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유정 “5월28일 광주, 분노하는 작가 되길 결심했다”
소설가 정유정 “5월28일 광주, 분노하는 작가 되길 결심했다”
  • 두경아 작가
  • 승인 2021.07.24 08:00
  • 수정 2021-07-22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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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문화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타고난 이야기꾼, 소설가 정유정
2011년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자
“여성작가는 공감과 문제의식으로
성평등과 인류애 말하는 역할”

올해 14회를 맞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은 2008년 여성신문사가 여성문화예술인들의 성장과 지원을 위해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으로 처음 제정했습니다.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함께하며 연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4년간 총 139명의 수상자를 발굴했으며 많은 문화예술인이 여성문화인상과 양성평등문화상을 통해 문화예술을 통한 젠더인식의 사회적 변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4회를 맞아 주요 역대 수상자들을 만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더욱 성장한 수상자들의 모습에 많은 기대바랍니다. 매주 공개되는 인터뷰는 11월 온라인 E북(E-BOOK)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정유정 작가 ⓒ홍수형 기자
소설가 정유정 ⓒ홍수형 기자

정유정의 책은 한 번 들면 손에서 내려놓기 어렵다고 한다. 그의 소설은 어떠한 영상 매체보다 강렬하고 새롭다. 여기에 휘몰아치는 스토리, 치밀한 캐릭터 묘사, 정교한 개연성까지 갖춰져 숨이 막힐 정도다.

‘소설의 죽음’을 말하는 시대, 그의 소설은 여전히 관심을 받고 여전히 잘 팔린다. 2011년에 발표한 <7년의 밤>은 출간 2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후, 2017년 영화로 개봉될 즈음에 100쇄를 돌파했다. 또, 독일, 프랑스, 중국, 태국, 대만, 일본, 베트남 등 세계 각국에 번역 출간됐는데, 2015년 독일에서는 한 주간지가 꼽은 ‘최고의 스릴러 소설 10’ 안에 선정되기도 했다. <7년의 밤>뿐만이 아니다. 국가 재난 사태를 그린 <28>(2013), 악인의 탄생기인 <종의 기원>(2016)도 국내에서 엄청난 판매 부수를 기록했고, 해외에서도 번역돼 출간됐다. 의미 있는 것은, 새로운 소설이 발표돼 베스트셀러에 오를 때마다, 전작이 덩달아 베스트셀러 차트에 재진입하게 된다는 점이다. ‘정유정의 소설을 한 번도 읽지 않은 사람은 없어도 한 권만 읽은 사람은 없다’는 말을 증명하는 셈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그의 소설은 재밌다. 이것이 독자들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정유정은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으로,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등단 이전에도 세 권의 소설을 발간하며 작가의 꿈을 키워나갔으나 정식 등단을 한 건 41살, 늦은 나이였다. 2009년에는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일보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입지를 굳힌다. 이후 2~3년 만에 한 번씩 굵직한 장편 소설을 발표해왔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악’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탐구했다는 평을 받는다. 그러나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보노보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진이, 지니>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등에서 선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악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정유정은 <7년의 밤>으로 주목받았던 해인 2011년 제4회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신진 여성문화인상을 받았다. 당시 그는 “자유의지 삼부작의 마지막인 ‘7년의 밤’으로 삶과 운명에 투쟁하는 인간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작품으로 문학계 이외에서도 상을 받을 수 있어서 뜻깊다고 생각한다”라는 수상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수상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정유정 작가를 만났다. 마침 소설 <완전한 행복> 발간한 직후, 홍보 일정 중이라 가능한 만남이었다(이 기간 외에는 인터뷰가 어렵다).

정유정 작가 ⓒ홍수형 기자
소설가 정유정 ⓒ홍수형 기자

# 여성문화인상 수상은 ‘여혐’ 오해에 대한 답

2011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신진 여성문화인상을 받으신 지 10년이 됐네요.

공모전에서 주는 문학상 말고는 유일하게 받은 상이에요.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나 예술가로서 여러 방면에서 후보로 추천된 적은 많지만, 수상은 이 신진 여성문화인상이 유일해요. 가끔 제가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빙의 돼서 쓰는 말들이 ‘여혐적인 표현이다’라며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을 만날 때면 “나 신진 여성문화인상 받은 사람이야!”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상이었어요.

소설 속 사이코패스 캐릭터 때문에 ‘여혐’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군요.

소설에서 착한 캐릭터도 아닌, 사이코패스인데 올바른 말만 하면 그건 문학이 아니잖아요. 소설 속 주인공이 윤간당하는 장면을 잔인하게 쓰는 게 여혐적인 표현인가요? 그 부분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국가적인 재난이 일어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여자와 어린아이 같은 사회적 약자가 가장 큰 희생자가 된다는 거였어요.

# 소설 하나당 취재 기간 6개월, 공부하고 또 공부해

소설의 묘사가 정말 생생해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은 어떻게 쓰시는지 궁금해요.

<7년의 밤>에서 당시에는 수영도 못하는데 잠수에 대해 써야 했어요. 물의 어떤 느낌, 촉감 같은 걸 알아야 해서 정말 고생 많이 했죠. 잠수에 대한 책들을 먼저 읽고 잠수 전문가를 소개받아 따라다니며 공부하고 네이버 잠수부 카페에 들어가서 잠수사들의 현장감 있는 지식을 익혔어요. 어떤 작품이든 기본적인 취재에 6개월 정도 필요해요.

<종의 기원>에는 사이코패스, <완전한 행복>에서는 나르시시스트라는 정신병리학적 내용이 포함돼 있네요.

나르시시즘, 흔히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하는데, 사이코패스보다 나르시시스트가 우리 주변에 훨씬 많거든요.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거지만, 성격장애는 상당히 환경에 영향을 받아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들이 아이를 키울 때 “너는 특별해 너는 이제 세상에 중심이야”하는데, 막상 직장에 들어가니까 하나도 안 특별하거든요. 그러다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면 ‘누가 감히 나를 괴롭혀’ 하면서 막무가내로 나가게 되죠. <완전한 사랑>의 주인공은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기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을 다 제거해 보는 사람이지요. 정신의학에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서 쓸 수 있는 내용은 어느 정도인가요?

제 주변 500m 이내 정도의 이야기요. 제 소설에서는 공간이 중요해요. 이야기에 정확히 어울리는 공간을 도시 계획으로 만들고 거기에다 학교도 세우고 집도 세우면서 도시 생활에서 필요한 것들을 다 세워요. 그리고 서사를 만듭니다.

정유정 작가 ⓒ홍수형 기자
소설가 정유정 ⓒ홍수형 기자

# 나는 왜 소설을 쓰는가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이야기꾼이었나요?

어릴 때 책을 읽고 나서 그 내용을 아이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걸 잘했어요. 코믹한 버전으로 연기를 해주면 애들이 재밌어서 다 쓰러지는 거예요. 완전히 날렸던 시절이었죠. 약간 ‘인싸(인사이더)’ 기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 대회만 나가면 상을 받았어요. 제가 글을 굉장히 잘 쓰는 줄 알았는데 등단은 어려웠어요. 그 실망감, 절망감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고요.

등단이 힘들면 자포자기하기 쉬운데, 어떻게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셨나요?

스스로 ‘글을 쓰고 싶냐’고 물었어요.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지 못하더라도, 무명으로 이렇게 쓰러지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느냐 하고 물었을 때, ‘그럴 것 같다’는 대답이 나오더라고요.

언제쯤 그 답을 찾으셨나요?

1980년 15살 때 광주로 유학을 왔어요. 엄마가 광주에 하숙집을 얻어 줘서 남동생하고 둘이 올라왔죠. 5월 광주에는 휴교령이 내렸고 18일에는 광주가 봉쇄됐어요. 하숙집에 숨어있던 언니·오빠들이 5월 27일에 ‘오늘 나가서 우리도 같이 죽자’라고 결의하고 모두 집을 다 나섰어요. 저희 남매에게는 집에 남아 문 잠그고 죽은 듯이 있으라 하고 밖에서 날아드는 총알을 막기 위해 제 방 창문을 두꺼운 솜이불로 가려놓고 나가셨죠.

그때 그곳에 계셨네요. 5·18 광주민주화항쟁, 그 가운데.

네. 매일 총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시체는 보는 건 일도 아니었죠. 전쟁이었어요. 밤 10시쯤 되니까 비가 이렇게 주룩주룩 왔고, 광주 외곽에서는 따발총 소리가 났어요. 저는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아 대학생 오빠 방에 가서 수면제가 될 만한 책을 가져왔어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밤새 책을 다 읽고 창에 쳐 있는 솜이불을 걷었는데, 저 하늘에서 여명이 물들더라고요. 밤새도록 내리던 비가 그쳤고요. 동시에 총소리가 딱 그쳤다는 걸 알았어요. 시민군이 함락됐다는 의미였죠. 책의 내용과 이 상황이 겹쳐지면서 창가에서 오열했어요. 울면서 ‘나도 나중에 이런 책을 쓰고 싶다’, ‘누군가 내 소설을 읽고, 새벽 동이 터오는 창가에서 이렇게 오열하고, 분노하게 만드는 작가가 돼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가의 꿈을 안고 간호학과에 진학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작가가 되기 위해 국문과를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굉장히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간호학과에 진학했고,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는 제가 소녀 가장으로 살다 보니 20대를 모두 지났어요. 결혼할 때 남편에게는 “집 사면 그때부터 회사 그만두고 글을 쓸 것”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1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고, 집 사고 나서야 소설을 쓰게 됐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작가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여성 작가들은 이 시대에서 발언해야 할 병리적 징후들, 우리 인간에게 문제가 될 만한 어떤 병리적 징후들을 잘 짚어내서 알려줘야 하죠. 이건 젠더의 문제가 아니라 휴먼의 문제예요. 나아가서 이 지구상 전체 모든 생명에 대한 이야기여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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