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언젠가 찍은 마을 풍경 사진 속 한 귀퉁이에 친구 모습이 담겨 있네. 54나4324 ⓒ박효신

오랜 친구를 보냈다.

우리, 아니 나의, 기쁨 슬픔 분노를 다 품어주었던 친구,

아니 한 번도 친구라 생각해보 적 없는 녀석.

떠난 후에 처음으로 ‘친구야’ 불러보는 녀석.

그 녀석이 어제 떠났다. 우리는 17년 동안을 함께 했다.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땅끝마을까지 전국 안 가본데 없이 함께 다녔고

혼자 감당해야 했던 슬픔에 숨어 울고 싶을 때 펑펑 우는 나를 아무말없이 품어주었고

세상에 대한, 배신한 인간에 대한 울분 털어놓을 때 ‘그래 그래’ 하며 다 들어주었고

행복해서 소리쳐 노래 부르고 싶을 때 장단 맞춰주었고

곁에서 무거운 짐 다 들어주었던… 그 녀석을 떠나보냈다.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둘 걸… 앗, 찾았다.

언젠가 찍은 마을 풍경 사진 속 한 귀퉁이에 친구 모습이 담겨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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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서울생활 접고 시골로 내려오면서 산 은회색 SM5

그래도 처음 몇 년은 닦아주고 수시로 건강검진도 하며 잘 챙겨주었다.

그런데 내가 마을사업에 사무국장을 맡은 후부터 녀석의 중노동이 시작되었다.

동쪽 끝에서 남쪽 띵끝 마을까지, 새벽 다섯 시에 출발해 출장일을 마치고 밤 열 두 시에 돌아올 때는 녀석도 나도 지쳐 쓰러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온 마을의 짐차 노릇,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는 짚더미, 테이블은 물론 가스통까지 들쳐메고 나르고 짐차보다 더한 짐꾼 노릇을 했다.

부려먹기만 했지 목욕 한 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했고

어디 한 군데 탈이 나도 병원 갈 시간이 없었다.

올 들어 녀석의 상태는 아주 좋지 않았다.

심장도 멈췄다 뛰었다, 관절도 뼈마디마다 덜거덕덜거덕, 이곳 저곳 상처투성이

등짝은 녹슬러 점점 벗겨지고… 어느날은 갑자기 기운없어 주저앉아 버리고…

늙은 친구는 오늘 자동차들의 무덤으로 떠나갔다.

견인차에 매달려 집 마당을 휙 돌아나가는데 멀어지는 녹슨 뒷꽁무니가 왜그리 애처러워 보이던지.

‘모양새가 왜 그리 꾀죄죄하냐? 목욕이라도 시켜 보낼 걸….’

떠나긴 어제 떠났는데 왜 이제야 눈물이 나지?

‘잘 가 친구야…’

쇳덩어리는 감정이 없을까요? 

박효신<br>
박효신(풀각시)

*'풀각시'는 글쓴이 박효신의 블로그 닉네임입니다. 이번에 연재하는 [풀각시의 소풍]에서 소풍은 '박하지만 요롭게 살기'의 줄임말로, 필자가 마을가꾸기 사업을 이끌며 경험하고 느낀 농촌의 소소한 일상을 통해 도시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소박하지만 풍요로운' 삶과 정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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