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강성 노조 이끌던 ‘문 전투’
노사 협력 이끄는 ‘문 대화’로
‘최저임금 1만원’ 불발했으나
평균 7.3% 인상 등 과정 무난
"하후상박 연대임금‧연대기금으로
임금격차 문제 해소 어렵다고 판단"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홍수형 기자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동 의제는 노동만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노사가 관계를 맺는 의제다”라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2022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440원) 오른 9160원으로 결정됐다. 이번에도 ‘합의’가 아닌 의결로 결론이 났다. 민주노총 근로자위원 4명과 사용자위원 9명이 자리를 떴고 한국노총 근로자위원과 공익위원만 남아 최종안을 의결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문성현(69) 위원장은 “노사가 적정 선에서 합의했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바람을 직간접적으로 전했으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그가 4년째 이끄는 경사노위는 사회 양극화 해소와 사회 통합을 목표로 한 대화의 장이다. 다양한 과제들을 노사정이 협의해 풀어나가자는 취지다. 그동안 탄력근로제 6개월, ILO 협약 권고 등을 이끌며 노사가 의지를 갖고 함께 합리적인 대안을 찾다 보면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40여년간 노동운동을 하며 6번 구속됐던 그의 별명은 ‘문전투’였다. 전투적으로 투쟁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문대화’로 불린다. 투쟁보다 노사 간 협력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변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문 위원장은 탄력 근로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등 노동계 이슈의 합의 과정을 돌아보며 “사회적 대화가 참 어렵다”고 했다. 그는 “대화라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양쪽이 각자 ‘A를 얻으면 B를 양보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하는데, 아직 이런 태도가 미흡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노사관계도 대전환이 필요하다”며 “노동 의제는 노동만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아니다. 노사가 관계를 맺는 의제다”라고 강조했다.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여성위원회 토론회 '코로나19 시대 돌봄노동의 가치와 사회적 대화'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여성위원회 토론회 '코로나19 시대 돌봄노동의 가치와 사회적 대화'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5.1%(440원) 오른 9160원으로 결정됐다. 올해도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을 결정하지 못하고 반쪽 표결로 결론 났다.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무산됐는데.

“문재인 정부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4% 오른 데 이어 2019년 10.9%, 2020년 2.9%, 2021년 1.5%으로 올해까지 평균 인상률은 7.36% 정도다. 첫 해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을 때 중소기업과 영세상인에게는 부담이 됐다. 산입범위를 넓히는 과정도 있었고 코로나19도 겪고 있다. 처음에 인상률이 많이 올랐다가 인상폭이 줄었는데 이번에 5% 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본다. 저도 이번만큼은 노사가 적정한 선에서 합의했으면 좋겠다는 강력한 바람을 직간접적으로 전했으나 합의가 아니라 결의를 하게 됐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한국노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최저임금 1만원은 2017년 대선후보들의 공통 공약이었다. 다만 예기치 못한 코로나 상황으로 1만원으로 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노동계에선 산입범위가 넓어져 인상 효과가 적다고 말하지만 임금 총액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1만원 가까이는 되지 않았나 싶다. 임금 체계 문제와 산입범위 확대가 통상임금에도 이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지난 2018년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됐다.)

-지난 4년간 경사노위 활동은 평가한다면.

“평생 양극화, 불평등, 임금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격차도 34%가 넘는다. 마지막으로 경사노위를 통해 노사의 연대 위에 임금격차와 불평등, 양극화 해소 등 대타협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난 4년은 힘들었고 만만치 않았다. 그동안 소득별로 많이 받는 노동자의 임금은 적게 올리고, 적게 받는 노동자는 많이 올리는 하후상박 연대임금으로 격차를 좁히고 기금을 마련해 저소득 노동자의 교육, 주거, 의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4년간 겪어보니 기업별 노사관계가 자리 잡은 상황에서 이 방법으로는 격차를 해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지불능력이 있어 노조 요구를 받아줄 수 있는 회사는 계속 임금이 올랐지만, 그렇지 못한 많은 곳은 안됐다. 노조를 만들 수 없는 노동자도 많다. 노조가 열심히 투쟁한 결과가 그렇게 격차를 키웠다. 최근 우분투 재단 등 연대기금이 생겼으나 임금격차의 구조적 문제까지 해결하기에는 미흡하다. 이 얘기를 주위에 했더니 ‘45년간 노동운동 한 문성현이 그렇게 말하니 슬프다’고 반응하더라. 그럼에도 이런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다만 여기에만 매달리지 말자는 얘기다. 임금격차, 양극화, 불평등 해소를 위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홍수형 기자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홍수형 기자

-구체적으로 새로운 방향은 무엇인가.

“노동운동을 통해 내 임금을 올라가고 고용안정이 되면 그만큼 사회적으로 나눌 것으로 기대했다. 노동자들끼리 연대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쉽지 않았다. 노동자에게 강요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연대라는 이름보다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득과 임금에 따른 조세 정책을 펼치고 이를 통해 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제 삶의 귀결점에서 내린 결론이다. 한편으론 서글프다.”

-의미 있는 합의를 꼽는다면.

“사회적 대화는 주고받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모든 노동 의제는 노사 관계 의제다. 모든 노동 의제에서 노와 사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있다. 따로 존재할 수 없다. 당연히 우리 것만 주장해서는 대화가 이뤄질 수 없다. 경사노위라는 사회적 대화 테이블을 통해 의견을 나누면서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여가고 있다고 본다.

의미 있는 합의로는 ILO 기본협약 비준 권고를 꼽을 수 있다. 공익위원이 노사 입장을 절충하는 형태로 ILO 기본협약 비준을 권고했고 이를 토대로 국회가 비준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논의 과정 없이 국회에서 바로 입법을 해 아쉬움이 남는다. 50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시켰는데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노총, 경총이 경사노위에서 산업안전에 대해 논의하자고 제안하면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코로나로 학교와 돌봄 기관이 문을 닫으면서 돌봄 공백 문제가 드러났다.

“코로나를 겪으며 돌봄노동은 삶에서 꼭 뒷받침돼야 하는 ‘필수노동’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됐다. 돌봄노동자의 90%가 여성이고, 아직도 우리사회는 여성이 경제활동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선 출산, 보육 등 돌봄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사노위 여성위원회가 제안한 ‘사회적 돌봄위원회’에서 주로 민간영역에서 이뤄진 돌봄노동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논의될 것으로 본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위기적 과제는 저출산 이슈다. 저출산의 원인은 여성노동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안정적이지 않은 노동 조건 속에서 결혼과 출산 문제는 여성에게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돌봄과 여성노동 문제는 본질적으로 사회유지, 위기극복 차원에서 논의됐어야 한다. 양극화 보다 심각한 문제가 여성노동 문제다.”

-남은 임기 동안 꼭 풀고 싶은 과제는.

“양극화, 불평등, 격차 해소 의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시작해보고 싶다. 그동안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쳐서 격차 해소를 위해 뛰었던 사람들이 모여 지금까지 해온 활동이 맞는지 혹은 틀렸는지 공유하는 등 논의를 거친 결과물을 차기 대통령에게 전달하고 싶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ILO 협약 비준 문제 등 아날로그 시대의 숙제를 해왔다. 디지털화에 따라 산업이 변화하고 노동의 양과 질도 달라진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노사관계도 달라져야 한다. 플랫폼 노동의 등장으로 달라지는 전통적 노동의 개념, 산업안전과 고용보험의 책임 문제, 노조 조직 방법 등도 달라진다. 고령화에 따른 고용연장 문제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여성노동 여건 마련도 사회적 대화의 주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노동운동을 하다 6차례 구속된 문성현 위원장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변론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사진은 2018년 11월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문성현 위원장이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악수를 하는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노동운동을 하다 6차례 구속된 문성현 위원장은 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변론을 맡으며 인연을 맺었다. 사진은 2018년 11월 22일 문재인 대통령과 문성현 위원장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악수를 하는 모습. ⓒ여성신문·뉴시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1952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1971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대학교 3학년 시절 ‘전태일 일기’ 속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었더라면”이란 구절을 접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77년 군 제대 후 학생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한 동생 소식에 ‘한 집에 두 명이나 샛길로 빠지면 안되겠다’ 싶어 삼양사에 취직했다.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나선 것은 1979년 YH무역 여성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과 해고에 반발해 신민당사 앞에 농성을 하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접하면서다. 당시 경찰 강제진압으로 조직차장이던 김경숙 열사가 목숨을 잃었다.

한도공업사 프레스공으로 공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1985년 통일중공업 노조위원장을 하다가 해고됐다. 6번이나 구속됐던 당시 그의 별명은 ‘문전투’였다. 구속된 문 위원장의 변호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맡았다. 1989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 1999년 민주노총 전국금속연맹 위원장. 2006~2008년 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냈다. 배우자 이혜자씨도 고려대 재학 시절 3000여명의 고대생이 참여한 ‘78민중선언’을 이끈 노동운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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