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인3색 장애인 크리에이터
‘하개월’ 김하정·‘은수 좋은 날’ 박은수·‘함박TV’ 함정균씨

왼쪽부터 장애인 크리에이터 '함박TV'의 함정균씨, '은수 좋은 날' 박은수씨, '하개월' 김하정씨 ⓒ본인 제공

여행 브이로그를 찍어 올리고, 강연을 하고, 책을 내고, 국회의원에 도전한다. 동시에 ‘휠체어 타고 환승하는 법’, ‘수어로 소통하는 법’ 등 장애에 관한 정보와 진솔한 경험을 알리고 세상과 소통하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장애인 크리에이터 ‘하개월’ 김하정씨, ‘은수 좋은 날’ 박은수, ‘함박TV’ 함정균씨(이상 가나다 순)가 해온 일들이다. 이들의 도전 앞에서 장애는 단어에 불과해 보인다.  

나는 크리에이터·작가·청년·엄마 딸
청각장애 크리에이터 ‘하개월’ 김하정씨

유튜버 ‘하개월’ 김하정(34)씨 ⓒ본인 제공

“하정아, 너 유튜브 해봐.” 4년 전 겨울, 망년회 자리에서 한 지인의 말에 지금의 프로 유튜버 ‘하개월’(본명 김하정·34)이 탄생했다. 그는 청각장애인이다. 

“왜 미디어에는 장애인이 안 나오는지, 등장해도 불쌍한 존재로 그려지는지 혹은 장애를 딛고 일어낸 멋진 사람의 모습만 부각하는 건지 고민했어요. 장애인이 장애인을 가장 잘 아니까 당사자성을 지닌 제가 장애인을 다룬 콘텐츠를 제작하면 잘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살면서 불편했던 경험을 콘텐츠화했다. 넷플릭스에 자막이 없어 난감했던 경험, 콜택시는 있는데 문자 택시는 없어 불편했던 경험을 담아 영상을 제작했다. 나의 평범한 일상이 다른 이에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많은 이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랐다.

반대로 김씨가 유튜브를 운영하며 배운 점도 있었다. 소리가 없는 영상을 많이 올리는데 그렇게 하면 시각장애인들은 볼 수가 없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방법을 고민 중이다. 

김씨는 유튜브 세계 밖에서도 소통하고 싶다. 책은 뜻깊은 매개체다. “독서로써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는 장애를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 자유로워요.” 지난해 책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읽어요』(arte)를 출판해 작가가 됐다. 여성 장애인으로서 장애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는 내용은 물론 딸, 애인, 청년 등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도 책에 녹였다. 오늘도 카메라와 펜을 들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농인, 청각장애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든 장애인과 여성의 경험이 콘텐츠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라요.”

갑자기 찾아온 장애...일상 속 부당함 바꾸려 정치 도전
청각장애 크리에이터 ‘은수 좋은 날’ 박은수씨

유튜브 ‘은수 좋은 날’ 채널을 운영하는 박은수(27)씨 ⓒ본인 제공

유튜브 ‘은수 좋은 날’ 채널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이자 청각장애인 박은수(27)씨는 자신을 그저 ‘인간 박은수’라고 설명한다. 장애인, 여성, 청년부터 정치 지망생까지, 유튜브는 다채로운 자신의 색깔을 무한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후천적 청각장애인이 됐다는 소식을 알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청각장애인이 되던 날’ 영상은 조회수 142만회를 기록했고 사람들은 응원과 지지, 공감을 보냈다. “걱정이 많았어요. 장애가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불특정 다수한테 이 사실을 알릴 거라고 생각 못 해봤었어요. 그런데 장애인이라는 점도 제 모습 중 하나여서 자연스럽게 알리게 됐어요. 우려와는 달리 많은 장애인 구독자분들이 제 이야기에 공감해줬어요. 난청이 왔을 때 대처법을 공유하기도 하는 등 제 유튜브 공간이 하나의 커뮤니티가 돼서 신기하기도 했죠.”

박씨는 진솔한 이야기로 구독자들에게 다가갔다. 자신이 불법촬영 피해 생존자라는 사실을 터놓기도 했다. “숨어있는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다. 촬영과 유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불법을 저지른 가해자들이 잘못한 거다’ 말하고 싶었죠.”

일상 속 부당함을 바꾸고 싶었다. 지난해 제21대 총선 당시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출마해 스토킹 처벌 강화·성폭력 무관용 처벌법 등 공약을 내세웠다.

“저는 우리 사회에 이름을 남기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잘나서 이름을 남긴다기보다 타인에게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여성, 장애인 등 약자에게 가해지기 쉬운 범죄를 막기 위해 당사자이자 전문가로서 필요한 입법과 정책을 마련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여행이 취미인 휠체어 이용자, 남들 돕는 유튜버가 되다
척수장애 크리에이터 ‘함박TV’ 함정균씨

유튜브 ‘함박TV’를 운영하는 함정균(48)씨 ⓒ본인 제공

유튜브 ‘함박TV’를 운영하는 척수장애인 함정균(48)씨의 취미는 여행이다. 코로나19로 여행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최근에는 강화도에 다녀왔다. ‘무장애여행협동조합’의 조합원인 그는 장애 없는(barrier-free) 여행 상품을 개발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가치(Value)여행 지원 사업 모니터링을 맡고 있다.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여행이었다. 휠체어 이용자가 여행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동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에는 지하철 환승이 어려워서 영상으로 스스로 다시 보려고 ‘환승영상’을 올렸어요. 그러다 버스의 불편함이나 건물의 장애인 접근성 등 여러 가지 불편함을 깨닫고 알리게 됐죠.”

2년 6개월 동안 서울, 경기, 인천 지역 지하철 93개 환승역의 장애인 접근성을 직접 체험한 영상 230개를 직접 제작했다. 유튜버로서 그가 가장 뿌듯함을 느끼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덕분에 그는 수도권 교통에 빠삭해졌다. “서울은 시내버스나 지하철, 도로 등이 잘 돼 있어 이동하기 수월한 편이죠. 경기권으로 넘어가면 조금씩 불편해져요. 가장 편한 루트는 아무래도 기차와 지하철이고요. 불편한 건 버스와 도로예요.”

크리에이터로서 알려지면서 반가운 소식도 생겼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혹시 함박TV?”라며 알아봤다. “유모차와 함께 이동해야 하는 분인데, 검색을 통해 제가 올린 ‘환승영상’을 참조해서 잘 이동했다고, 감사하다고 말해주셔서 정말 기뻤어요.” 미국에 사는 휠체어 이용자가 그의 여행 영상을 보고 ‘한국 가면 이대로 루트를 짜서 이동하면 되겠네요’라고 메시지를 남기기도 한다.

“돌아다니는 걸 워낙 좋아한다”는 함씨는 앞으로도 많이 움직일 계획이다. “즐겁게 여행하면서 휠체어 여행에 적합한 곳을 소개하는 영상을 계속 만들려고 해요. 최대한 여행을 많이 다니며 제대로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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