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의 날 41주년을 맞아 20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인 정책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의 날 41주년을 맞아 20일 오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장애인 정책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스무살이었던 신지혜는 발달장애인 어린이들과 함께하는 자원활동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난 애들을 좋아했거든.” 그런데 자원활동 프로그램을 담당하던 선생님들이 그를 처음 데려간 곳은 어린이들 앞이 아닌 서울시 교육청 앞이었다.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자원활동을 신청했던 신지혜는 난데없이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촉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던 엄마들을 만나고 말았다.

장애학생의 교육 수혜율이 25%대였던 2006년이었다. 단식 농성을 하던 부모들은 그 다음 해에는 삭발을 했다. 부모들은 장애인교육지원법만 만들 수 있다면 이따위 삭발은 10번도 하겠다고 소리쳤다. 끈질긴 싸움 끝에 그들은 그 법을 통과시켰다. 신지혜에게 그 기억은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첫 번째 기억으로 남았다.

신지혜는 그 곳에서 여러 가지를 배웠다. 정상적인 신체와 정신이라는 틀에 부합하는 사람만을 위해 구성된 사회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장애를 만들어낸다는 점. 시설은 꿈꾸는 삶을 살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점. 그래서 모두가 시설 바깥에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는 점. 그러다 신지혜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자원활동 참여하는 어린이의 엄마가 이야기 하더라고. 자식이 성인이 되면 친권을 포기하고 시설로 보낼 거라고. 그 엄마는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어. 자식을 케어하지 못할 때가 올 것이라는 점을 알았던거지. 그런데 친권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말투가 되게 무덤덤했어. 비통한 것도 아니고, 화가 난 것도 아니었어. 마치 매일 매일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하다가 담담하게 답을 내린 사람처럼.”

부양의무제가 있는 사회에서는 친권을 포기하고 자식을 시설로 보내야만 자식이 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신지혜는 많은 장애인들이 갇히지 않아야하는 곳은 시설 그 자체만이 아닌 시설화된 사회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역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오로지 가족에게만 돌봄이 전가되는 현상은 장애인을 또 다른 시설로 내모는 일이 되었다. 분명히, 그 공간 속에서는 장애는 무엇인가의 이유가 될 때가 많았다. 나쁜 취급을 받아도 되는 이유, 자유를 통제당해도 되는 이유,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

“나는 나와 함께 했던 어린이들이 ‘장애가 있어서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애들이 다 자랐을 때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정치를 시작했어. 서울시 교육청 앞에 농성을 하던 엄마들처럼.”

신지혜는 13년간 해왔던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자원활동을 그만두고 기본소득당 대표가 되었다. 그는 그 13년의 과정을 정리하며 동료들과 <좋은 일 하는 것 아닙니다>라는 책을 냈다. 나는 좋은 일 하고자 자원활동에 신청했다가 세상을 바꾸고자 노력하기 시작한 수많은 이들의 고민을 그 책에서 옅볼 수 있었다. 신지혜는 이듬해, 서울시장 선거에도 출마했다. 선거기간동안 그는 많은 말을 쏟아냈다. 장애와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거대한 시설으로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라 함께 의존하는 사회. 발달장애인들과 동네에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사회.

4월 20일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이 돌아왔다. 나는 싸우는 이들이 만들어낼 변화를 믿는다.

신민주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 ⓒ기본소득당
신민주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 ⓒ기본소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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