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주식 투자 열풍 한편에선
소소한 수익 내는 재테크 인기
‘한방’보다 ‘작지만 확실한 보상’ 추구
2030 여성 많아...종잣돈 없는 사회초년생이나
원금 손실 우려 투자 꺼리는 이들
코로나 이후 커진 불안·불확실성도 한몫
“티끌도 안 모으면 망해...선택 여지 없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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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주식 투자 열풍이 거센 요즘도 ‘티끌 모아 태산’을 외치는 이들이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를 줄이거나, 소액으로 저축이나 재테크를 하는 ‘티끌테크’족이다. 2030 젊은 여성이 대부분이다. 사회초년생이라 주머니가 가볍거나, 원금 손실 위험이 따르는 투자를 꺼리는 이들도 많다. ‘한방’을 노리기보다 ‘작지만 확실한 보상’을 추구한다.

대학생 김현지(24·서울 성북구)씨는 이틀에 한 번씩 리서치 기관의 설문조사에 참여한다. 소비자 조사, 앱 사용 후기 조사 등에 참여하고 건당 1000~2000원의 현금성 포인트를 받는다. 포인트를 모아 상품권으로 바꾸거나 현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 김씨는 “하루 최대 10분만 투자하면 1000원을 벌 수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적게나마 용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블로그 운영으로도 월 4~5만원의 광고 수익을 받고 있다. 조회수·방문자 수가 많은 개인 블로그에는 구글애드센스, 쿠팡파트너스 등 광고 배너를 게재할 수 있다. 블로그 이용자들이 배너를 클릭해 광고 제품을 구매하면, 그 수익금의 일부를 블로그 운영자에게 지급한다. 

직장인 강단비(35·서울 서초구)씨는 퇴근길마다 길거리의 공유 전동킥보드를 찾아다닌다. 배터리가 부족한 전동킥보드를 찾아서 충전해주고 1대당 2000~5000원을 번다. “티끌 모아 태산이다. 소자본으로 돈 버는 법은 무궁무진하다”는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월급 외 소소한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구하기 어려운 인기 식물을 구해 잘 키워서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팔고, 블로그 운영으로 광고 수익을 얻고, 남는 방과 여유 주차공간을 임대하기도 한다.

시장 조사업체 엠브레인이 4월 만 19세~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엠브레인
시장 조사업체 엠브레인이 4월 만 19세~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엠브레인
시장 조사업체 엠브레인이 4월 만 19세~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엠브레인
시장 조사업체 엠브레인이 4월 만 19세~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엠브레인

이렇게 소소한 수익을 내는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시장 조사업체 엠브레인이 4월 만 19세~59세 직장인 1000명에게 물어보니, 97.3%가 ‘티끌테크’를 해봤다고 답했다. 직장인 10명 중 4명(39.2%)은 스마트폰 앱으로 광고 시청, 퀴즈 풀이 등으로 소액을 버는 ‘앱테크’를 하고 있었다. 펀드/ETF(25.9%), 부동산(18.8%), 가상자산(18.5%) 투자자보다 더 많다.

어떤 ‘티끌테크’가 인기일까. 설문조사에 참여해 현금성 포인트 적립(77.9%, 중복응답)을 해봤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할인쿠폰·기프티콘 등 상품권 활용(65.5%), 출석체크 이벤트로 포인트 적립(60.8%), 카드사나 금융사의 포인트 적립·교환(59.4%), 리워드 앱을 활용한 앱테크(48.7%), 저금통 활용(43.5%), 중고물품 판매·교환(41.9%), 유통기한 임박 상품 할인 구매(35.2%), 소액 주식·부동산 투자(34.2%) 등 답변도 나왔다.

네이버는 5월 ‘블로그 일기 쓰기’ 참여자에게 현금성 포인트 지급 행사를 열었다가 수십만명이 몰려 조기 종료했고, 이용자들의 항의에 재개했다. 이 역시 ‘티끌테크’의 인기를 방증한다 ⓒ네이버 블로그 화면 캡처
네이버는 5월 ‘블로그 일기 쓰기’ 참여자에게 현금성 포인트 지급 행사를 열었다가 수십만명이 몰려 조기 종료했고, 이용자들의 항의에 재개했다. 이 역시 ‘티끌테크’의 인기를 방증한다 ⓒ네이버 블로그 화면 캡처

종잣돈 없는 사회초년생이나
원금 손실 우려 투자 꺼리는 이들
‘한방’보다 ‘작지만 확실한 보상’ 추구
코로나 이후 커진 불안·불확실성도 한몫
“티끌도 안 모으면 망해...선택 여지 없다”

특히 여성 응답자의 75.8%(20대 76.8%, 30대 74.8%)는 “주변에 소소하게 용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답했다. 여성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티끌테크’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 사이에 주거나 직장 문제로 인한 상실감이나 좌절감의 반대급부로 투자 행동에 대한 기대심리가 나타나고 있다. 가상자산 투자처럼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청년도 있지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처럼 작은 것에 만족하며 자기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도 늘었다”고 봤다.

최근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도 재테크에 눈을 떠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영향도 있다. 유튜브에서도 ‘깔아만 두면 돈 버는 어플 총정리’, ‘티끌 모아 태산 만드는 잔돈 재테크’, ‘종잣돈 모으기 프로젝트’ 같은 ‘티끌테크’ 콘텐츠가 유행이다. 2030 여성들이 만들고 호응하는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26세 여성 유튜버 ‘김짠부’(본명 김지은)는 저축과 각종 ‘짠테크’(짜다+재테크)로 약 2년 만에 5000만원 이상을 모으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다. 2021년 7월 현재 그의 채널 구독자 수는 17만 명에 달한다. 2020년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책 『11월 살면서 한 번은 짠테크』(북스톤)도 펴냈다. 20대 여성 유튜버 ‘티끌모아한솔’도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을 위한 재테크 방법을 알려주는 컨텐츠로 구독자 13만을 넘겼다. ‘집콕하면서 돈 버는 어플 3가지’, ‘돈 아끼는 앱 4가지 추천’ 영상 등 조회수는 20만~30만에 달한다.

물론 ‘티끌 모아봤자 티끌’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여성신문이 만난 여성들은  ‘티끌이라도 안 모으면 망한다’, ‘티끌이라도 모아야 빈털터리를 면한다’고 말했다. 엠브레인 설문조사 응답자의 78.1%도 티끌테크를 하는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봤다. ‘구두쇠’나 ‘짠돌이’ 같다는 부정적 평가는 적었다.

코로나19 이후 커진 경제적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앱테크, SNS에서 좋아요 누르기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티끌테크’를 섭렵한 프리랜서 랑랑(가명·28·부산 해운대구)은 “푼돈에 집착하는 내가 싫었던 적도 있지만 당장 학자금 대출, 전세대출 이자를 갚아야 한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다음 달, 내년을 계획하기 힘들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강단비씨도 “저도 수천만원의 빚을 진 채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다. 소소한 재테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특히 자력으로 서울에 자리 잡고 살려는 여성에게는 더욱 그렇다”며 “티끌테크로 당장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계속하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금융·경제 지식과 안목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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