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W초대석]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남들이 사귀고 싶어하는 사람이 돼라” 부친 말씀 명심
현대건설 승진 포기하고 창업, 공구상 거쳐 플랜트업계로
신뢰·포용·상생으로 ‘노사문화대상’ ‘노사협력대상’ 수상
경영 승계? 자녀들 경영 적성 안맞으면 대주주로 남아야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여성신문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여성신문

정석현(70) 수산그룹 회장은 다정다감한 분위기 메이커다. 언제 어디서든 웃음과 유머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제조업만으로 연매출 5,500억원에 이르는 그룹 수장인데 목에 힘 주는 일도 없다. 솔직하고, 상대를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려 애쓴다.

정 회장은 이런 자신을 만든 멘토로 아버지를 꼽았다. “아버지는 촌부셨지만 틈만 나면 충간공 시호를 받은 13대조와 장원급제 후 대사간을 지낸 고조부 얘기를 해주면서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중시조가 되라고 격려하셨어요. 그러려면 좋은 스승을 가까이 하고 언행을 바르게 해 주위에서 사귀고 싶어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구요. ”

아버지의 조언과 격려는 평생의 지침이 됐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뒤 가슴에 새긴 경영철학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미래기술을 개척하는 도전적 사업을 하자, 임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성과를 나누는 기업문화를 만들자, 부국강병해야 자신과 회사 모두 공존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자’가 그것이다.

성실과 열정, 도전은 기본이요 소통과 상생,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기반을 닦고 신뢰를 쌓은 결과 오늘의 수산그룹을 일군 셈이다. 수산그룹은 수산중공업과 수산아이앤티 등 상장사 2곳과 수산인더스트리, 수산이앤에스, 수산씨에스엠, 수산에너솔, 수산홈텍 등 총 10개 회사로 이뤄져 있다.

수산중공업은 유압브레이커 등 건설장비 제조, 수산아이앤티는 소프트웨어 개발 및 보급, 수산인더스트리는 발전설비 유지 및 개보수 공사를 주로 한다. 계열사 모두 기술 중심 회사로 탄탄하고, 내후년이면 연매출 1조원, 순이익 1000억원을 바라본다.

현대건설 재직 시 정주영 회장 보며 안목 키우고 사업할 용기 내

정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중학교는 수석 입학 덕에 장학금을 받고 다녔지만 형편상 대학은 엄두도 못냈다. 전주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고졸 공채 1기로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처음 맡은 일은 포항제철 부지 조성에 필요한 준설선 수리였다.

“8개월동안 배에서 먹고 잤어요. 침수된 기관실 엔진같은 기계장치를 분해한 뒤 고쳐서 재조립했지요. 인천 현장을 거쳐 1972년 말부터 서울 본사에서 일했어요. 윗분이 잘 봐주셔서 계속 본사 근무를 하면서 한양대학교 기계공학과(야간)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정주영 회장님을 보면서 안목을 키우고 사업할 용기도 냈구요.”

봉급도 괜찮고, 주위의 신망도 두터웠다. 그는 그러나 사표를 썼다. 봉급쟁이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청계천에서 과거 현대건설에 공구를 납품하던 이를 만났다. 동업 대신 별도법인을 만들고 일정기간 도움을 받기로 했다. 자신의 이름과 지인의 이름 중 한 글자씩 따서 ‘석원상사’라는 상호를 지었다.

“초기엔 힘들었어요. 공구업계 사정을 모르니 사입가는 비싸고, 납품가는 싸서 적자가 났지요. 어음 대신 현금 결제를 하고, 주요 건설사와 조선업체의 작업계획을 파악한 다음 미리 필요한 공구의 종류와 수량을 대량 주문해 매입가를 낮췄어요. 싸고 물건도 다양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거래처가 늘고 형편도 폈습니다.”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여성신문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여성신문

수산중공업 인수해 국산장비 개발하고 해외시장 개척

1983년, 공구상을 접고 석원산업을 창업해 플랜트 공사를 시작했다. 발전소 건설 현장에 나가 시공 내용을 세세히 기록했다. 완공 후엔 데이터를 분석해 공사비 및 기간을 절감하고 안전도를 높이는 법을 찾아냈다. 해외건설업 면허를 취득해 해외 플랜트 공사를 하고 유지·보수 사업에도 진출했다. 지금의 수산인더스트리다.

2004년 건설장비 제조업체인 수산중공업을 인수했다. “현대건설에서 일할 때 건설장비가 죄다 외국산이라 아쉬웠어요. 수산중공업을 인수한 뒤 국산장비 개발 및 기술력 향상,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했지요. 2006년 3000만불, 2012년 7000만불 수출탑을 받았어요. 지금도 수산중공업 매출 60~70%는 해외에서 올립니다.”

수산중공업 정상화는 쉽지 않았다. 정 회장은 증자로 유동성을 안정시켜 임직원을 안심시키고 노조위원장을 임원회의에 참여시켜 경영상태를 100% 공개했다. 영업이익이 웬만큼 날 때까지 급여나 경비도 받지 않았다. CFO(최고재무책임자) 외엔 임원들도 유임시켰다. 소통, 공감하고 노사가 서로 격려하면서 성과를 냈다.

조금씩 나아지던 2008년 환율변동대비상품(KIKO) 사건으로 위기를 만났다. “기업의 환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이익이 보장된다고 속여 중소기업에 10조원 가까이 손해를 입힌 사건이에요. 1억원 대출도 대표이사와 대주주의 자필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저는 은행에서 설명을 들은 적도 서명을 요구받은 적도 없었어요.”

억울함을 해소하고자 대책위원장을 맡아 고군분투했지만 재판에서 패소했다.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한편 수산중공업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노사가 함께 노력한 결과 2011년 수산중공업은 고용노동부에서 주는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기쁨도 잠시, 2013년엔 70여개국에 수출한 유압브레이커에 하자가 생겨 전량 리콜했다. 손해가 심했지만 믿을 만한 기업이란 이미지를 구축했다.

키코사태로 건강까지 나빠졌지만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치료한 끝에 2016년 완치하고 2017년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는 수산그룹의 임직원 모두를 지키고 보살펴야 할 식구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임직원 전원의 부부상해보험에 가입합니다. 교통사고나 암에 걸리는 등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는 거지요. 사망보험금은 회사의 부의금인 셈입니다. 모든 직원 자녀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 개별적성검사를 받도록 합니다. 아이들이 뭘 잘할 수 있는지 찾아주기 위해서지요.”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여성신문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여성신문

전직원 부부 상해보험 들어주고 중2 자녀에겐 개별적성 검사

이런 경영으로 올해 5월 12일엔 계열사인 수산이앤에스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선정하는 ‘제33회 한국노사협력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수산그룹에선 또 신사업아이디어 공모전과 독후감 경진대회를 개최한다. 독후감 대회 수상작 도서는 회사돈으로 사서 직원들에게 나눠준다. 아이디어 공모전 상금도 후하다.

정 회장은 인사제도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아무래도 성실한 사람이 마음에 들지요. 하지만 미래기술에 호기심을 갖고 도전하는 인재를 발굴,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려 합니다. 그런 사람은 대개 고집쟁이고 남의 말도 잘 안들어 평판이 별로거든요.”

정 회장은 현재 수산아이앤티를 제외한 9개 회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있다. 믿고 위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남은 과제는 두 가지. 하나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일류기업을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국가의 백년지대계를 세우는 지도자그룹 양성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경영 승계에 관해서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영능력이 있으면 기업을 승계하는 게 맞을 테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면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주주 역할만 하도록 해야지요. 그래야 기업도 성장하고 인재도 떠나지 않을 테니까요.”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수산그룹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수산그룹

정석현 회장 약력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졸업 (1979)
서울대학교 최고경영자과정 AMP수료 (1998)
한국무역협회 부회장 (2009)
한국공학한림원 이사 (2017)

한국을 빛낸 올해의 무역인상 수상 (2007)
금탑산업훈장 수훈 (2008)              
노사문화대상 대통령상 수상 (2011)     
소방산업대상 국무총리표창 (2017)
한국노사협력대상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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