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여성전용’ 도서관과
안산 ‘여성만 입주 가능’ 주택 공고에
잇따라 “성차별” 판단한 인권위
인권 전문가들 의견 들어보니

ⓒ뉴시스·여성신문/안산도시공사
ⓒ뉴시스·여성신문/안산도시공사

국가인권위원회가 최근 충북 제천 ‘여성 전용’ 도서관, ‘여성만 입주 가능’ 행복주택 공고는 “성차별”이라고 판단했다. 해당 지자체들은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였다. 

많은 여성이 반발했다. ‘여성 대상 범죄가 빈번한 사회에서 여성이 안심하고 생활할 공간을 없애라는 거냐’는 비판이 나왔다. 인권위 권고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3일 만에 약 4만명이 동참했다.

인권위 결정문을 확인하고, 소수자 인권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었다. 인권위를 비판하는 전문가도, 동의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여성 전용’이 여성안전 열쇠는 아니지만, 여성대상 범죄와 성평등 ‘백래시(반발성 공격)’ 속에서 커져가는 여성들의 불안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제천시 “여성전용 도서관, 기증자 의사 따른 것...
남성 이용 배제 불가피”
인권위 “그런 이유로 공공시설 이용제한 못 해
기증자 의견 앞세울 수 없어”

제천여성도서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가 2020년 10월15일 작성한 차별 시정 권고 결정문의 한 대목. ⓒ여성신문
제천여성도서관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위원회가 2020년 10월15일 작성한 차별 시정 권고 결정문의 한 대목. ⓒ여성신문

논란이 된 제천여성도서관은 1994년 문을 연 여성 전용 평생교육 시설이다. 고(故) 김학임 할머니가 ‘여성으로 살면서 느낀 교육 기회 차별을 해소해 달라’며 삯바느질로 모은 전 재산을 기부해 설립됐다. 김 할머니가 11억원 상당의 부지를 기부했고, 시가 예산 8억원을 투입했다.

2011년 20대 남성 A씨가 “공공도서관이 여성 전용으로 운영되는 건 차별”이라며 인권위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2012년 “남성이 시설 이용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으나, 별 변화가 없었다고 보고 다시 권고를 내렸다.

제천시는 “여성도서관 운영은 기증자의 의사를 따른 것이며 성차별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기증자는 생전 여성도서관 건립에 만족하며 자랑스러워했고, 유족도 여성도서관이 본래 취지대로 운영되길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사적인 기증자의 의견을 공적 시설의 운영 목적에 반해 우선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국유재산법상 기증자의 의사는 효력이 없다.

또 김 할머니가 당초 시립도서관 건립 목적으로 기부했으나, 부지 면적이 좁아 시립도서관을 못 짓게 되자 대안으로 “소규모라도 여성도서관을 건립해달라”고 요구했음을 확인했다.

공공도서관은 특정 집단이나 거주자 간 지식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시설이니,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것은 운영 목적에 어긋난다고 인권위는 설명했다. “여성이 (장애인, 아동, 군인, 교도소 수감자 등처럼) 공공도서관 이용에 취약한 신체적, 사회적 조건을 갖고 있어 우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제천시는 ‘남성을 철저히 배제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10세 미만 남아는 엄마나 여성 보호자와 함께 여성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고, 그 외 남성도 직원의 도움을 받아 간접적으로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여성도서관 도서대출 이용자의 약 10%가 남성이다. 아버지 등 가족이 함께하는 독서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인권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서관 내에 남자화장실이 없고, 남성은 자료실을 이용할 수 없는 점을 들어 “남성의 시설 이용을 과도하게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제천시는 “남녀 공용시설로 전환하면 (남자 화장실 추가 비용 등) 예산이 많이 들고 공간이 부족해져 이용자 만족도가 크지 않을 것이고 도서관으로서의 효용성이 저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권위는 이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자체장은 지역 내 남녀차별 예방·개선 의무를 지니므로 예산 소요 문제를 차별의 예외사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여성도서관 인근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립도서관이 있기는 하나, 인권위는 “여성도서관은 시 중심에 있어 버스 노선이 86개인데 시립도서관은 38개뿐이라 대중교통 접근성의 차이가 상당하다”고 봤다.

인권위는 ‘여성전용’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봤다. “기증자 의사에 따라 여성 특화 도서관을 운영하더라도 프로그램이나 자료 구입 등 내용적으로 전문성을 확보해 운영할 수 있어 남성의 이용을 완전히 배제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어렵고, 모든 구성원이 함께 어울려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결국 여성도서관 측은 인권위 권고를 일부 수용하고 7월1일부터 남성에도 도서 대출 서비스를 허용했다. 여성도서관 관계자는 9일 여성신문에 “남자화장실 신축 등 추가 조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여성 전용’ 행복주택도
여성임대 아파트 재건축 이유만으로
남성 입주 기회 제한하면 ‘성차별’

안산도시공사가 1월27일 발표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 ⓒ안산도시공사
안산도시공사가 1월27일 발표한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 ⓒ안산도시공사

안산도시공사는 1월27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지상 15층 아파트 2개동 규모로 지은 행복주택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내면서 청년 계층에 할당된 200호실의 입주 자격을 ‘청년 여성’으로 한정했다. 행복주택은 젊은 계층 등의 주거 불안 해소를 위해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이다.

안산도시공사는 선부 행복주택은 미혼 여성 노동자를 위한 임대 아파트인 ‘한마음아파트’를 재건축한 건물인 만큼 ‘청년 여성 전용’ 분양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성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인권위는 5월20일 차별시정위원회를 열고 “(기존 여성 거주자들의) 재입주 사례가 없어 적극적 우대 조치로서 차별의 예외사유로 볼만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며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에 따른 차별 행위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권위는 안산도시공사로부터 차별적 요소가 없도록 개선하겠다는 답변을 받고, 별도의 구제 조치가 필요 없다고 보고 해당 진정을 기각했다고 지난 5일 밝혔다. 관련 문건은 공개하지 않았다. 안산도시공사는 8월부터 성별 구분 없이 해당 행복주택 입주자를 모집하기로 했다. 

“여성 전용시설, 여성만 이용해야 할
합리적 이유 없다면 성차별...
여성전용이 여성 안전 담보 못 해”

(왼쪽부터)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여성신문
(왼쪽부터)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여성신문

소수자 인권 연구자들은 여성만 이용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면 여성전용 시설은 차별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도서관 부지를 기증한 할머니 세대와 달리 지금은 성별에 따른 학력이나 교육 격차가 줄었다. 교육 기회를 박탈당한 여성 노인을 위한 전용 도서관이라면 몰라도 여성도서관은 시대에 안 맞다”고 했다. ‘여성만 입주 가능’ 행복주택에 대해서도 “지원이 절실한 한부모 여성이나 젠더폭력 피해 여성 등에 입주 기회를 주면 몰라도, 예전 건물이 여성 임대 주택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에만 입주 자격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도 “차별을 조장하고 특정 성별을 배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면, 그리고 그럴만한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인권위도 ‘여성전용’을 유지할 정당한 사유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여성 중심 반발 여론도 거세...
여성대상 범죄 우려·청년여성 주거불안 방증
인권위 결정이 ‘성평등 백래시’에 악용될까 우려도

인권위 권고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3일 만에 약 4만명이 동참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웹사이트 화면 캡처
7월9일 저녁 8시 기준 인권위 권고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3일 만에 약 4만명이 동참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웹사이트 화면 캡처

인권위 결정이 나오자 ‘여성 대상 범죄가 빈번한 사회에서 여성이 안심하고 살 공간을 없애라는 거냐’, ‘여성전용 공간은 차별받고 소외된 여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지 남성 차별과 무관하다’는 항의도 빗발쳤다.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천여성도서관의 남성 도서 서비스의 중단, 폐지를 요구합니다’라는 글이 게재돼 3일 만에 약 4만명이 동참했다. 청원인은 “인권위는 여성이 안전한 공간을 빼앗아 남성에게 쥐여주지 말라”고 주장했다.

이런 반발 여론 뒤에는 공공도서관에서조차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는 여성들의 불안감이 있다. 올해 5월 충남 천안 한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에서 여자아이를 보며 음란행위를 한 20대 남성이 구속됐다. 2018년 성남시 한 공공도서관에서 20대 남성이 여성을 불법촬영하다 체포됐다. 2019년 10대 남성이 인천 한 공공도서관 여자화장실에서 불법촬영해 체포됐다. 

많은 청년 여성이 괜찮은 주거공간을 구하느라 힘들어한다. 서울특별시만 봐도 만19세~39세 청년 여성 가구의 96.5%가 비혼 가구다. 서울 비혼 청년여성 가구 62.4%는 월세, 29.4%는 전세에 거주한다. 자가 비율은 5%뿐이다. 대개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종사해 소득이 낮고, 주거 관련 대출 지원을 받기 어렵다. 20.2%는 빈곤가구다. 61.4%는 주거지원 프로그램을 원한다(서울시여성가족재단, 2020).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권고이긴 하나 인권위가 ‘탑다운’ 방식으로 ‘여성전용 = 남성 차별’ 낙인을 찍었다”며 “아직도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청년 여성 1인가구가 안정적 주거 환경을 갖기 어려운 현실을 이해했다면 그렇게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여성전용 공간 확대로 여성의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변혜정 여성학자는 “여성전용 공간이 늘어야 여성이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여성은 취약하니 분리 보호해야 한다는 의제가 확산할수록 여성들은 더 불안해하고 성별 고정관념의 틀에 갇힐 수 있다. ‘배려’가 ‘배제’가 되기 쉽다. 여성의 불안을 그런 식으로 해소할 수 없다. 필요한 건 성평등 교육과 제도”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 변혜정 여성학자,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MBC 방송화면 캡처/여성신문
(왼쪽부터)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 변혜정 여성학자,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MBC 방송화면 캡처/여성신문

인권위의 권고가 의도와는 달리 ‘성평등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일부 남성들이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을 ‘남성혐오’로 몰아 억지 주장을 펼치면 기업·기관·정부 부처가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일부 야당 대선주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들먹이는 황당한 사건이 이어지는 중이라서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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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인권위 결정이 온당하느냐와는 별개로, 많은 여성이 이번 결정에 반발한 것은 우리 사회가 성평등 백래시에 너무 쉽게 휘둘린다는 문제의식이 그만큼 퍼졌다는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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