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6월 13일 오전 따릉이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6월 13일 오전 따릉이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삭 줍는 여인들〉은 17세기 소박한 프랑스 농민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던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에는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는 세 여인이 나온다. 이 그림을 놓고 엇갈린 해석들이 존재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그림에서 농촌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풍경을 떠올린다. 하지만 자기 밭이 아닌 남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있는 여인들의 거칠은 얼굴과 손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고된 노동의 고달픔을 떠올린다. 페미니스트 화가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이 그림을 가리켜 “추수가 끝난 후 이삭을 줍는 등의 고된 일은 전통적으로 여성과 아이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시대적 서사로 연결시킨다. 

밀레의 사실적 그림 하나를 놓고 ‘평화’와 ‘고통’이라는 정반대의 해석이 나오듯이,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현실에 대한 해석의 간극도 무척 크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었던 이준석-진중권의 젠더 논쟁이 그것을 보여주었다. 남성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음을 호소한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를 공약으로 이대남(20대 남성)들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열광하는 남자들이 있으면, 비토하는 여자들이 있다”는 진중권의 경고가 무색하게, 이준석은 제1야당의  대표로 선출되며 기염을 토했다. 낡은 기득권 정치를 혐오하며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갈구했던 많은 사람들은 세대교체의 주역이 된 이준석에게 뜨거운 응원과 기대를 보낸다.

하지만 그 와중에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준석으로 인해 안티 페미니즘적 주장들이 힘을 얻어 양성평등의 시대적 추세가 교란받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이준석은 자신이 페미니즘 전체에 대해 반대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지만,  쏟아낸 말들이 전체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우려를 낳은 것은 사실이다. 나도 남성이지만, 남성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여성들이 겪는 현실을 100% 이해하지 못한다. 밀레의 그림에서 평화를 읽을 것이냐 고달픈 노동을 읽을 것이냐 하는 것도 대부분 각자의 처지와 연관된다. 자신의 경험에 따라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그림 속 세 여인을 보는 눈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성들이 직접 살아보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준석이 남성으로서의 그러한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여성들의 삶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성찰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이제 이준석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 어느 쪽 편을 드는게 유리할까를 고민하는 작은 정치인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며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할 책임을 가진 위치에 섰다. 남성들보다 몇배의 노력을 해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사회에서 ‘이제는 남성들이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정치인의 얘기는, ‘집에서 살림만 하는게 뭐 그리 어렵냐’는 남편들의 얘기만큼이나 무지몽매하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는 선출직 최고위원 4명 가운데 3명이 여성이었다. 이준석이 강조하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선출된 여성들이다. 이 기회에 우리 여성들의 진출이 결코 남성을 역차별하는 불공정한 제도 덕분이 아니었음을, 남성들과는 달리 양육과 가사노동에서부터 사회적 역할까지를 원더우먼처럼 수행해내야 하는 여성들 자신의 눈물과 땀이 만든 것임을 이준석이 알게 되었으면 한다.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존"이라고 말했던 이준석이다. 여성들도 누릴 수 있는 더 큰 공존의 길을 이준석도 함께 찾게 되기를 기대한다.

온갖 상찬의 말 속에서도, 자신에게서 모자랐던 부분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성찰하는 겸허한 모습을 보고 싶다. 37세로 제1야당 대표가 된 이준석에게 많은 기대를 걸기에 하는 말이다. 그의 정치는 이제 시작일 뿐, 비어있는 부분이 보이면 하나씩 채워나가야 할 일이다. 여성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오해가 있었다면 풀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면 바꿔나가야 한다.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갖겠다면, 이 세상 반쪽들의 삶을 껴안을 수 있는 넓고 깊은 리더십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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