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생 김두리] “어야든동 안 죽는다 생각만 하고 숨어 있어라”
[29년생 김두리] “어야든동 안 죽는다 생각만 하고 숨어 있어라”
  • 최규화 작가
  • 승인 2021.07.30 10:10
  • 수정 2021-07-30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2화. 학살의 그림자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경찰이 밉지만은 할 수가 없는 거야. 자기도 의심을 받을 거 겉으면 또 공산당이 되는 거야. 동생이 그랬으니까." ⓒpixabay
"경찰이 밉지만은 할 수가 없는 거야. 자기도 의심을 받을 거 겉으면 또 공산당이 되는 거야. 동생이 그랬으니까." ⓒpixabay

[작가 : 작은할아버지는 언제 어디서 돌아갔는지 소식은 들으셨어요?] 몬 듣지. 어디 가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러이 느그 할아버지[남편]가 경찰이 괘씸한 거지. 동생을 그래 델고 가서 죽여뿌렸으니까, 밉지. 밉지만은 할 수가 없는 거야. 자기도 의심을 받을 거 겉으면 또 공산당이 되는 거야. 동생이 그랬으니까.

[작가 : 작은할아버지는 정말 공산당 활동을 하신 거예요?] 뭘 했는지 모르지. 드러내놓고 하는 게 아니니까. 아매도 그 사람들인데(한테) 끄직개(끌려) 가서 일 년은 더 있었지 싶으다. 그래서 나제(나중에) 자수법이 나가지고 자수를 했다니까. 자수해서 첩때(처음)는, 집에 가 있어라 하데. 요새 말로 하면 집행유예 받는 택(셈)이야.

근데 또 언제 오라 할지 모르잖아. 고때 흔적 없이 숨어 있으면, 그 사람들[경찰]이 못 찾으면 벌로 못 주는 거야. 그때는 요새같이 연락도 잘 되는 기 없고, 어디 꼴짝(산골)에 밤새 숨어 있으면 잘 몬 찾았거든. 나제 차츰차츰 자수한 사람으는 살래주는 요런 법이 났어. 고때꺼정(까지) 어데 숨어서 나중에 나왔으면 느그 작은할배가 그래 죽지는 안 했지. 근데 죽을 사람은 죽을 데를 찾는다는 말이 맞더라꼬.

울릉도에 우리 진외가[아버지의 외가] 쪽으로 좀 촌수 있는 사람이 약썰국[지금의 약업사와 비슷] 하고 있었어. 느그 할아버지가 그랬다.

“니 좀 피신해 있그라. 거(거기) 가가지고 약 심부름 하고 좀 있어라. 앞으로 세월이 우예(어떻게) 될지 모른다. 세월이 매양 이렇지는 않을 거니까, 고비만 냄기면, 경찰 법이 좀 후해지면 니 여(여기) 온느라. 거도 사람 사는 데니까, 어야든동(어찌하든) 앤 죽는다 생각만 하고 그래 있어라.”

옛날 그때 섬촌에는 사는 기 형편없었거든. 울릉도 거는 똑 떨어져 있으니까 밸로(별로) 연락망이 없었어. 고(거기) 가서 들엎드려[들엎드리다 : 밖에 나가 활동하지 않고 안에만 머물다] 있었으면 살았어.

내가 집에 양식도 없으니까, 가을에 갚으꾸마 하고 나락 한 가마이(가마니) 장리[돈이나 곡식을 꾸어 주고, 받을 때에는 한 해 이자로 본디 곡식의 절반 이상을 받는 변리(邊利)]로 냈어. 내가 디딜방아에다 찧어서, 요새 같으면 쌀 이십 키로 한 포대 되는 거를 느그 작은할배인데 줬어. 내서[팔아서] 돈 하라꼬.

느그 할배가 쌀자루를 걸치고 재 너머꺼정 져다줬다니까. 그때는 안강장 삼십 리 길을 재 넘어 걸어댕겼다. 그래 나락을 찍어가지고 아침에 일찍이 새벽밥 해미개(해먹여) 가지고 보냈다.

쌀으는 안강자아(안강장에) 가서 내가지고 포항 여기 배 타는 데 왔어. 댓머리(부두) 거 앉아서 배 시간 기다린다고 있으니까, 울릉도 있다[산다]는 늙은이가 느그 작은할배 잩(곁)에 앉아가지고 말을 거는 거야.

느그 작은할배는 느그 할배보다 인물도 더 잘났다. 더 잘나고 더 똑똑었다. 근데 성질이 좀 급해. 느그 할아버지도 급한데 작은할배는 더 급해. 누가 ‘이거 묵고 이 말 참아라’ 하면, 그런 말 했다는 그 말꺼정 다 하는 사람이야. 그마이 곧았는(곧은) 사람이야.

그래 울릉도 있다는 늙은이가 하나 잩에 앉아서 느그 작은할배 등드리(등)를 쓰담으메(쓰다듬으며) 말로 걸었다 하더라꼬.

“아이고 인물도 도도(많이) 좋다. 총각도 도도 좋다. 총각은 어디 가노?”

“울릉도 가니더.”

“울릉도 가거들랑 내캉(나랑) 같이 가자. 나도 울릉돈데 우리 딸내미 좋다. 사위 보자(삼자).”

그라면서 등어리 쓰담으메, 너무 잘났다꼬 그라더란다. 아 그라면 마 거 따라가제! 배가 왔대. 배가 왔는데, 마 그게 타기 싫더란다. 와 그렇노? 죽을라고 글나? 배 오면 타고 간다꼬 바라꼬(기다리고) 있어놓고, 배가 왔는데 마 타기 싫더란다. ‘내가 이래 가면 부모형제들도 못 보고 혼차(혼자) 어떻게 살로(살겠나)? 설마 [경찰이] 날 끄직어다 죽일까봐.’ 그래 생각어가지고 왔단다.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