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성폭력 사건] -왜곡된 성 인식 문제, “뜯어 고쳐야”
가해자에는 면죄부 피해자는 죽음 내몰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이모 중사의 추모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이모 중사의 추모소를 찾아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

‘공군 성폭력 사망 사건’은 폐쇄적인 문화 속에서 여군을 동료로 보지 않았고 피해 호소를 묵살했으며 사건 은폐와 상급자들의 2차 가해 의혹까지 일어난 ‘적폐 종합세트’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더 이상 군 성범죄를 군에 맡길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가 9일 개최한 긴급 현안보고에서 여야는 한 목소리로 군 당국의 부실한 수사와 국방부의 미흡한 대처를 질타했다. 서욱 장관은 이 자리에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군내 성폭력 사건 대응 실태와 시스템을 재점검해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죽음에 내몰린 이모 중사가 피해를 입은 지 99일, 숨진 지 18일 만이다.

정치권은 군 스스로 진상규명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군사 관련 범죄가 아닌 일반 범죄는 민간에서 수사·기소‧재판이 이뤄지도록 군 사법체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2019년 보통군사법원에 접수된 사건(2839건) 가운데 군사 관련 범죄는 전체의 8.0%(228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92%는 민간에서 재판을 진행해도 문제 없는 교통·폭력·성범죄 등 일반 사건이었다. “군 형법은 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댄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방부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군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성범죄 사건 총 4936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2173건(44%)이었다. 같은 기간 1심 선고 기준 성범죄 사건 실형 비율이 각각 육군 10.3%, 해군 10.5%, 공군 9.4%였다. 군에선 성범죄로 입건된 뒤 실형 비율은 10건 중 1건꼴이다. 군사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군 사법체계 개편 필요성이 커지자 국방부는 지난해 5월 군사법원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법사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사건 가해자 뿐 아니라 가담자와 지휘라인 모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일벌백계 해 성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을 군 내부에 심어야 한다는 뜻이다. 군인권센터는 가해자 처벌과 함께 “사건을 조작, 축소, 은폐 2차 가해를 일삼은 이들과 피해자 보호에 실패한 지휘관을 엄중 수사하고 문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군 전반에 깔려 있는 왜곡된 성인식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중령 이하 예비역 여군 모임인 젊은여군포럼(대표 김은경)은 7일 보고서를 통해 “여군 부사관은 부대 내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상 가장 하위 자리를 차지해서 ‘함부로 대해도 되는 대상’으로 취급됐다”고 지적했다. 마초적인 군 조직에서 여군은 동료로 대우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젊은여군포럼은 이 같은 내용의 ‘군 조직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힘없는 여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근원적 문제 해결’ 보고서를 국방부 장관에게 전달했다. 

군 전반에 깔려 있는 왜곡된 성인식을 바꾸고 성인지 정책 안착을 위해 국방부 ‘양성평등과’를 ‘양성평등국’으로 직제를 개편하고 성고충상담관의 지위를 높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제안도 나온다. 현재 군단급의 ‘성고충전문상단관’은 예하부대 지휘참모 라인에 소속되어 있고, 소속부대 지휘관의 근무평가를 받기 때문에 소신 있는 업무 수행이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를 상설화하고 독립된 민간위원회로 꾸려야 한다는 제안도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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