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입을 권리 ③]
[인터뷰] 김지현 강서뇌성마비복지관 보조공학사
3년째 서울시·유니클로와 장애인 의류리폼 지원
장애인-수선전문가 가교 역할
장애별 신체 특성 파악해 수선가에게 알려
“장애인도 집 주변에서 옷 수선할 수 있기를”

김지현 보조공학사 ⓒ홍수형 기자
김지현 보조공학사가 장애인 신체 특성에 맞게 수선한 옷을 들고 있다. ⓒ홍수형 기자

‘장애인의 달’ 4월을 맞아, 여성신문은 장애인들의 경우 옷을 선택하는 기본권마저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짚어보고, ‘장애인의 입을 권리’를 기획, 4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당신은 정장을 입은 뇌병변 장애인을 본 적이 있는가. 뇌 손상으로 몸이 불편한 이들은 기성복을 그대로 입기 어렵다. 신체 특성에 맞게 옷을 수선해야 한다. 하지만 동네 수선집에서는 장애인들의 옷을 거부하기 일쑤다. 수선하는 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들고, 무엇보다 장애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수선’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 “장애인도 정장을 입을 권리가 있다”는 장애 당사자, 가족들의 목소리에 직접 두 팔을 걷어붙인 이가 있다. 김지현(35) 강서뇌성마비복지관 보조공학사. 그는 장애인과 수선전문가 사이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먼저 장애인과 상담을 통해 옷을 입는 데 어떤 점이 불편한지 파악한다. 이 정보를 수선전문가에게 전해 이들이 장애인 맞춤형 수선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김 보조공학사는 3~4년째 서울시, 유니클로와 함께 장애인 의류리폼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 보조공학사를 만나기 위해 9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강서뇌성마비복지관을 찾았다.

-장애인 맞춤형 수선 과정이 궁금한데.

“먼저 장애인 당사자가 어떤 장애 유형과 신체적 특성을 가졌는지 상담한다. 이후 당사자 또는 가족과 함께 평소 어떤 방법으로 옷을 입는지 얘기한다. 옷을 입는 과정에서 드는 시간과 불편함을 해소하는 게 수선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또, 리폼했을 때 수선 여부가 겉으로 티 나도 괜찮은지 확인한다. 가령 평소 단추를 잠그는 게 불편한 장애인일 경우, 단추를 아예 떼버리고 지퍼로 수선해 옷 입기 편하게 하는 방안이 좋은지, 혹은 단추를 자석 재질로 바꿔 수선한 표시가 안 나게 하는 게 좋은지 묻는 것이다. 이처럼 상담을 거쳐 장애인 몸 특성에 맞으면서도 이들이 어떤 리폼 방식을 선호하는지 파악한다. 이후 상담 내용을 수선전문가에게 전달해 장애인 맞춤형 수선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상담부터 수선까지 보통 2일~3일 정도 걸린다.”

한 보조공학사가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함께하는 '장애인의류리폼지원 캠페인'에 참가한 장애인에게 의류 리폼 관련 안내를 하고 있다. ⓒ유니클로
김지현 보조공학사가 장애인 의류리폼 지원 캠페인에 참가한 장애인에게 의류 리폼 관련 안내를 하고 있다. ⓒ유니클로

-장애인 의류 리폼 지원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2018년 뇌병변 장애인 부모들이 자녀들의 옷 입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에 애로사항을 전하면서 이 사업이 시작됐다. 부모들이 장애인 특성에 맞는 리폼 매뉴얼을 제작해 동네 수선집에 맡기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성복을 장애인 맞춤형으로 고치는 의복 리폼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강서뇌성마비복지관은 기존에 보조기기센터를 운영하며 의류는 아니어도 패드 등 장애인 보조에 필요한 물품들을 미싱으로 맞춤제작 해왔기 때문에 연계성이 있어 시로부터 시범사업을 요청받았다.

2018년부터 시 지원을 받아 운영하다 2019년부터는 유니클로와 함께하면서 사업 규모가 커졌다. 유니클로가 수선전문가를 채용할 수 있는 인건비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의류도 제공했다. 2019년에는 405명, 2020년에는 800명의 뇌병변 장애인이 의류 리폼 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유니클로는 이들에게 각각 5벌씩 옷을 무료로 제공했다. 특히 유니클로의 지원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리폼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도록 도왔다. 기존에 리폼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리폼에 대해 낯설어했다. 하지만 유니클로가 장애인들이 리폼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처음에는 리폼이 낯설어 5벌 중 1벌만 수선했던 분도 리폼한 옷의 편함을 알고 난 뒤 나머지 4벌까지 수선해갔다.”

바지 옆단 단추 ⓒ홍수형 기자
바지를 더 쉽고 편하게 입을 수 있게 바지 옆 단에 단추를 넣어 수선했다. ⓒ홍수형 기자

-기억에 남는 참가자가 있다면.

“서울 마포구에 사는 한 여자 중학생이 기억난다. 팔에 강직이 심해 두 팔이 앞으로 뻗어 있었다. 가족이 자녀에게 외투를 입힐 때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렸고, 안감도 자주 터지곤 했다. 그래서 외투 옆 라인에 지퍼를 달았다. 팔을 넣는 공간이 좁으니 외투 옆으로 팔을 넣었다 뺐다 편하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게 수선했다. 학생과 가족 모두 편리해서 겨울철 외투를 추가로 한 벌 더 수선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정장을 입고 누나 결혼식에 참가한 30대 장애인도 기억에 남는다. 평소 정장을 입지 않았지만 결혼식만큼은 멋진 옷을 입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짧지 않은 결혼식 시간 동안 불편한 옷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리폼 지원사업에 참여했다. 휠체어를 타는 경우에는 옷이 많이 당겨지기 마련이라 옷을 절개해 좀 더 품이 넓은 형태로 정장을 입을 수 있게 수선했다.”

패딩 옆 지퍼 ⓒ홍수형 기자
패딩 옆 지퍼 ⓒ홍수형 기자

-앞으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옷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물품이다. 현재 서울에서 세 곳, 부산에서 한 곳 이렇게 리폼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실 기관에서 이뤄지는 지원사업은 한계가 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상관없이 본인 집 주변에서 리폼을 할 수 있게 장애인 옷 수선집이 확대되면 좋겠다. 장애인 옷을 수선해주는 자영업자에게 정부가 혜택을 주는 등 장애인이 인근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정책이 마련되면 좋겠다.

또한, 올해도 유니클로와 함께 장애인 의류 리폼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뇌병변장애인은 물론 지체장애인까지 대상이 확대된다. 더 많은 장애인이 의류 리폼 서비스를 경험해보고, 옷을 편하게 입으면 좋겠다.”

김지현 보조공학사 ⓒ홍수형 기자
김지현 보조공학사 ⓒ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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