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정치 선 넘기] 여성할당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2030 정치 선 넘기] 여성할당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 장혜영 정의당 의원
  • 승인 2021.07.09 06:40
  • 수정 2021-07-09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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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에서 손실보상법이 가결되고 있다. ⓒ뉴시스
국회 본회의. ⓒ뉴시스·여성신문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성 예비 출마자들을 청중으로 하는 이야기자리에 초대되는 일이 꽤 있다. 청년 여성 정치인으로서 여러 얘기를 하며 빼놓지 않는 주제는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과소대표성 문제이다. 정치 무대에 여성이 남성보다 적은 것은 문제인가? 그렇다. 왜냐고? 국민 절반의 삶과 경험이 제대로 정치의제화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정치는 결정하는 일이다. 정치는 공동체 내의 여러 중대 사안을 두고 다양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모든 결정의 맨 앞에는 의제에 대한 결정이 있다. 무엇이 의제이고 의제가 아닌지를 정하는 권력은 정치의 핵심이다. 의제가 되지 않으면 다뤄지지 않고, 다뤄지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들을 아예 의제 자체를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손쉽게 회피한다. (그렇게 회피되어온 무수한 법안 중의 하나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의제가 되는가? 의회에 모여 있는 시민의 대표들이 의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의제가 된다. 무엇이 의제이고 의제가 아닌지에 대한 판단에는 각각의 대표들이 살아온 삶과 경험이 반영된다. 그렇기에 의회 내 다양성, 국민을 닮은 국회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온통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이들로만 의회가 구성되어 있다면 그런 삶을 살아온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는 효과적으로 반영되겠지만, 그들과 아주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의 문제는 좀처럼 제대로 다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오랫동안 남녀의 성 역할이 뚜렷이 구분되어온 사회에서 국회의 절대 다수를 남성이 차지한다는 것은 곧 우리 국회가 여성들이 겪는 삶의 문제를 제대로 정치의제화하기 어려운 국회임을 뜻한다.

만일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전부 여성이었다면, 우리 국회는 저출생 문제에 대해 훨씬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았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오직 여성들의 몫으로 치부해왔던 오랜 시간동안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아주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에 적응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인에 대한 돌봄은 아주 오랫동안 여성들의 몫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노인들을 돌보아온 수많은 여성들은 타인을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좋은 돌봄을 위해 필요한 사회적 지원이 무엇인지를 남성들에 비해 아주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직접 돌보았기 때문이다. 만일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전부 여성이었다면, 탈시설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을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돌봄이 대대로 가정 내 여성들의 몫이었던 이 사회에서 그 돌봄의 무게를 홀로 오롯이 감당해내는 것은 그 어떤 슈퍼우먼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그러므로 그 돌봄은 개인이 아닌 사회의 몫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아주 잘 납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글을 통해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국회의원 300명 전원을 여성으로 할당하자는 것은 아니다. 나는 현실주의자이므로 21대 국회의 여성의원 비율이 불과 19%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 입각해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여성의원비율 19%라는 숫자에서 유추해낼 수 있는 합리적 명제는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더 정치적 능력이 뛰어나다’가 아니라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정치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이다. 그 어려움은 복합적일 것이다. 가정 내 출산, 육아, 돌봄의 부담과 정치적 포부 사이에서 고민하다 꿈을 접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치는 원래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는 사회적 편견도 한몫 했을 것이다. 큰 꿈을 품고 뛰어들었다 해도 쏟아지는 온갖 성희롱과 성폭력, 그리고 이중잣대 속에 자기 능력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여성도 많을 것이다. 이 모든 어려움은 우리 사회가 함께 해소해야 할 문제이다.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과소대표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이 모든 문제들을 전부 해결하며 자연히 여성의원들이 늘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또다른 방법도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시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 곧바로 여성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선거에 여성할당을 도입하는 것이다.

여성할당은 정치에서 여성의 과소대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를 명확히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 결과이다. 지난 지선에서 광역단체장 당선인 17명 중 17명 전원은 남성이었다. 기초단체장 당선인 226명 중 여성은 단 8명에 불과했다. 광역의원 가운데 여성의원 비율은 19.41%였고 기초의원으로 가야 겨우 30%를 넘겼다. 그런데 단 하나, 기초의원 당선인 가운데 비례당선인의 남녀비율은 정반대의 양상이었다. 기초의원 비례 당선인 385명 가운데 11명의 남성을 제외한 97.14%의 당선인은 전부 여성이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비례대표 여성 홀수번호 배정이 그 해답이다.

정치에 있어 여성과소대표 문제는 말 그대로 대표성의 문제다. 남성 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삶과 경험이 충분히 정치의제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의회를 만드는 것의 문제다. 이 문제에 있어 여성할당제는 매우 유효한 수단이다. 내가 ‘수단’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는 점을 잘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여성할당은 지금으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일 뿐 완벽한 수단도 아니고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다. 여성할당이 마음에 안 드는가? 그러면 문제를 해결할 다른 더 유효한 수단을 가져와서 얘기하길 바란다. 문제 해결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보려 하는 사람들을 방해하며 관심을 끌어보려는 악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여성할당으로 시민의 대표가 된 사람들의 능력이 부족해보이는가? 글쎄, 아무리 뛰어난 남성이라 할지라도 여성의원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를 자기 능력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한국 국회 내 성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편견을 비롯해 이를 전시하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혐오정치를 비판했다.  ⓒ장혜영 의원실
장혜영 정의당 의원. ⓒ장혜영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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