는 “법무부는 이때까지 수많은 난민 신청자를 공항에 장기체류할 수밖에 없도록 제도를 운용해 왔다”며 “난민법상 원칙에 맞도록 일단 신속히 입국시켜 절차를 진행해야 하며, 불가피하게 공항 체류가 발생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처우가 보장되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는 오는 21일 있을 예정이다. A 씨는 2심 판결을 기다리며 난민 심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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