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에 투신 가장 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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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 추천의 변: 강원룡 목사님은 여성운동에 앞장서 한국 사회의 여성들과 그들의 권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발언해 오셨습니다. 또한 강 목사님은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일구어 여성운동가 1세대를 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야학시절 여성운동 눈떠…집단교육으로 본격화

남북 반세기 넘게 남남 '마음이 하나'돼야 통일

“여성운동에 참여한 것 가장 흐뭇한 일이다.” 사회참여, 여성, 평화운동에 매진해 온 강원룡 목사(86·사단법인 평화포럼 이사장)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국 여성운동의 변화와 굴곡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많은 여성 지도자들의 산실이었던 크리스챤 아카데미를 꾸리고, 우리 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올곧게 발언해온 그는 세대, 종교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다.

지난 29일 오전 장충동 평화포럼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1시간 가량의 인터뷰 동안 여성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동참했던 경험, 교류했던 여성운동가들에 대한 회고를 담담히 풀어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요즘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하지만 나는 아버지 성(姓)을 쓰는 것도 소위 혈통이라고 하는 부계사회의 상징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아이 성을 쓰자면 어머니 성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 여성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어려서 시골에서 살 때 집이 대가족이었어요. 증조부님, 조부님, 조모님, 아버지, 어머니, 숙부, 숙모. 그 가족 속에 우리 어머니하고 누님이 있었는데, 차별대우 받는 것을 어렸을 때 많이 봤어요. 어머니가 참 착한 분이셨는데, 층층이 어른들 계시니 고생하시고 누님도 집에서 정해준 사람한테 시집을 가게돼 울면서 가마를 타던 모습이 기억이 나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나선 동네에 글을 모르는 여자들이 많아 내가 열네 살 때 동네 야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까지 결혼한 여자들도 많았는데, 그들을 상대로 야학을 했던 것이 동네를 떠나고 난 후에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 경험을 이어 간도 용정에 가서 공부하는 동안 계속해서 여성계몽운동을 했습니다. 해방이 되고 나선 굉장한 여성 지도자들이 많이 나왔죠. 지금 머릿속에 기억나는 사람들만도 이화대학의 김활란 박사, 박인덕, 박순천씨, 고황경씨 등이 있어요.”

- 1970년대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74년에 진행됐던 여성 중간집단 교육도 그 중 하나인데요.

“여성 중간집단 교육은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의식화' 교육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시기적으로 외국에서는 여성해방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는데, 우린 여성해방운동이란 말은 안 쓰고 남자와 여자는 인간으로 꼭 같다, 둘 다 인간으로서 권리와 대우를 받아야 된다는 뜻으로 '여성의 인간화'란 말을 썼습니다. 그 때 옆에서 일을 도운 직원들이 한명숙 장관, 신인령 총장 등이에요. 그 여성중간집단 교육의 반응이 놀라웠어요. 2차에 걸쳐 이뤄졌던 교육이 이후 사회 각층에서 여성운동을 불붙게 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일어난 놀라운 변화 가운데 하나로 가족법 개정이 있는데, 이태영 박사 5주기 때 가보니 73년에 가족법 개정 운동이 시작됐다고 하지만 그건 잘못됐습니다. 75년 1월에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각계 각층 사람들 100명이 모여 1박 2일 동안 여성문제 토론회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가족법부터 바꾸자는 주장이 제기됐고, 가족법 개정 운동이 시작되면서 이태영 박사가 조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당시 가족법 개정에 대한 반대가 심해서 내가 토론회에 나가 여성 쪽에 서서 얘길 많이 하다 보니 나를 일종의 페미니스트라 이름 붙여 아주 과도한 대우를 받았죠.”

- 30년 전과 현재의 여성운동에 많은 변화를 느끼시는지요.

“여성의 법적, 사회적 차별이 개선되면서 30년 전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올 21세기의 가장 근본 문제는 뭐냐 하면, 첫째 환경, 둘째 여성, 세 번째가 영성인데, 여기서 환경문제는 점점 더 나빠져 가고 있고, 여성문제는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영성은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고. 21세기 전세계적으로 여성문제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그 변화에 동조합니다. 다만 여성과 남성이 생물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전환하는 사람들을 욕할 마음은 없지만, 여성문제란 소위 여성의 남성화, 남성의 여성화는 아닙니다. 다르다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다양하게 살리라는 거죠. 다만 기본적인 차별은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 평화운동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여성과 평화운동의 고리를 찾는다면.

“전쟁의 뿌리는 수렵사회에서 나왔습니다. 죽이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남성들이 해오다 보니 이제는 인류가 막다른 골목에 왔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서로 아끼는 삶을 사는 여성들은 남성들과 비교할 때 평화 지향적입니다. 현재 평화문제에서 남북한의 대립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남북한의 분단상황이 계속되고 있고, 미국과 북한의 대립으로 언제 전쟁이 날지 모릅니다. 21세기에 세계는 중국, 러시아, 몽고 등 대륙권과 일본, 미국 등의 해양권이 대립하는 구도가 됩니다. 북한은 대륙권에 속하고 남한은 해양권에 속하다 보니 이렇게 되면 21세기에 전쟁이 나서 인류가 망하게 하는데 남북한이 선봉자 구실을 하는 셈입니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남북한이 통일을 해야 하고, 대륙권과 해양권이 부딪치는 데에 중간에서 평화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역사적 사명입니다. 동북아시아 전체, 세계 평화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필수적이고, 이를 해나가는 데에 남녀가 함께 힘을 합해야 합니다.”

- 남북의 평화체제를 위해 여성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남북이 60년 동안 갈라져서 살다가 이제 함께 살려고 하는 상황인 만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경상도, 전라도도 잘 통하지 않는데, 남북이 어떻게 통하겠어요. 먼저 제도적인 통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통일이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랑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인간과 인간의 사랑이 그렇듯 얼어붙은 것을 녹이고 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지난주 일요일부터 탈북 젊은이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어요. 현재 11명 모아놓고 하는데, 그들을 돌보는 사람이 30명이 넘습니다. 그 애들 하나하나 공부시켜 대학에 입학하도록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풀어지도록 만들어줘야 돼요. 남북의 정치적인 통일은 언제라도 될 수 있지만, 마음의 평화, 마음의 통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의 통일, 남북의 평화와 함께 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여성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강 목사는 특별히 건강관리법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즐겁게 살면 기운이 생긴다”며 “항상 일하는 게 즐겁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고 답했다. 또한 그는 “제자의 제자뻘 되는 신인령 총장, 한명숙 장관, 지은희 장관 등 과거에 고생한 이들이 잘되는 것을 볼 때마다 상당히 기쁘다”면서 “그런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도 많아 그들을 만나고 얘기하면서 사는 것이 즐거우니 건강이 유지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현재 그는 2004년에 '국제종교평화회의'를 북경에서 개최해 북한 종교인들을 초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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