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언어 더 쉽고 가깝게 5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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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021일 오전 738. 서울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1979, 개통된지 겨우 15년만이었다. 다리를 지나던 버스와 승용차, 택시 등이 강으로 추락하면서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원인은 부실 시공과 관리 소홀이었다.

상판을 떠받치는 구조물(트러스)의 이음새가 용접 불량과 수리 부족으로 벌어진 상태에서 설계 당시 통행차량의 총중량 한도(32.1)25%이상 넘는 40톤 대형트럭이 마구 통과하자 다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내린 것이다.

강이나 바다 위에 놓인 커다란 다리(대교)든 일반도로 위에 만들어진 고가(高架)다리든 다리는 지탱하는 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다리 진입 부분엔 지나다닐 수 있는 차량의 한도를 지정한 표지가 있다. <총중량, 축하중, 차량제원>이라는 표시다. 총중량은 자동차와 짐의 무게를 합한 것으로 <전체 무게>라고 쓰면 될 일이다.

<축하중>은 뭘까. 순간적으로 <축하 중>이라고 읽는 바람에 뭘 축하한다는 건가 싶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닐 것같아 생각해보니 <축 하중>이라는 걸 깨닫긴 했다. 자동차의 바퀴를 연결하는 축()에 작용하는 무게라는 뜻이다. <()당무게>라고 해도 될 것을 축하중(軸荷重)이라는 한자어로 쓴다. 그것도 한글로만. 참고로 북한식 용어는 축당 짐이라고 한다.

<차량제원>은 또 뭔 뚯인가. 이 역시 한글로 써놓으니 제원이 무슨 뜻인지 알 길 없다. <제원(諸元)>의 사전적 풀이는 기계류의 치수나 무게 따위의 성능과 특성을 나타낸 수적 지표, 영어로는 그냥 데이터(data)'.

차량제원은 그러니까 높이나 길이, 너비 등 자동차의 여러 가지 구성요소라는 뜻이다. 교통표지판의 <차량제원>통과차량 한도혹은 통과차량 크기등으로 쓰면 될 것을 차량제원이란 한자어로 표시하는 셈이다.

자동차나 교통 관련 용어엔 유독 한자어나 일본어 잔재가 많다. 앞바퀴 중심과 뒷바퀴 중심 사이 거리를  '축간거리'  대신 휠베이스혹은 축거(軸距)’ ‘윤거(輪車)’라고 부르는 식이다. ‘옆바람이라는 쉬운 말을 두고 횡풍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추월앞지르기로 바꾼 것처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다. 차량제원의 요소를 전고, 전장, 전폭’  이라고 쓰지 않고  높이, 길이, 폭이라고 한 것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달라진 양상이다. 기왕이면 <통과차량 한도 혹은 통과차량 크기: 높이, 길이, 너비>라고 쓰면 더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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