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반격), 그 중에서도 할당제에 대한 백래시가 강력하다. 그것도 남성이 과대대표돼 있고, 남성/성 질서가 암묵적인 기준이자 규범으로 작동하는 공간인 정치에서 말의 힘을 갖게 된 청년남성 정치인이 ‘공정’과 ‘능력주의’를 내세우며 할당제 폐지를 주도하고 있다. 이 청년남성 정치인의 이름은 굳이 밝히지 않는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당대표가 된 청년남성 정치인은 자당의 제4기 여성정치아카데미 입학식에 참석해 “앞으로 성별이 하나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실력으로 경쟁하고 사람을 뽑다 보면 어떨 때는 남성 100%, 어떨 때는 여성 100%가 나올 수 있다”고 발언했다(손덕호 2021).

2015년 당시 김무성 대표 또한 자당(새누리당)의 여성정치 참여 확대 토론회에 참석해 “(여성대표성 순위가) 나쁜 것에 대해서 남성의 책임이라고 미루는 게 사실 아닌가? … 모두 여성들 책임이다. … (여성들은) 떼쓰지 말고 스스로 개발하고 노력해야 한다”며 호통을 쳤다(이길호 2015).

왜 남성 정치인들은 유독 여성들만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까? 왜 남성들만 있는 공간에서는 성별화된 대표성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남성 100%도, 여성 100%도 반대

국민의힘 청년남성 당대표는 실력만 있으면 여성 100%도 괜찮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주장에 반대한다. 남성 100%도 반대하지만 여성 100%도 반대한다. 정치적 대표성에 있어 페미니즘이 주장해온 것은 여성의 독점(monopoly)이 아니라 성별균형(parity or gender balance)이다. 독점은 편향을 발생시킨다. 남성들이 독점한 정치가 여성에 대한 수만 가지 편견과 고정관념을 양산하며, 성차별과 성불평등을 정당화해왔듯이 여성들로만 구성된 정치도 또 다른 편향을 발생시킬 수 있다.

<표 1> 여성의 수적 대표성에 근거한 남성의 정치장악 정도

선출된 여성비율

장악 정도

10% 미만

남성독점 (monopoly)

10-25%

거대한 다수의 남성

25-40%

작은 다수의 남성

40-60%

성별균형 (parity or gender balance)

* 출처: 드루드 달러럽(2018, 53) 

정치적 대표성에서 성별균형을 추구하는 이유는 다양성(diversity)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특히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된 사람들, 성별뿐만 아니라 계급·계층, 장애, 교육, 인종, 연령, 종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정치에서 배제되었던 사람들이 지금의 기득권 집단(고학력·상층·비장애·이성애·중장년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 권력과 권위(political power and authority)를 갖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더 궁극적으로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사회·가족 등을 가로 질러 뿌리 깊게 존재하는 구조적 불평등의 기반을 해체하는 것이다. 즉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기본 이상에 더 가깝게 다가서기 위함이다.

2015년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동수내각이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이유는 성별균형과 다양성이 모두 충족됐기 때문이다. 당시 장관 중 2명은 원주민, 3명은 외국 출생, 2명은 시크교도, 1명은 무슬림, 2명은 무신론자, 1명은 유방암 환자, 2명은 장애인, 1명은 성소수자, 1명은 빨강머리였다. ⓒ캐나다 총리실
2015년 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동수내각이 사람들로부터 환호를 받은 이유는 성별균형과 다양성이 모두 충족됐기 때문이다. 당시 장관 중 2명은 원주민, 3명은 외국 출생, 2명은 시크교도, 1명은 무슬림, 2명은 무신론자, 1명은 유방암 환자, 2명은 장애인, 1명은 성소수자, 1명은 빨강머리였다. ⓒ캐나다 총리실

이러한 맥락에서 성평등 정치(gender equality in politics)는 성별균형과 다양성을 동시에 지향한다. 그동안 성별할당제(gender quota)는 성별균형에만 초점을 맞춰 논의되어 왔는데 다양성이 함께 고려되지 않으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구조적 부정의(injustice)(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성별균형이 맞춰졌다고 하더라도 고소득자, 명문대학, 중장년, 이성애자, 비장애인 등과 같은 동질적 특성을 가진 여성과 남성으로만 구성된다면, 이는 기존 남성정치의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정치적 대표성뿐만 아니라 정당 내 의사결정 조직의 구성에 있어 핵심기준은 성별균형과 다양성이 되어야 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 정치의 역할이다.

백래시, 남성 독점의 성별화된 정치구조 외면

성별할당제에 대한 백래시는 남성이 독점해온 성별화된 정치구조를 외면하고, 그 구조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거부하는 것이다.

202021대 총선에서 당선된 300명의 의원 중 남성비율은 81%(243). 지방자치를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지만 여성 광역단체장은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은 정치의 성별화된 구조(gendered structure)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역구 선거에서 여성이 남성과 다르지 않은 또는 수도권에서는 더 높은 당선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검증됐지만(권수현·황아란 2017 & 2018; 강예은·황아란 2018) 남성 정치인들은 경쟁력 있는 여성후보가 없다는 말로 최소한의 여성만을 지역구 후보에 공천하며, 남성 독점 정치를 유지하려고 한다.

정치에서 여성은 바람직한 점유자가 아니다. 따라서 언제나 (정치할 자격과 자질에 대한) 의심의 부담, (여성 전체를 대표해야 한다는) 대표성의 부담감, 어린애 취급, 과잉 감시 등을 받게 되고, (남성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너무나 쉽게 바람직한 역량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너말 퓨워 2017). 특히 성별할당제를 통해 진입한 여성들은 이러한 낙인의 주요 표적이 된다.

그런데 스웨덴, 이탈리아, 대만, 영국 등에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성별할당제를 통해 진입한 여성들의 능력(교육 수준, 직업, 사회활동, 정치참여, 당선경쟁력, 당선 이후 정치경력, 연령·교육·직업·정치경험 등)은 남성들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없거나 여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Allen, Cutts, & Campbellet 2016; Baltrunaite et al. 2014; Besley et al. 2017; Huang, 2016). 한국 또한 비례대표 여성의원의 교육 수준은 비례대표 남성이나 지역구 남녀의원과 차이가 없었다(이진옥·황아란·권수현 2017). 성별할당제가 능력 없는 여성의 정치진입을 허용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이와 반대이며, 오히려 (여성보다) 남성집단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더 효과가 있다.

구조적 부정의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정치적 책임

여성 정치인이 언제나 얼굴과 옷과 같은 외모로만 주목받고 평가받으며, 남성의원보다 더 많은 ()폭력에 노출된다는 사실(IPU 2016; O’Connell and Ramshaw 2018; UN Women 2018),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남성지배의 정치구조를 유지시키는 데 우리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기여·관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모두 이를 해결할 정치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Iris Marion Young)자신의 행위를 통해 일부 불공평한 결과를 가져온 구조적 과정에 영향을 미친 모든 사람들이 부정의에 책임이 있다며(아이리스 매리언 영 2018), 구조적 부정의를 야기하는 제도와 과정을 변화시키기 위한 우리 모두의 정치적 책임(political responsibility)’을 요구한다. 영이 말하는 정치적 책임은 특정 개인을 비난하거나 죄를 묻고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부정의한) 구조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집단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구조적 부정의를 최소화하고 미래의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김희강 2020).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들어간 후보의 포스터가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상단과 중간). 그리고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된 여성청년 정치인들(하단)은 옷과 외모를 이유로 온라인에서 심각한 심리적 폭력(중상모략, 비방, 성격 공격, 모욕, 온라인에서의 괴롭힘, 혐오발언 등)을 겪고 있으며, 실제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들어간 후보의 포스터가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상단과 중간). 그리고 21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된 여성청년 정치인들(하단)은 옷과 외모를 이유로 온라인에서 심각한 심리적 폭력(중상모략, 비방, 성격 공격, 모욕, 온라인에서의 괴롭힘, 혐오발언 등)을 겪고 있으며, 실제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했다.  ⓒ뉴시스, 각 후보 및 의원 제공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속에서 백래시 현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학계와 언론의 논의들은 반페미니즘 흐름을 주도하는 남성들, 특히 20대 남성의 사고와 행태에 문제의식을 갖기보다는 이들이 다른 남성세대보다 성별고정관념이 약하다거나 현실을 게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등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포용하기에 급급하다. 반면, 분석대상에는 포함되었으나 20대 여성에 대한 내용은 없거나 빈약하기 짝이 없다. 공론장을 주도하는 학계와 언론 또한 (중장년) 남성이 과대대표된 남성화된 공간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남성 개개인이 아니라 성차별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해왔던 여성/페미니스트들의 요구는 지금도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성차별이라는 구조적 부정의의 해결을 요구했지만 여성/페미니스트들이 마주한 현실은 반페미니즘의 거대한 흐름과 이를 승인해주고 있는 기득권 남성(화된)권력(정치, 공공기관, 사기업, 학계, 언론 등)이다.

수천 년에 걸쳐 구축된 남성지배 구조가 쉽게 바뀔 리 없다. 그렇기에 반페미니즘 행태에 분노로 맞대응하기보다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적 부정의를 드러내는 데 더 집중하고, 이의 해결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들고, 공동행동을 모색하는 것이, 페미니스트이자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지는 자세일 것이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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