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나도 마음의 밭에 씨앗을 하나 심기로 했다. 내가 무슨 씨앗을 심었는지는 12월 수세미 받고 알려 줄게.” ⓒ박효신

나는 정성들여 만든 천연 수세미를 다음 수확까지 일 년 동안 쓸 만큼 남겨두고 나머지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크리스마스 때나 연초에 수세미를 예쁘게 포장하여 안부글과 함께 도시 친구들에게 보내주면 꽤나 값진 선물인 듯 신기해하며 무척 좋아한다. 수세미를 보낼 때 나는 언제 씨앗을 뿌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상세하게 적어 보낸다. 받는 이들이 자연을 느끼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잠시나마 자연과 소통하는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서다. 나의 수세미 인기는 날로 치솟아 해마다 수세미 달라는 사람이 늘고 나는 매년 더 많은 수세미 씨앗을 심는다.

“친구야 수세미 정말 고마워. 작년 네가 보내준 수세미 보고 탐내던 시누이게 나누어 주었더니 좋아서 난리가 났어. 아깝다며 쓰지 않고 주방에 매달아 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 요즘은 정말 네가 부럽다. 나에게 손바닥 만한 땅만 있어도 네 훙내라도 내보고 싶은데.... 수세미는 커녕 나팔꽃 하나 올릴 수 있는 여유가 없으니... 자식도 남편도 내 맘대로 안되고 경제는 불안하고 도시에 사는 나는 점점 초조해지고 쫒기는 듯 사는데 너는 갈수록 여유롭고 넉넉해지는구나. 너같이 훌쩍 떠나고 싶은데 무슨 미련 때문에 이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지...”

수세미를 받고 답장 메일을 보내온 친구는 내가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정했을 때 제일 펄쩍 뛰던 친구였다.

“시골 내려가서 도대체 뭘 하려구 그래? 무엇 때문에 다 포기하는 건데? 그 연봉 아깝지 않아? 두고 봐라. 나중에 꼭 후회한다.”

끝까지 말렸던 친구는 지금 아무것도 아닌 수세미 하나에 감동하며 느리게 사는 내 삶을 부러워하고 있다. 그 친구 뿐 아니라 참 많은 사람들이 나의 시골살이를 부러워한다. 내가 사는 것을 보면 당장 때려치우고 시골로 내려가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시골에 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골살이만 시작하면 도시샐활의 어려움이 후르륵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이다. 허기야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서울을 떠나올 즈음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은 멈출 줄 모르는 욕심’ 그리고 ‘늘 항상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는 죄책감‘이었다. 시골로 내려가면 이런 것들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욕심 없이 땅만 파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곳에 살면서도 좋은 땅 보면 더 갖고 싶고, 잘 지은 집 보면 나도 그런 곳에 살고 싶고, 이곳에서도 역시 미운 인간은 또 생기는 거였다. 그래서 깨달았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걸 깨달은 후 나는 땅을 일구는 것보다 내 마음의 밭부터 먼저 가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농사는 일단 수확을 하면 그 밭은 완전히 비우고 갈아엎어야 다시 씨를 뿌릴 수 있다. 농사는 채움과 비움의 반복인 것이다. 채우기만 할 뿐 비우기 싫어하면 농사는 망치고 만다.

“솟아나는 욕심에서 해방될 수 없다면 비우기라도 해야지.”

나는 밭에 호미질을 하듯 마음의 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고 적당한 때가 되면 확 비우고 갈아엎는다. 마음에 욕심이 고이지 않도록.

나는 어쩐지 정신적으로 힘들어 보이는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다.

“친구야. 씨앗은 땅에만 심는 것이 아니더라. 마음의 밭을 일구어봐. 그 밭에 호미질을 하고 씨앗을 뿌려봐. 그런데 잊지 말아라. 좋은 씨앗을 심어도 그 옆에서 몹쓸 풀도 반드시 같이 자란다는 것을... 그러니 자주자주 나쁜 풀을 뽑아내야 해. 친구야, 시골에 살아보니 알겠더라. 어디에 사느냐 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그 자리에서도 얼마든지 여유와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친구야. 너의 마음 밭을 잘 갈고 네가 원하는 씨앗 하나 심어봐. 그리고 수확이 끝나면 완전히 비워야 한다는 것 잊지 말고...”

친구에게서 다시 답장이 왔다.

“나도 마음의 밭에 씨앗을 하나 심기로 했다. 내가 무슨 씨앗을 심었는지는 12월 수세미 받고 알려 줄게.”

박효신<br>
박효신 작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