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원혜정 작가
일러스트=원혜정 작가

오늘도 싸운다. 지독히 지리멸렬한 고통의 시간 속에서, 반복되는 상처의 아픔 위에서 오늘도 나는 싸움을 이어간다. 세상 어딘가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을 다른 피해자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드유(With you)’를 이어나간다.

부당한 일에 함께 목소리를 내준 사람들, 한 공간에 모여 『김지은입니다』 책을 읽어준 시민들, 사건을 연구하고 글을 써준 지식인들, 정성껏 기른 농산물에 일일이 메모지를 달아 보내준 농부들, 반찬과 손편지로 응원의 마음을 나눠준 활동가들,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고 힘겨운 싸움에 동참해준 증인들의 위드유가 내게는 생명을 지켜준 유일한 버팀목이 되었다.

어린 학생부터 정치를 싫어하는 청년, 페미니즘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함께 해준 분들은 다양한 시민들이었다. 그들 속에 성별과 계급, 정치 성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상식을 따르고 불의에 분노하는 시민들이었다. 진보와 보수, 이대남과 이대녀의 유치하고 설익은 구별지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진영의 편을 갈라 음모론을 만들고,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은 한줌도 안 되는 권력을 가진 일부 정치 세력들이었다.

미투(MeToo) 열풍 속에 위드유를 하겠다고 선언했던 정치인들은 오로지 친분과 표 계산에 따라 성폭력 문제에 대응했다. 세상의 진실과 정의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치권력을 지키는 일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2차 가해자들은 거짓을 양산해 세상을 뒤덮어 버렸다. 거칠고 허황된 댓글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죽음의 고통을 느끼며 피폐한 삶은 이어졌다.

거친 말들과 거짓의 파도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의 위드유는 방파제와 같았다. 편 가르기가 아닌 오로지 상식과 진실의 굳건한 연대로 지켜준 시민들의 위드유는 주변 사람들의 삶 또한 변화시켜 주었다. 사건 기간 내내 진실과 함께해준 친구들은 또 다른 피해자를 돕기 위해 한 여성 단체의 활동가가 되었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자가 되었으며, 소수자의 삶을 지켜주는 정책 입안자가 되었다. 위드유에 나선 사람들은 또 누군가의 조력자가 되고, 연대자가 되었다.

사람과 사람으로 힘을 얻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2차 가해는 진행 중이다.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죄, 그리고 범죄와 2차 가해를 방관한 충남도청의 진심 어린 노력이면 끝났을 일이다. 가해자가 최종 선고를 받아 감옥에 있는 이 순간에도 가해자와 해당 기관은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고, 침묵과 부인으로 2차 가해를 방조하고 있다.

최근 지방정부의 한 기관장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는 걸 보면서 ‘이렇게도 간단한 일이었구나’ 생각했다.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만으로 쉽게 정리될 수 있는 일들이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방치되고 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고 있는 것이라는 현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딘가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을 떠올린다.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고, 홀로 싸움을 이어나가야 하는 그분들의 일상을 떠올린다.

분노와 혐오에 맞서 싸워 온전한 생활로 돌아가는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끝내야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가해자와 그를 방관한 기관, 그리고 2차 가해자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드유다. 싸우고 피 흘리며 지나간 그 길 위로 누군가는 조금 더 편하게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반성하지 않는 세상에 직면한 수많은 피해자분들께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나는 오늘도 싸운다.

#위드유 #우리절대포기하지말아요 #함께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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