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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안전에 대한 여성들의 민감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줌의 비디오 기능은 내 삶의 일부를 노출시킬 염려가 있으며 최대한 통제해야 하는 위험요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pixabay

코로나19 상황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아마도 ‘줌(zoom)’으로 대표되는 비대면 만남의 일상화가 아닐까 싶다. 일선 학교의 수업과 각종 회의, 강좌 등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줌이라는 화상회의 플랫폼을 통해 만난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각자 마실 것과 음식을 준비해서 노트북 앞에 모이는 일이 흔해졌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아 줌은 전세계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무료 사용시간 제한을 일시적으로 해제하기도 했다.

이 낯선 소통방식이 처음부터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회의가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진행되자 부자연스럽게 삐걱거렸고 친숙한 지인을 대하는 것조차 어색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다. 꽤 할 만 했다.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 우리는 금세 적응하고 익숙해진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맞춰 우리의 일상과 관습, 행위양식들을 조금씩 세공해 나간다.

줌 생태계에 익숙해지면서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사람마다 카메라에 대한 감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비대면 모임에 적응하던 무렵, 소규모 집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마침 카메라가 달려있지 않은 데스크탑으로 접속해야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모든 참가자들은 당연히 카메라를 켜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내가 비디오를 끄고 접속하는 것을 양해해달라는 메시지를 별 생각 없이 채팅창에 남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매우 쓸데없는 말이었음을 깨닫고 혼자 머쓱했다. 발표자와 진행자 몇몇을 제외한 거의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를 끄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나 역시 특별히 카메라를 켜 달라는 주문이 없고 얼굴을 꼭 드러낼 필요가 없는 모임이라면 비디오를 끈 채로 참가한다. 이 태도는 집에서 접속할 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강의나 심포지엄, 각종 학회를 침대에 누운 채로 참석하는,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카메라를 켜 달라는 요구와 이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목소리를 SNS에서 종종 접한다. 학생들의 수강 태도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대학 강의에서 주로 일어나는 일 같다. 비디오를 끄고 편하게 접속하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터. 게다가 이 문제는 여성들이 느끼는 안전에 대한 감각과도 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줌 화면에 드러나는 몇 가지 단서만으로도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등 뒤로 보이는 대형 가족사진, 운동기구, 육아용품, 돌발적으로 등장하는 반려동물 등이 대표적 단서들이다. 집의 크기나 살림살이 일부를 통해 계급적 위치마저 짐작할 수 있다. 사실 디지털은 언제나 이렇게 많은 단서들을 내포해 왔다. 위험과 안전에 대한 여성들의 민감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에서, 줌의 비디오 기능은 내 삶의 일부를 노출시킬 염려가 있으며 최대한 통제해야 하는 위험요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가상화면을 최대한 활용한다 하더라도 말끔히 해소되기 어려운 문제다.

그러면서 줌의 세계는 점점 기묘해지고 있다. 혼자 카메라를 켜고 검은 화면의 ‘익명’들에게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마치 텅 빈 우주를 향해 독백하는 것처럼 고독하다고 표현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되더라도 줌으로 크고 작은 모임을 개설하는 관습은 아마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 페미니즘이 가장 오랫동안 천착해 온 주제, 즉 자아와 타자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의존하지 않고서 생존할 수 없다는 그 명제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이 들이닥쳐서야 비로소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비대면’의 경험이 앞으로도 계속 쌓여가면서 우리의 삶과 일상의 무엇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 줌은 이미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안전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고 있다. 우리의 신체에 대한 다양한 감각도 갱신한다. 줌의 세계에서 푸코 식의 ‘훈육된 몸’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사람을 면대면으로 만나지 않는 일이 지속되면서 우리의 사회적 관계에는 근본적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윤보라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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