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 격리 정책으로
강제노동·임신중지·단종 수술 강요 등 인권유린 겪어
2019년 일본법 개정으로 환자 가족도 피해보상 길 열려

한국 한센 가족피해자인 강선봉 씨가 26일 서울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한국 한센 가족피해자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제1차 보상 청구 관련 기자회견'에서 비대면(소록도박물관 위치)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6일 서울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한국 한센 가족피해자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제1차 보상 청구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여성신문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 격리 정책으로 소록도에 격리돼 강제노동 등 피해를 겪은 환자의 가족들이 일본 정부에 처음으로 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26일 사단법인 한센총연합회(회장 이길용)을 비롯해 함께하는빛, 한센총연합회, 한국한센가족보상청구변호인단, 일본 한센병가족소송변호인단 및 원고단은 서울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9일 일본 후생노동성에 보상청구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은 온라인 영상 회의 시스템을 통해 서울, 소록도, 일본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지난 2001년 일본 법원은 일본 정부가 격리한 일본인 한센병 환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일본의 한센병 환자가 자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한 것이다. 이후 한국과 대만 환자들도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5년 일본 법원은 법률에 따라 일본인만이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며 기각했다. 

하지만 한일 변호사들의 노력으로 2006년 한센병보장법이 개정돼 한국 한센병 환자들도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2016년까지 한국인 590명, 대만인 29명이 피해 보상을 받았다. 

일본은 2019년 “한센병 환자의 가족들도 편견과 차별 속에서 엄청난 고통을 겪어왔다”며 보상 범위를 환자의 가족들까지로 확대한 ‘한센병환자가족에대한보상등에관한법률(한센가족피해자보상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한국·대만 등 외국에 거주하는 이들을 포함해 일제강점기 격리된 한센병 환자의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 중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출생해 생존해 있는 사람은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당시 아베 총리는 다른 과거사 문제와 달리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법 전문에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는 표현이 들어있다. 대리인단은 “일본법에 근거가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이번 보상금 청구를 받아들이면 한센병 환자의 친자녀와 배우자에겐 180만엔(약 1800만원), 형제자매에게는 130만엔(약 1300만원)이 지급된다. 

앞서 이들은 2011년 한국 정부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해 2018년까지 총 538명이 보상을 받은 바 있다. 

한국 한센 가족피해자인 강선봉 씨가 26일 서울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한국 한센 가족피해자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제1차 보상 청구 관련 기자회견'에서 비대면(소록도박물관 위치)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한국 한센 가족피해자인 강선봉 씨가 26일 서울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한국 한센 가족피해자들의 일본 정부에 대한 제1차 보상 청구 관련 기자회견'에서 비대면(소록도박물관 위치)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일본은 1907년부터 한센병 환자들을 한국 소록도, 대만 낙생원, 일본 가고시마 요양원 등에 강제 수용했다. 1930년대에는 ‘나병예방법’을 시행하면서 격리 정책을 유지했다. 한센병 환자들은 강제노동과 폭행에 시달렸고 임신중지·단종 수술 등을 강요받는 등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했다. 

국내 한센병 격리촌이던 소록도에는 1940년대 무렵 강제 수용된 환자가 6000여 명에 달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도 한국 정부는 일제의 격리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아 이들을 계속 소록도에 격리했다. 이 가족 중 일부도 한센병을 앓았지만 모두 완치돼 소록도 등에서 살고 있다. 

변호인단은 피해자 가족을 추가로 모집해 추가 보상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의 시행이 5년까지이기 때문에 이들은 피해자들을 찾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1번 청구인이자 『소록도, 천국으로의 여행』의 저자 강선봉씨는 “(한센병 환자를 향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함께하는빛 이사장 박영립 변호사는 “가족들은 한센병력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편견 속에서 고통을 당했다”며 “해방 후 76년이 지난 지금에야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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