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무관한 용도 사용' 사기 혐의는 유죄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뉴시스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뉴시스

자문료 명목으로 금품을 받고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현 RB코리아)에 유리한 보고서를 쓴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교수에 무죄가 확정됐다.

연구비를 연구와 무관한 용도에 사용한 사기 혐의만 유죄 판결이 났다.

29일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수뢰후부정처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대 수의대 교수 조 모 씨의 상고심에서 증거 위조 등 수뢰후부정처사 혐의를 무죄로 최종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사기 혐의는 유죄로 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연구를 수행하고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직무를 위배하는 부정행위를 하거나 증거를 위조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받은 자문료가 대가성을 가진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조 교수는 옥시가 서울대 산학협력단과 맺은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 평가’ 연구책임자로서 2011년 10월 옥시로부터 자문료 명목으로 1200만원을 받고 옥시에 불리한 실험 결과를 의도적으로 누락해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최종결과보고서를 작성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옥시 임직원들의 형사사건 증거를 위조하고, 2011~2012년 해당 연구와 관련 없는 다른 실험도구를 사는 등 25차례에 걸쳐 연구비 5600여만원을 가로챈 사기 혐의도 받았다. 

1심에서는 조 교수의 수뢰후 부정처사 및 사기 등 혐의를 모두 유죄로 보고 징역 2년에 벌금 2500만원, 추징금 1200만원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독성학 분야 최고 권위자로서 사회적·도덕적 책임이 있는데도 옥시 측 금품을 받고 연구 윤리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2심은 그러나 1심 판결을 뒤집고 조 교수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은 조 교수의 사기 혐의는 유죄로 봤지만, 보고서 조작 등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집행유예 선고로 조 교수는 석방됐다.

2심 재판부는 “흡입독성과 생식독성 실험을 분리한 것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조 교수는 옥시 요구를 반영해 실험을 진행할 책임이 있고, 옥시가 따로 요구하지 않은 생식독성 실험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 "조 교수는 옥시와 자문계약을 체결하고 1200만원을 받았는데, 실제 옥시에 자문했고 그 금액이 과다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자문계약 당시 이미 실험이 진행 중이었고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아 연구 관련 부탁을 했다고 납득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을 수긍한다”며 검사와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이번 판결에 대해 논평을 내고 "참사의 진상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가해기업들이 건넨 뒷돈을 받고 연구자의 양심을 판 '청부과학자'에 면죄부를 쥐어줬다"면서 사법부를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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