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메갈 만물설
이미 사라진 메갈리아가 백래시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여
도를 넘는 백래시를 그냥 지켜볼 수만은 없다
천박한 방식의 싸움걸기에 수준 높게 대응하자

최근 여러 마케팅 이미지에 사용된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모양을 두고서 ‘남성혐오’ 라는 말들이 많다. 검색 사이트에서 핑거 핀칭(finger pinching)을 찾으면 주르륵 나오는 흔한 손가락 모양일 뿐인데 특정 집단에 대한 비하의 의미라고 보는 사람들은 비분강개한다. 이들은 손가락의 모양이 한국 남성 성기 사이즈를 의미한다며,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자리 잡고 있다고 단정하며 확신하고 있는 듯 하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메갈들은 참 대단한 조직이다. 사이트도 사라진 지 수년이 지났는데 각자의 자리에서 메갈리아의 소명을 다하고 있는 것 아닌가! 디자이너 메갈들은 우리의 그 비밀스러운 손동작을 클라이언트에게 요청받은 작업물 속에 기어코 끼워 넣으며 전 세계 동지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편의점 소시지와 여성운동이 어떻게 연결된 것인지는 아직 해석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일루미나티 저리가라인 메갈 만물설이다.

최근 손모양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홍보물

페미니스트를 향한 백래시야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지만, 메갈리아가 사라진 이후에도 손 모양 로고는 계속해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건 흥미롭다. 지난 2016년 8월 ‘시사IN’은 ‘분노한 남자들’이라는 기획 기사를 통해 메갈리아 현상을 다룬 바 있다.  당시 천관율 기자는 빅데이터 기반 컨설팅 기업 ‘아르스 프락시아’와 함께 2015년 8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나무위키에 작성된 ‘메갈리아’ 항목을 분석했다. ‘정의의 파수꾼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분노한 남성들의 심기를 건드린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남성’, ‘성기’, ‘크기’가 그것이다. 감히 남성을 품평하는 이상한 여자들이 모여 한국 ‘남성 성기’를 작다고 ‘모욕’하는 방식으로 남성을 ‘비하’하고 있기 때문에 메갈리아는‘남성 혐오’를 전파하는 악당이라는 것이 대다수 남성을 안심시킨 논리적 구성이었다.

일부 남성들은 이러한 입장을 기반으로 메갈리아에 동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메갈리아를 비난하지 않는 모든 사람, 그리고 페미니스트를 남성 혐오자라고 주장했다. 마치 자신들은 여성들의 신체를 대상으로 단 한 번도 점수를 매기는 일 따위의 혐오스러운 일은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굴며 말이다. 메갈리아를 공격하는 일은 ‘사회적 정의’를 지키는 성스러운 전선이 돼버렸다. 위에서 언급한 기획 기사로 인해 ‘시사IN’은 독자들을 가르침의 대상으로 삼은 시건방지고 선민의식 가득한 진보 엘리트 기자 집단이라며 비난받았다. 몇몇 구독자들은 구독 해지를 했다. 손가락 이미지로 공격받는 편의점 체인과 해당 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펼쳐야 한다는 지금의 분위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다.

 

'백래시' 저자인 수전 팔루디

수전 팔루디는 그의 저서 ‘백래시’의 부제를 ‘미국 여성에 대한 선언되지 않은 전쟁 (The Undeclared War Against American Women)이라고 지었다. 1960~70년대 미국 여성운동의 노력으로 피어난 페미니즘이 레이건 보수 정권 아래서 사회 전반에 걸쳐 공격받은 과정은 여성을 적으로 삼은 전쟁과 같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벌어진 손가락 논란을 해프닝 따위로 취급하며 가볍게 여기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성을 상대로 그들만의 정의를 지키는 남성들의 연대는 학력과 소득수준, 정치적 입장을 뛰어넘는다.

지고 싶어도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이긴 야당과 패배의 무능을 감출 적당한 핑계거리가 필요했던 여당 모두 페미니즘을 승패의 이유로 내세웠다. 기성 정치권 남성들의 수준 낮은 공격에 무시로 대응한 결과, 편의점 홍보물을 포함한 여러 곳의 손가락 모양을 남성 혐오의 증거라며 도발하는 상황까지 왔다.

저들이 천박한 방식으로 싸움을 걸고 있으니 우리 여성들은 품격있는 방식으로 그들과 싸워야 할 때가 됐다. 백래시를 뛰어넘고 우리 세대 여성운동을 성공으로 이끌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성폭력, 성차별, 사이버 성폭력, 성소수자를 둘러싼 괴롭힘이 종식되는 눈부시게 평등한 시대는 당연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의 헌신과 노력만이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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