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 그대 안의 붓다 (80 x 10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그대 안의 붓다' ⓒ황주리
'그대 안의 붓다' ⓒ황주리

그대 안의 붓다시리즈를 작업해온지 어느새 십년 째다. ‘황주리스타일이라 불리는 그림들을 그리는 사이 틈틈이 마음을 쉬는 시간에 그려온 작업들이다. 캔버스와 돌과 접시, 쟁반, 시계, 세상의 모든 사물들 위에 붓다를 그려넣었다. 그중에는 옛날 옛적 어머니가 딸의 혼수품이라 사두고는 쓰지도 않고 모셔둔 귀한 접시들부터 뉴욕 체류 시절 사둔 각 나라의 값싸지만 오래된 쟁반들도 있다. 다양한 사물들 위에 그린 다양한 붓다의 형상들은 사물에 깃든 나의 마음이라 할 것이다.

일찍이 프로이드는 붓다는 마음을 발견한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말했다. 사실 내가 붓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굳이 종교적인 이유에서는 아니다. 불교는 내게 종교라기보다는 내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생철학이다. 아프리카 원시미술이 서구 이십세기 현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피카소도 모딜리아니도 자코메티도 위대한 아프리카 미술과 세상의 원시미술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가면 앙코르 국립 박물관내에 천개의 불상을 모신 방이 있다. 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되어있고 변변한 책자도 없어서, 너무나 아쉬운 마음으로 눈과 마음에만 담고 돌아왔다. 그곳에 모셔진 천 불상들의 얼굴은 옛날 옛적 그 지역에 살았던 농민들의 얼굴을 그대로 조각한 것이라 한다. 그 온화하고 인간적인 얼굴들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이후, 나는 내 시각으로 바라본 천 분의 현대적 불상들을 그리는 중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의 단 하나 뿐인 삶은 그 자체로 예술작품이며 종교경전인, 짧지만 동시에 긴 여행일 거라 생각한다. 동양의 불상은 동양의 유일무이한 보물이다. 각 나라의 불상들을 새로 발견하며 불상의 형상을 재해석한 모던 붓다를 그리고 싶은 열망을 지니게 되었다. 아프리카 미술에 심취해 그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한 피카소나 모딜리아니처럼. 그리다보니 내가 그린 붓다의 얼굴은 바로 내 얼굴이다. 앙코르 박물관의 천 불상들이 그 동네 농부들의 얼굴이듯 내가 그린 모던 붓다들은 바로 나 자신의 자화상, 우리 모두의 자화상, ‘그대 안의 붓다들이다.

이 팬데믹 시대에 우리 모두의 마음이 나를 향한 연민에서 타인을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열려가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위로의 축제를 꿈꾼다. 어느 날 우리의 문명이 그 옛날의 사라진 문명들처럼 터만 남고 사라진다 해도, 그 문명을 만들어온 우리의 유의미한 여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찰나인 동시에 불 영겁이리라. 문명이란 먼저 살다 간 인류의 흔적에 돌 하나 올려놓는 일이다. 무슨 영화를 보다가 이런 말이 불현 듯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인간이 최초의 손자국을 동굴 벽에 남긴 순간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언가의 일부가 되었다.” -영화 ‘The Dig’ 중에서-

 

작가 황주리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 중 한사람인 화가 황주리는 평단과 미술시장에서 동시에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인 동시에 산문가이며 소설가이기도 하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선구자로, 지금의 젊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유려한 문체로 산책주의자의 사생활등의 산문집과 그림 소설 한번 단 한번 단 한사람을 위하여등을 펴냈다.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한 그의 글과 그림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리들 삶의 순간들에 관한 고독한 일기인 동시에 다정한 편지이다. 동시에 촘촘하게 짜인 우리들 마음의 풍경화이다.

* 황주리 작가 개인전 노화랑(서울 인사동), 5월 18일 ~6월 8일 (일·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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