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 운전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 ‘김여사’를 비롯해 수많은 성차별 단어들은 여성에 대한 적대적인 성차별 의식이 만들어 낸 산물이다.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sumatriptan 100 mg ⓒ홍효식 / 여성신문 사진기자 (yesphoto@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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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다 하는 평범한 일이라 해도 그 일을 태어나 처음 해보는 사람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며, 그 사람은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감각과 경험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내게는 운전이 그렇다. 무려 16년 전에 운전면허를 땄지만 나는 도로주행 시험을 마친 그 순간 이후 운전석에 앉아본 적이 없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아무런 불편함 없이 무탈하고도 평화로운 16년을 보내다가 갑자기 어느 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부랴부랴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이 때문에 16년 만에 잡은 핸들

그 강력한 동기란 다름 아닌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 문제였다. 그동안 걸어서 5분 거리의 가정집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가 졸업을 해서 좀 더 큰 규모의 어린이집으로 옮겨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반드시 운전을 할 줄 알아야 했다. 나는 아이 때문에 운전을 시작하게 된 전형적인 케이스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고, 내가 자존심 상해한다는 사실 마저 자존심이 상해서 이 감정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출산과 육아는 여성이 운전을 시작하게 되는 흔한 동기이기도 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중에 여성은 42% 비율을 차지한다. 그동안 버스와 지하철만 열심히 타고 다녔던 나 역시 저 42%의 숫자 안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중에서는 오랫동안 장롱면허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가 나와 비슷한 이유로 비로소 자동차를 몰고 다니게 된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주변으로부터 운전을 시작해보라는 강력한 권유를 본격적으로 받게 된 것도 임신했을 때부터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운전을 꼭 할 줄 알아야 나도 편해진다는 것이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별로 들어보지 못한 권유를 임신한 이후부터 몰아 받으니 반감이 들었다. 평소 나라는 사람의 이동력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없었으면서 갑자기 이게 웬 성화란 말인가.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을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그런 이유’로 운전을 시작하느니 아이와 함께 버스와 지하철로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는 씩씩하고 힘 센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 같다. 내가 여지껏 하지 않았던 것에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굳이 ‘그런 이유’로 나 자신을 바꾸지 않겠다는, 다소 비장한 발상이었다. 사실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다 하는 그 평범한 일이 내게는 어쩐지 너무 무섭고 따라서 굳이 운전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하지 않는 한 최대한 버티고 싶다는 심정이 더 컸지만 말이다.

모순을 긍정하는 짜릿한 경험

나는 왜 아무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운전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면허를 딴 이유는 간단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위한 이력서를 쓸 때 자격증 칸을 도저히 빈칸으로 둘 수 없어서 하다못해 운전면허라도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차를 몰고 다니는 경험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운전을 해보라는 권유도, 동기도, 압박도 딱히 없었다. 인생에서 내 소유의 차를 마련한다는 계획 또한 세워본 적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이제는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이 오로지 자신의 이동력과 그에 따른 여러 유형의 독립을 추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운전을 시작하고 차를 마련하기도 한다. 사소한 변화이지만 이렇게 씩씩하고 힘 센 여성들이 많아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잠깐만, 그런데 ‘그런 이유’가 어때서? 혹시라도 밥벌이에 도움이 될까봐 면허를 땄듯이, 아이의 등하원을 맡기 위해 운전을 시작한 것도 부끄러울 일은 아닌 것 같다. 삶은 언제나 필요에 의해서 혹은 타인의 상황에 맞추기 위해서 무언가를 습득하거나 나를 변형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 요구는 부당할 때도 있고 모순적일 때도 있다. 부당함을 알아차렸을 때 느끼는 분노의 힘만큼이나 모순을 긍정하는 경험 또한 짜릿할 때가 있다. 마치 한껏 좌회전을 튼 핸들이 내 손 안에서 스르륵 풀릴 때의 짜릿함처럼.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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