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이야기] 엄마는 승합차를 운전하신다
[나의 엄마 이야기] 엄마는 승합차를 운전하신다
  •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
  • 승인 2021.07.29 10:57
  • 수정 2021-08-0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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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 이야기] ④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의 어머니 장정애 씨

당신에게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요. 시간의 원을 돌고 돌다보면,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엄마라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는 엄마야말로 리더십 에너지의 원천이었고, 어떤 리더보다 더 큰 리더였던 존재였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엄마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김경미 대표 어머니 장정애 씨 ⓒ김경미
김경미 대표 어머니 장정애 씨 ⓒ김경미

엄마는 승합차를 운전하신다. 가정주부였던 엄마가 승합차를 몰게 된 계기는 장애인 이동 차량 자원봉사를 시작하시고부터다. 차가 생긴 이후 장애인 이동 차량 자원봉사를 하셨는데, 최대 4인 이상을 태우지 못하는 승용차가 못내 아쉬우셨다고 한다. 같은 비용이라면, 더 많은 장애인을 태울 수 있는 승합차가 낫지 않겠냐는 생각에 아버지를 설득해 12인승 승합차로 바꾸셨다. 

 내가 보기엔 칭찬할 일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친할머니, 엄마의 시어머니께는 며느리가 봉고를 몰고 다니는 게 창피하다며, 다시 승용차로 바꾸라며 면박을 주기도 하셨던 것 같다.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하지 않으셔서 당시에는 전혀 몰랐지만, 사람인지라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셨던 것 같다. 그런 말들이 엄마의 결정을 바꾸게 하지는 못했다. 이후 세 번 더 차를 바꾸셨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승합차를 선택하셨다. 

3년 전, 이제는 연세도 있으시고 하니까 운전하기 쉬운 승용차로  바꾸시면 좋겠다고 자녀들이 말씀을 드렸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엄마에게 있어 차 선택의 기준은 편안함이나 있어보이즘이 아닌 어떻게 하면 이웃을 더 잘 섬길 수 있을까였다. 엄마의 건강이 제일 우선인 나로서는 그의 그런 우직함이 가끔은 속상할 때도 있다. 

자신의 편안함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를 늘 먼저 생각하는 엄마의 이야기는 이 외에도 많다. 평생을 열심히 사신 결과로 1가구 2주택을 가지게 되셨을 때다. 다른 어느 집들이 그러하듯 부모님도 기존에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으려고 하셨다. 그때 주거 비용이 없어 당장 살 곳이 없던 교회 젊은 부부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시고는, 무상으로 몇 년을 그 집에서 살게 해주셨다. 나중에는 그 집과 땅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평생 다니셨던 교회에 기부하셨다. 자본주의 시대에, 특히나 요즘같이 부동산에 온 사람들이 목을 매고 있는 현실과 비교할 때, 부모님의 결정은 매우 놀랍도록 급진적이다. 

사실 엄마의 정치관은 한국 사회 기준에서 보면, 특히, 대북관을 놓고 보면 매우 보수적이다. 이유가 있다. 엄마는 막내 남동생, 장명기 상병, 나의 막내 외삼촌을 외삼촌이 군 복무하던 중에 발생했던 북한군과의 교전에서 잃으셨다. 외삼촌은 판문점에서 군 복무를 했는데, 1984년 11월 23일에 열렸던 군사정전위원회 회담 중에 취재 중이던 소련 기자가 남한에 갑자기 망명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소련 기자를 대피시키려던 남한 군인들과 망명을 저지하려던 북한 군인들 간에 총격전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막내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올해로 37년째, 매년 외삼촌이 돌아가신 11월 23일이면 판문점에서 추도식이 열린다. 사랑하는 남동생을 하루아침에 잃은 비극을 온전히 끌어안고 살아야 했던 엄마가, 북한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되신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북관을 놓고, 진보냐 보수냐를 묻던 한국 사회를 지나오시면서, 엄마는 정치, 경제, 사회를 해석함에 있어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계신다. 

김경미 대표와 어머니 장정애 씨 ⓒ김경미
김경미 대표와 어머니 장정애 씨 ⓒ김경미

나는 안다. 장애인 이동 차량 자원봉사를 위해 승용차를 승합차로 바꾸셨던, 집이 없는 젊은 부부를 위해 재산권 행사를 기꺼이 포기하셨던,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이길 바라며 소중한 재산을 기부했던 엄마가,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자신들만의 바벨탑을 쌓기에 여념이 없던 진보적인 지식인들보다, 훨씬 더 세상을 낫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뉴스를 보며 가끔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내가 말로만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해주는 엄마가 계셔 참 좋다. 삶이란 게 절대 단면적이거나, 일직선이 아니라는 것을,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엄마가 계셔  참 좋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정말 좋다. 

 

* 김경미 섀도우캐비닛 대표는 평화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시민운동을 시작한 뒤, 청년 커뮤니티 ‘가름과 다름 사이 나름’ 편집장, 정치발전소 기획실장,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행정관을 거쳐, 2020년 미래 국정 운영 리더를 육성하기 위한 정치스타트업 섀도우캐비닛을 창업해 열심히 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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