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보면 끝이 있겠지요 - ‘29년생 김두리’ 구술생애사] 13화. 침묵해야 했던 죽음
김두리 여사는 제 할머니입니다.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는 것은 할머니처럼 이름 없이 살아온 모든 여성들의 삶에 역사적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사 연표에 한 줄로 기록된 사건들이 한 여성의 인생에 어떤 ‘현실’로 존재했는지, 그 잔인하고 선명한 리얼리티를 당사자의 육성으로 생생히 전합니다. - 작가 말
우리가 저녁 묵고 앉아 있으니까, 지끔 요량하면 여덟 시, 아홉 시나 다 돼갈 꺼다. [시동생이] 포항서 걸어서 왔더라니까! 하이고 마…… 그직세(그때는, 바로) 내가 마라캤다(야단쳤다).
“나는 [시동생] 살릴라꼬, 피신시킨다꼬 아픈 다리를 뻐디대서(억지로 디뎌서) 빗대로까(비로) 쑤새여(쑤셔넣어) 가메 나락을 찍어가지고, 두 불(번) 세 불 실거가지고(채로 쳐서) 해줘놨디만은…….”
자아(장에) 내는 거는 좀 곱게 실거야 되거든. 그걸 갖다 내서[팔아서] 자기 요기하고 또 뭐 했다 하도(하더냐)? 돈으는 매잎(몇 닢) 썼더라꼬. 그때는 뭐가 다 돈 시세가 낮으니까 다 헐했어. 그래 거 가면 배 선가[뱃삯] 하고도, 배 타고 가고도, 아는 사람 집에 뭐 쪼매 사들고 갈 수도 있었다니까. 돈이 그래 됐다니까.
느그 작은할배[시동생]가 남은 돈을 내놓더라꼬. 느그 할아버지[남편]가 실컨(실컷) 마라캤지.
“내가 니 돈 줬는 거 아까버(아까워) 그라는 줄 아나!”
“형님 걱정하지 마소. 내 죽든동 살든동 작은집에 가가지고 있으께요. 농사짓고 있으께요.”
그래 가서 있더라꼬. 가서 얼매 안 있으니까, 경찰서 온느라 했잖아. 그래 불려 가가지고, 창고에 가 갇해서……. 한 달이나 있었는강 반 달이나 있었는강 모르겠다. 그래서…… 앤 죽었나.
그런 사람이 많았지. 하나둘이가 아니니까, 어디 가서 죽었다 소리는 어예(어떻게) 입으로 입으로 전해들은 거야.
시어머니가 놉[품팔이 일꾼] 하나 해가지고 아들 시체 찾는다고 가보이, 뭐 그양 죽여서 놔뒀는데, 총을 놔서(쏴서) 죽여놨디 피도 범벅됐지, [누가 아들인지] 모르겠더란다. 얼굴로 봐야 아니까 하나 두나(둘) 디새보이(들춰보니), 여름철이놔놓이(여름철이다 보니) 냄새는 나지, 그래 시어머니가 거서(거기서) 쓰러졌는 거야.
같이 갔는 사람이 들깨아[들깨우다 : 요란스럽게 흔들어 깨우다] 가지고 델고 왔어. 그래 “자식 찾을라 하다가 내가 엎어져 죽으면 내꺼정 느그 더 애미길따(애먹이겠다).” 하디만 그직세는[그때서는] 포기하더라꼬.
그때는 거 찾지도 모했다. 찾다가 다들래면(들키면) 총살이야. 자기네[경찰]가, 어디 갖다가 가 묻어라 해야 묻었다니까. 그 안에는[그게 아니면] 경찰들 눈 피해가지고 어예 해서 자기 아(자식) 찾으면은 모르구로(모르게) 갖다가 묻어놔야 된다니까.
그러니까 [시신을] 마카(전부) 그양 내삐지(버려두지), 찾으러 갈 수가 없는 거야. 다들캐면(들키면) 같은 뺄개이(빨갱이)라꼬 총살 당는다니까(당한다니까). 그렇기 따문에 가 찾지도 몬해.
와 오새(요새) 시체 발굴한다꼬[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조사를 말함] 안 해사트나(하지 않더냐)? 벌구디(구덩이)를 파놓고 한테(한데) 마카 갖다 처여(처넣어)가지고, 누가 누구 시첸지도 모르지. 다 썩어서 그양 있을 거야. [작가 : 그 동네는 어딘데요?] 모르지. 뭐 표나게 묻었을까봐? 몬 찾도록 핀핀하이(판판하게) 해서 묻어놨으면 어예 아노? 몇십 년이 지났는데. 모르지. 가망 없다, 야야(얘야). 찾는다는 거는 가망이 없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화병이 나가지고, 뭐 쪼끔 속상하면 가슴이 펄떡거리고 머리도 아프고. 내(늘) 이래 머리를 딩애서(동여매고) 살았다. 나도 보니까 더 불쌍해서, 더 불쌍해서 더 심기고(섬기고)……. 괄시를 하기나 호강을 하기나 [며느리가] 내밖에 업으니까…….
본대(본디) 느그 할아버지[남편]도 속에 사상은 민주당이야. 동생도 그랬고, 꼴짝에는 다 뺄개이 쪽이야.[가난한 산골 사람들은 주로 공산주의 사상을 지지했다는 뜻] 그러니까 마카 그 사람들이 뺄개이라꼬 취급을 하는 거야.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은, 공무원들, 면, 군, 지서, 경찰서, 그래 관리하는 사람들 내놓고는(말고는) 아매도(아마도) 삼분지 이는 민주당 사상일 거야. 그때 시절에 사상이.
또 동생을 그렇게 보내뿌고는 괘씸한 거야. 경찰들인데(한테) 죽었으이. 속으로 앙심은 있는 거야. 나제(나중에) 느그 할아버지가 그라더라꼬.
“내가 군대[국군] 안 갈라 했으면 그때 빠질 수도 있었다. 빠질 수도 있었는데 우예(어째서) 갔노 하면은, 내가 이판에[전쟁 중에] 군대에 가서 산다는 보장은 없고, 내가 죽디라도 내인데 따른(딸린) 식구들이라도 기 피고(펴고) 살아라 싶어가지고 갔다.”
군대 가 죽었다 하면 식구들은 기 피고 사잖아. 근데 뺄개이인데 끄직개(끌려) 갔다 하면 어디 가 말또 몬하잖아. 그때 세월이 이랬다저랬다 하니까, 우리 아들 어디 끄직개갔다 소리 절대 몬했다니까. 그거를 알 것 같으면 다 또 경찰에 불래가서 조사받고, 어예 갔는지 다 캐고 묻고, 그제? 언선시럽다꼬(지긋지긋하다고). 느그 할아버지는 군복도 싫고, 군생활도 싫은데 그래서 군대를 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