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의 정치포커스]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혐오를 넘어서자
[신지예의 정치포커스] 신자유주의 시대 여성혐오를 넘어서자
  • 신지예 젠더폴리틱스 연구소장
  • 승인 2021.05.27 10:39
  • 수정 2021-05-27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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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자본이 일방적 승리를 해온 지난 20년
부동상 폭등, 가상화폐 투기는 국가 통제 불능의 징후다
자산 격차와 불평등의 분노가 여성을 향하고 있어
여성혐오가 아닌 연대만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거시경제학의 창시자인 케인스는 ‘우리 손자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 이라는 에세이에서 100년 후 세상에 대해 낙관론을 폈다. 결론적으로 선진국 구성원들의 소득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은 맞았지만,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은 현재까지는 틀렸다. 물론 그가 주당 15시간만 일할 것이라는 시기가 2030년이기에 여지는 있다.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노동으로 부터 해방시켜 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역사를 돌이켜봤을 때 기술혁신을 통해 개선되는 것은 노동자의 삶이 아닌 자본 그 자체로 수렴하게 되는 이윤 축적의 강도였고, 크기였다.

영화 노매드랜드 중

지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노매드랜드’ 속 방랑자들은 하루살이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일을 한다. 현대 최고의 부자인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가 개인 재산을 200조 가까이 축적 할 수 있는 이유의 가장 아래에는 기술혁신이 아니라 일시적인 일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 집 잃은 사람들과, 화장실 가는 일조차 눈치가 보여 플라스틱 물병에 소변을 보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한국의 아마존이라는 쿠팡 또한 다르지 않다. 주식 시장 상장 첫날 100조 기업이 됐던 쿠팡이지만, 이 기업의 수익은 극단적인 노동자 쥐어짜기가 담보한다. 새벽배송 중에, 귀가 후 욕실에서, 배송지 인근에서 과로에 시달린 노동자들이 죽음을 맞지만 기업은 자신들의 이익을 고객의 만족으로 포장하고, 국가에게는 이러한 기업의 폭주를 제어할 방법이 없다.

지난 20여년 사이 한국 사회는 거대자본의 일방적인 승리의 역사일 따름이었다. 사회의 자원 배분을 시장원리에 위임하는 신자유주의가 힘을 얻은 이후 계속 되는 현상이다. 거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더해지자 계층간 자본의 분화 폭이 날로 커져가는 ‘통제 불능’의 징후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2020년 12월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사상 최고로 올랐다는 기사들이 언론 지면을 덮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이전부터 계속된 일상적인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심리적인 상승의 한계가 무너진 것은 국민 개인에게는 이제 다시는 내 집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신호로 다가왔다. 불안을 넘어 공포에 빠진 시민들이 영혼을 끌어 모아 아파트 구입에 참여했고, 2021년 현재 문재인 정부 출범시 7억원 안팎이던 아파트 가격이 13억원까지 상승했다. 같은 시기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 그래프는 수직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2018년 이후 잠잠했던 가격표가 요동을 치더니 2021년 4월 비트코인의 가격이 800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동원 가능한 모든 방식을 움직여 가상화폐 시장에 뛰어 들었다. 투자는 커녕 투기라고도 부를 수 없는 도박에 준하는 시장에서 하루에 움직이는 거래대금만 24조가 넘고, 이는 국내 주식 투자규모를 넘어선다. 게다가 국가는 이를 관리할 법률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말 그대로 무법천지 서부개척 시대의 현대판이다. 2021년 3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이 드러난다. 공기관 임직원에 의한 부동산 투기는 국가 체제 전반에 대한 불신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국민들은 LH직원들의 비리가  조직적으로 오랜 기간 이뤄졌고, 범죄가 드러나고 난 뒤에도 죄의식 없이 뻔뻔한 태도로 일관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투기범들에겐 타격감을 줄 수 없다는 현실의 좌절감이 극복되지는 않았다.

ⓒistockphoto
ⓒistockphoto

 

경희대 엄혜진 교수는 2012년 ‘꼴페미’에 의존하는 사회라는 글에서 “‘꼴페미’ 담론은 젠더관계를 남성과 여성이라는 개인, 혹은 집단 간의 이해관계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사회적 불안이 만들어내는 분노와 욕망의 출구 역할을 하는 신자유주의적 안전망”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손가락 음모론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혐오 또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신자유주의 시장에서 자산 격차의 주요 피해자인 20~30대, 그 중에서도 남성들이 겪고 있는 일련의 패배감들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어려운 지경에 도달한 듯 하다. 문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국가 제도 안에 더 이상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문제 해결에 책임을 져야하는 정치인들은 오히려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향해 차별과 폭력을 부추기며 자기 표몰이를 하는 중이다. 이런 태도는 시민들이 스스로의 공포를 위로받기 위해 혐오를 사용하는 것만큼 해롭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소수자들을 향한 폭력으로 현 구조 유지에 일조한다.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각자가 서있는 위치의 차이를 존중하는 일이다. 서로에 대한 존중만이 시민 연대를 가능하게 하고, 연대한 시민만이 신자유주의의 폭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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