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바느질의 장점은 기능적인 손놀림과 감성적인 마음 나눔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 바느질은 최고의 힐링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박효신

시골로 온지 얼마 안되어 한 농촌여성 단체에서 마련한 ‘바느질로 맺어진 우리는 일촌’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이주여성 정착을 위한 쌍방향 다문화 이해 증진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취지는 ‘바느질이라는 활동을 통해 이주여성과 지역여성이 자연스럽게 만나 서로를 알아가고, 배우고, 격려하며 아름답게 소통하자’는 것이었다.

일본, 중국,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주여성들과 다양한 활동을 하는 현지 여성들이 6개월 동안 한 주일에 한 번 씩 만나 수다를 떨며 바느질을 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거창한 취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니, 취지를 일깨울 필요가 없었다. 우리 여자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서로 이해하며 소통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바느질방에 드나들면서 내가 얻은 소득은 새로이 만들어진 아름다운 인연이다. 나하고는 상관없다 생각한 이 땅에 시집온 여성들과 친구가 된 것이다.

울 동네도 멀리서 시집온 이주여성들이 있고 매스컴을 통해 수없이 그들의 모습을 접해왔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겉모양뿐이었다.

좁은 바느질방에서 엉덩이를 부딪쳐가며 한 땀 한 땀 떠가면서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바느질이라는 독특한 매개물을 통해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이 땅에 살고 있는 현지 여성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다른 것이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우리보다는 몇 십 배 어렵다는 것이다. 그들은 위로받기 위해 달려갈 친정도 친구도 너무나 멀리 있다.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터놓고 싶어도 말이 서투니 마음 훌훌 털어낼 방법이 없다.

그런 그들에게 바느질은 비상구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필리핀 댁, 일본 댁, 중국 댁의 표정은 어색하고 딱딱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웃음이 늘었고 목소리가 커졌고 바느질 방에서 언니를 만난 듯 엄마를 만난 듯 편안해 했고, “일주일에 한 번 바느질 방에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그리고 남편 문제 자식 문제 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고 우리는 같이 생각하고 조언해주고 풀어갔다.

그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다가가고 관심을 갖고 이 땅에 뿌리내리도록 도와주어야 할 일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고.

나는 재작년 우리 지역에 바느질 동아리를 만들었다. 요즘 농촌은 은퇴 후 귀촌한 부부 가정이 많이 늘고 있다. 그중에는 원치 않음에도 은퇴한 남편 따라 내려온 여성도 적지 않다. 이들 중 상당수가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 증세는 병으로 취급되지도 않고 인지한다 해도 마땅히 치료받거나 상담받을 기회가 거의 없어 문제가 안으로 깊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동아리에도 이런 분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바느질을 하면서 우울증이 치료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 바느질 동아리의 이름은 ‘쪼꿈’, ‘쪼가리들의 꿈’의 줄임말이다.

우리가 하는 바느질은 비싼 천을 사서 하는 바느질이 아니라 안 쓰는 천쪼가리나 안 입는 옷을 해체해서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이다. 안쓰고 버려지는 작은 쪼가리들, 그들의 꿈은 누군가에 의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또한 회원들 한사람 한사람도 지구를 구성하는 하나의 쪼가리이며 우리도 이 동아리를 통해 꿈을 이루어보자는 뜻이다. 우리 동아리의 취지는 ‘바느질’이라는 생활밀착형 창작활동을 통해 기능도 익히고 자신의 경험, 느낌, 감정 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내면의 힘을 기르자‘는 것이었다.

바느질을 해보고 나는 깨달았다.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견디기 힘든 시집살이와 가부장문화 속에서 어떻게 감정을 추스르고 인내하며 자기 자리를 지켜나갔는지를...

밤새워 가족들의 옷을 짓던 여자들의 손에 들린 바늘과 실, 그것은 단순히 천을 꿰매는 도구는 아니었다. 마음을 꿰매고 다듬고 모양을 완성해가는 정신적 도구이기도 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바느질의 장점은 기능적인 손놀림과 감성적인 마음 나눔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 바느질은 최고의 힐링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박효신<br>
박효신 작가

 

키워드
#에세이 #귀촌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