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의 젠더 폴리틱스]

내년 대선을 8개월여 앞두고 여야 유력 대권 후보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여권 내 압도적인 1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일 “국민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아닌 주권자를 대리하는 일꾼으로서 저 높은 곳이 아니라 국민 곁에 있겠다”며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는 ‘새로운 대한민국!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영상 선언문에서 ‘강력한 경제 정책’을 강조했다.“대대적 인프라 확충과 강력한 산업경제 재편으로 투자 기회 확대와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새 일자리와 지속적인 공정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면서 “강력한 경제 정책이 대전환의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고 밝혔다.

이낙연 전 대표도 5일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기치를 내걸고 온라인 동영상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모두에게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신복지’와 ‘중산층 70% 시대’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누구나 인간으로서 최저한의 삶을 보장받는 것이 신복지의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중산층을 두텁게 하기 위한 ‘5대 성장 전략’으로 기술 성장, 그린 성장, 사람 성장, 공정 성장, 포용 성장을 제시했다.

‘이대남 현상’에 대한 무지와 착각이
대선출마선언문 젠더 이슈 ‘실종’으로

정세균 전 총리도 지난 달 17일 ‘강한 대한민국,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세계 중심, 소득 4만불 시대, 돌봄이 강한 대한민국” 등 세 가지구상을 제시했다. “청년이 사회로 나오는 성인이 될 때 미래씨앗통장과 같은 기초자산 형성 프로그램을 통해 흙수저, 금수저, 부모 찬스 타령이 아닌 국가가 제대로 돌봐주는 국가찬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29일 ”공정과 상식으로 국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권 선언을 했다. 그는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했다.

여야 주요 대선 주자들의 출마 선언과 공약에서 발견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여성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젠더 이슈의 실종이다. 눈을 씻고 봐도 그동안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라고 불렸던 성평등과 관련된 공약이나 선언이 보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정치권이 갖고 있는 ‘이대남(20대 남성) 현상’에 대한 무지와 착각 때문이다.

성평등 공약‧선언도 안 보여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절대 지지층이었던 ‘이대남’의 현 정부에 대한 분노와 비판은 거침이 없다. 가령, 2017년 대선에서 20대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47.6%의 표를 던졌다. 그런데 한국갤럽이 실시한 6월 통합 조사(22~24일) 결과, 20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긍정평가는 32%였고, ’잘 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52%였다. 이대남의 경우, 긍정평가는 20%인 반면, 부정 평가는 70%였다. 이른바 이대녀(20대 여성)는 긍정 평가 45%, 부정 평가 36%였다. 4․7 재보궐 선거 당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이대남의 72.5%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22.2%에 불과했다.

이대녀는 오 후보 40.9%, 박 후보 44.0%를 지지했지만 15.1%는 ‘제3정당’에 투표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20대 남성들이 문재인 정부의 ‘여성 친화 정책’ 기조에 반발해 분노하고 반문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다. 잘못된 것이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6월 29~7월1일) 결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는 20대는 5%만 ‘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20대의 이탈은 부패하고 부동산 실정과 같은 문재인 정부의 무능이 이들에게 고통을 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뺏어버렸기 때문이다. 20대 남성의 이탈에 편승해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보지 않고, 가부장제 시대에 존재했던 성차별은 거의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제도적인 남녀평등이 어느 정도 이뤄진 만큼 여성할당제와 같은 여성 우대정책도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보다 취업, 승진, 임금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야권 대선주자인 유승민 전 의원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들고 나왔다. 그는 6일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여성가족부가 과연 따로 필요하느냐”며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여성의 건강과 복지는 보건복지부가, 여성의 취업·직장내 차별 등은 고용노동부가, 창업이나 기업인 지원은 중소벤처기업부가 담당하면 된다”고 면서 “여가부가 아닌 다른 부처가 해도 잘할 사업”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단견이다. 단지 청년 남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주장이라면 이것은 공약이 아니라 선동이다. 치명적인 교통사고가 빈발한다고 자동차를 없애 버리는 것이 맞는가? 문제의 본질은 폐지가 아니라 여가부의 기능과 역할을 어떻게 정상화시킬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개헌안에 성평등권 담겨야

이낙연 전 대표는 ‘국민 행복추구권 보장을 위한 기본권 개헌 토론회’에서 ‘국민 기본권 강화를 위한 개헌’을 주장했다. 개헌안에 토지공개념을 강화하고 실질화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지난 6월 7일 "개헌을 당장이라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안 구상에 대해선 “생명권이나 환경권, 보건권 등 기본권 신장이 첫째”라며 “그다음으로 권력구조 개편도 당연히 필요하다. 분권이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정세균 후보가 국회의장으로 재임할 당시 발족한 2017년 국회 개헌 특위 자문위원회 기본권 분과는 “국가는 선출직, 임명직 공직 진출에 있어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촉진하고 직업적, 사회적 지위에 동등하게 접근할 기회를 보장한다”(15조 ②항)는 성평등 조항을 별개로 신설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이 개헌 이슈를 들고 나오면서 성평등권을 외면한 것은 시대정신에 대한 도전이다. 프랑스는 2000년 「남녀동수법」을 제정하기에 앞서서 1999년에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선거법이나 기타 법에서 여성할당제를 규정하는 것이 위헌성 논란에 휩쓸릴 수 있는 여지를 없앴다. 개정된 「헌법」 제3조는 ‘법은 선출직 공무원과 선출직 의원직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진출하도록 한다’, 제4조는 ‘정당과 정치집단은 법이 정한 조건하에서 이 원칙을 현실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선 캐스팅보트 ‘20대 여성’

‘성평등 정치’는 세계적인 조류다. 실질적인 여성 정치세력화의 병목지점에 서 있는 현 단계에서 개헌, 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여성의 실질적인 정치 대표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야 하다. 내년 대선에서 평등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 위해선 대선 후보들이 성 평등 사회 구축을 위한 담대한 비전과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내년 대선의 캐스팅보트는 '이대남’ 뿐만 아니라 ‘이대녀’들이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갤럽의 6월 4주 조사(22-24일)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주관적 이념성향은 보수(29%)가 진보(19%)보다 훨씬 많았다. 중도는 35%였다. 그러나, 20대 여성의 경우는 진보(31%)가 보수(13%)를 압도했다. 20대 남성은 보수화 된 것이 아니라 실용화되고 있다.

‘남성 중심 패러다임’을 ‘성평등 패러다임’으로 

대선 후보들은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시대정신과 시대 과제는 다르다. 시대정신이란 국민 다수가 소망하는 가치의 집약이다. ‘지속 성장’ ‘중산층 확대’ ‘집값 안정’ 등은 시대 과제에 불과하다.

반면, ‘성평등 사회 구축’은 우리가 반드시 이룩해야 하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실현하지 못한 시대정신이다. 단언컨대, 시대정신이 없는 공약은 공허하다. 대권 후보들은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강한 도덕성, 예리한 역사의식, 저항하기 어려운 설득력, 누구나 희구하는 미래의 비전,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상징성으로 무장한 ‘변혁적 리더십’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윌리엄 깁슨의 말을 빌린다면 성평등 사회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대선 후보라면 이런 미래를 확산시키고 실현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더불어 청년 남성의 외침뿐만 아니라 여성 운동의 대중적 외연 확장은 물론 심화 방안을 이끌어 왔던 ‘불편한 용기’의 절규와 호소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분명,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정치 변화의 시작은 ‘남성 중심 패러다임’을 ‘성평등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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