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취재 - 살고 싶어 아빠 ‘성’ 버렸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이지영씨 이야기
7살 때부터 10년 동안 친아빠의 성폭력 견뎌
가정폭력 당하던 엄마는 딸 피해 알고도 방임
사건 공소시효 지나 가해자 처벌 못 해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친부가 준 성‧본 변경 뿐“

ⓒpixabay
ⓒpixabay

“내가 바꿀 수 있는 현실은 그것뿐이었어요.” 

이지영(가명‧33)씨가 성‧본을 변경하기로 한 이유는 이것뿐이다. 아버지라는 사람이 물려준 성을 바꾸는 일. 가해자와 같은 성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인연을 끊고 싶었다. 

30년간 ‘김지영’(가명)으로 살아온 이지영씨는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 일곱 살 무렵 시작된 아버지의 성추행은 10년간 이어졌다. 단 둘이 있을 때 성인의 입맞춤을 따라 해보자며 시작된 친부의 행동은 얼마 뒤 이씨를 침대로 데려가 성추행을 하는 것으로 범행 강도가 세졌다. 범행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다. 한밤 중 자고 있는 중학생 딸의 방에 들어가 가슴을 주무르고는 “가슴이 작다”고 불평을 했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딸에게 “엄마인 줄 알았다”고 핑계를 댔다. 반항하려 하면 손부터 올라갔다. “어느 날은 성기가 아프니 주무르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밤마다 언제 아버지가 들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선잠을 자야했다. 방문을 잠그기라도 하면 불호령이 떨어졌기에 열린 문을 박차고 아빠가 들어오면 어쩌나 두려움에 떨며 잠을 설쳤다. 중학생 무렵 시작된 수면장애는 서른 살이 넘은 지금까지 약 없이 잠들기 힘들 정도로 그를 따라 다닌다.  

가정폭력 피해자 엄마의 방임 

이씨는 피해 직후 어머니에게 사실을 알렸다. “엄마, 아빠가 자꾸 나 괴롭혀. 이상한 데 만져.” 어머니는 “잠결에 그랬다”는 말로 아빠를 감쌌다. 이씨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나섰다면 아빠의 범행을 막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씨는 엄마를 원망하진 않으려 했다. 

“엄마도 삶에 지쳤으니까요.” 

엄마도 가정폭력 피해자였다.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뒤 집에서 쫓겨난 엄마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직했다. 20대 초 아버지를 만나 혼전임신을 한 뒤 결혼한 엄마는 신혼 때부터 아버지에게 매를 맞았다. 주먹과 발길질을 피해 친정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집 귀신이 되라”는 친정 식구의 말을 들은 엄마는 더 이상 도망치지 못했다. 그 뒤에도 경찰이 몇 번이나 집에 와 아버지를 말렸지만 그 뿐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밥상을 뒤엎어도 묵묵히 상을 치웠고, 밖에 나가 돈을 벌었다.

“엄마는 저와 언니를 돌봐줄 여유가 없었어요. 엄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도 돌아볼 수 없었으니까요.” 

어머니의 방임 아래 아버지의 불쾌한 성희롱과 성추행은 계속 됐다.

“제 몸이 더렵혀진 기분이었어요. 학창 시절 내내 졸업하기만을 기다렸어요. 내가 성인이 되면 아빠가 더 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어요. 어른처럼 보이는 게 싫었어요. 그래서 독립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무조건 집에서 멀어지자고 다짐했죠.” 

집에 알리지 않고 지방에 있는 대학교에 지원했고 결국 집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됐다. 

법은 친부의 죗값을 묻지 않았다

이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고 휴학을 밥 먹듯이 했다.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말할 수 없었고, 들어줄 사람도 없었다. 친구에게도 ‘아빠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털어놓기 힘들었다. 대인관계는 깊어질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했지만 삶은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다. 이씨가 28세가 되던 해 친언니마저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신적 충격과 심각한 우울증이 점점 이씨를 조여 왔고 견디다 못해 32살이 돼서야 변호사를 찾았다. 그러나 이씨가 받은 대답은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것이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 성폭력에 대해서만 공소시효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소시효 폐지 이전에 일어난 사건의 경우에는 그 당시의 법을 적용하게 된다. 2007년 12월 이전에 이뤄진 범죄에는 공소시효 7년이 적용되고, 2012년 12월 18일까지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범죄에 대해서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관한 공소시효 특례 규정이 적용되어 13세 미만의 사람에게 이뤄진 성범죄에 대해 공소시효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

이씨가 아버지에게 처음 성범죄를 당한 해는 1994년, 마지막 피해는 2003년에 겪었다. 2003년 마지막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는 7년이 적용되므로 2010년에 시효가 끝났다. 이미 오래 전에 가해자에게 죗값을 물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눈앞의 가해자는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씨는 “사과는커녕 아무 일 없는 듯 잘 살고 있는 친부를 보면서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으로부터 학대당하고 딸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엄마는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지지 않았다, 당신도 그렇다

이씨는 부녀의 연을 끊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고 했다.

“법적으로 처벌이 안되니 청부 살인도 생각할 정도였어요. 목숨을 끊고 싶다가도 이렇게 죽어버리면 아무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것도, 가해자가 친부라는 것도 모를 것 아니에요. 이렇게 죽기엔 억울했어요.”  

이씨는 공소시효 완료로 절망하고 있을 때, ‘성‧본변경’이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다. 성‧본변경은 평소 뿌리를 중시했던 아버지의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탈출구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성으로 변경하기 위한 ‘자의 성과 본의 변경허가심판 청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변호사들은 이번에도 “어렵다”고 고개를 저었다. 부모가 이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머니의 성으로 변경하는 것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얘기였다. 마지막으로 찾은 한 변호사에게 처음으로 가정폭력과 친족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고 애원했다. “제발 성이라도 바꿀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마지막으로 상담한 변호사만이 긍정적인 답변을 해 주었고 그것에 용기를 얻어 성본변경을 신청했다.

성‧본 변경 절차는 간단치 않다. 먼저 가족관계 증명서, 진술서, 주민등록등본, 부모의 혼인관계증명서, 사건본인의 기본증명서·범죄경력조회서 등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서류를 제출하면 법원은 이해관계인인 친부에게 의견청취서를 보낸다. 이 과정에서 친부가 동의하거나 답변을 아예 하지 않으면 수월하게 절차가 진행되지만 만약 동의하지 않으면 절차가 복잡해진다. 

이씨는 친족 성폭력과 가정폭력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은 진술서와 함께 필요 서류를 냈다. 이씨의 친부는 의견청취서를 받았으나 법원에 답변을 제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 법원은 마침내 이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김지영이 아닌 이지영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3년간 제게 일어난 일 중 가장 기뻤어요. 누군가 내 얘기를 듣고 내 아픔을 알아줬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어요. 그동안 어디서든 대놓고 얘기를 해 본적이 없어요. 창피했고 수치스럽고 괴로웠어요. 엄마도 들어주지 않은 일이니까요. 성본변경  허가가 나니 법원에서 제 아픔을 인정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어요”

이씨는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와 함께 성‧본 변경 시 자녀의 의사가 최우선이 반영되도록 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했다.

“제가 친족 성폭력 피해를 세상에 꺼내놓기 까지 10년이 걸렸어요. 범죄 특성상 어린 나이에 피해를 겪는 경우가 많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를 드러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겨우 용기를 내서 신고하려고 보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버리는 거죠. 친족 성폭력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리는 심각한 범죄임이 법률 적용에 반영되어 저와 같은 피해자들이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