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성폭력 생존자 7인의 이야기
생존자 두 번 울리는 ‘공소시효 10년’
가족과 당장 분리도 어렵고
고발·자립할 힘 키우려면 시간 필요한데
시효 지나 심판도 처벌도 못한다니...
그래서 싸우는 생존자들
“피해자는 잘못 없고 세상은 반드시 바뀌어요”

어버이날인 5월8일, 친족성폭력 생존자 민지 씨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사거리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성신문
어버이날인 5월8일, 친족성폭력 생존자 민지 씨가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사거리에서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여성신문

이어지는 기사 ▶ 아빠·오빠의 죗값 묻지 않는 사회, 우리가 바꾼다 www.womennews.co.kr/news/212189

나를 추행한 아빠와 오빠,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친족성폭력 피해자가 13살 미만인 경우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지만, 13살부터는 공소시효가 10년에 불과하다. 디엔에이(DNA) 증거 등 과학적 증거가 있으면 10년 연장할 수 있지만, 길어도 20년이다.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친족성폭력 피해자의 55.2%는 첫 상담을 받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다(한국성폭력상담소 2019 상담통계)는 통계가 있다. 가족 없이 혼자 살아갈 힘이 부족해서 참기도 한다. 자신의 경험을 ‘피해’나 ‘트라우마’로 인식하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한다. 가족의 특성상 가해자/피해자의 분리가 어려운 현실, 생존자가 가해자에게 갖는 이중적인 양가감정도 이해해야 한다.

생존자들이 시간을 쪼개 시위하고, 글을 쓰고, 청원 운동에 나서는 이유는 당사자가 나서야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를 앞당길 수 있을 거라는 절박함 때문이다. 50대 푸른나비에게는 인생의 숙원이다. 그는 8살부터 10년간 친족성폭력을 겪었다. 용기를 냈을 때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 청와대 국민청원 운동을 주도하고, 다른 생존자와 여성·시민단체를 찾아다니며 동참을 요청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국회에서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무소속 양정숙 의원은 지난 1월 친족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친족성폭력 사실을 알게 된 친족이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성폭력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1월23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 자료에서 “반드시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반인도적,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올해는 폐지될까. 무소속 양정숙 의원은 지난 1월 친족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1월23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 자료에서 “반드시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반인도적,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신문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올해는 폐지될까. 무소속 양정숙 의원은 지난 1월 친족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성신문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올해는 폐지될까. 무소속 양정숙 의원은 지난 1월 친족성폭력 범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1월23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 자료에서 “반드시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반인도적,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신문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1월23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 자료에서 “반드시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반인도적,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신문

“피해자는 잘못 없고 세상은 반드시 바뀌어요”

생존자들은 하루빨리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피해자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홀로 아파하고 있을지 모르는 다른 생존자들에게도 응원을 보냈다.

“제가 10대 시절이던 1990년대와는 완전 다른 시대입니다. 이제는 그 위험한 가족을 벗어나면 일상지원과 법률지원, 상담지원 등 다양한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져 있으니 조금만 용기를 내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요즘은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시민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 참 다행입니다.” (김영서)

“피해자는 잘못이 없고 세상은 반드시 바뀌어요. 생존자가 직접 바꾸고 말 거예요. 우리가 여기 함께 있어요. 누르느라 애써온 이야기들 안전하게 나눠요. 어서 오세요.” (명아)

“도움 요청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생각보다 고통이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이겨낼 것입니다. 저는 그 언젠가가 내가 죽는 순간이 되더라도 괜찮다고 이제는 생각합니다.” (정인)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에요. 안전하게 말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들이 있습니다. 1366,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 많은 곳들이 있어요. 다 제가 도움을 받았던 곳들이에요. 말해도 돼요. 도움받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민지)

“지금 1인시위를 하는 피해자들 역시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감히 힘내서 나오라는 말을 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피해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왜 이 일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죠?” (단단)

“내 자신만 봐도, 말 한마디 못하고 견디기만 하는 생존자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기사가 나가면 오히려 마음에 갈등이 생겨 더 힘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 자체가 약점이 될까 싶어 두려워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들 각자 살아가는 위치에 따라 말조차 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고 있으니 앞으로 살아있기만을 바랍니다. 이 일은 내 일이고 나와 같은 너의 일을 ‘함께 말한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됩니다. 그래서 조금만 더 견디고 살아만 있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각자 작은 물줄기로 흐르다 강물 되어, 함께 만나, 이 땅이 바다가 되도록, 우리 모두로 뒤덮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푸른나비)

아빠, 오빠 등 친족의 성폭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다음 기관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여성긴급전화 1366 (국번없이 1366)
-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 ksvrc@sisters.or.kr, www.sisters.or.kr)
- 한국여성의전화 (02)2263-6465, http://hotline.or.kr)
- 탁틴내일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 (02-3141-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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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은 <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기획 보도를 시작합니다. 조명받지 못한 젠더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보도함으로써 인권 증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친족성폭력 생존자] 아빠·오빠의 죗값 묻지 않는 사회, 우리가 바꾼다 www.womennews.co.kr/news/212189

▶ [친족성폭력 생존자] 7살 때 성폭력, 오빠는 처벌받지 않았다 www.womennews.co.kr/news/212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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