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 이모 중사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이 중사는 지난 3월 선임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신고한 뒤 두 달여 만인 지난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홍수형 기자
7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 이모 중사 분향소에 조문객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이 중사는 지난 3월 선임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신고한 뒤 두 달여 만인 지난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홍수형 기자

“페미니즘이 성경이냐”라고 말했던 이준석이 모든 청년들의 대변자가 되어버린 것처럼 많은 이들이 떠들어대던 2021년, 여성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엄지와 검지를 붙이거나 조금 뗀 손가락 포즈가 개인의 사상을 나타낸다고 믿는 이들이 기어코 GS25 포스터 디자인을 맡은 한 여성의 직장을 빼앗아가던 시기였다. ‘이대남’의 표가 중요하다며 정치인들이 ‘여성징병제’와 ‘군가산점제’를 말하던 그 때 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부조리가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던 한 사람의 인간에게 덮쳤을 때 사람들은 잠시 당황하다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악마같은 가해자들을 처벌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피해자를 내팽겨쳤던 국선변호인, 밝혀지지 않은 추가 가해자, 피해 신고를 접수하였으나 어떠한 것도 하지 않은 공군본부의 양성평등센터, 조직적인 은폐와 방관과 괴롭힘, 유족들에게 최소한의 사과도 없이 빠르게 사표를 내버린 공군참모총장, 솜방망이 처벌을 하던 군사법원, 작동하지 않은 징계 시스템까지. 가해자에 대한 강력 처벌이 이루어져야한다는 말에 너무나 동의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것이 불명확해졌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도대체 악마같은 가해자의 범위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사건의 연루된 모두는 ‘가해자’일 수 밖에 없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은 모두 이 죽음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앞에 붙는 수식어가 ‘악마’일 수는 없다. 그들은 악마의 얼굴을 한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친구이자 누군가의 동료, 어떠한 누군가에게는 존경받는 얼굴로 살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대라는 공간에서 성폭력이 용인되었기 때문에, 폐쇄성과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는 군대에서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여군의 인권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성평등이 이 사회에서 합의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악마같은 가해’를 저지를 수 있었다. 그래서 ‘악마같은 가해’를 강력 처벌하는 것 만큼 ‘악마같은 가해’를 용인하는 사회를 바꾸는 것도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이 슬픈 이유도 다르지 않아야 한다. 악마같은 가해자에게 희생된 무력한 피해자를 떠올리기보다 이 사건에 모두가 책임감을 느끼기에 슬프길 바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악마같은 가해자와 완전히 다르기에 성폭력 사건에 책임이 없는 개인’으로 정체화하는 비겁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대신 이 사회에서 또 한 사람의 여성을 떠나보내야했고,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세상을 바꿔야하는 과제를 짊어진 사람들로 정체화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유구한 역사 동안 여성 문제를 사소하게 치부했던 정치권이, 엄지와 검지를 조금 뗀 손가락 포즈가 포스터에 들어갔다는 의혹에 화들짝 놀라며 사과문들을 작성했던 기업과 단체들이,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군 당국이, 지금도 피해를 묵살하고 있는 수많은 공간들이, 이 모든 일들이 나와 상관 없는 일이라 믿는 사람들이 조금 더 슬프길 바란다.

기본소득당 <베이직 페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사이버 추모관(https://campaign.do/cvL8)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기본소득당 신민주 후보. ⓒ신민주 선거캠프 제공
신민주 기본소득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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