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상식의 재구성』 펴낸 조선희 작가
양극화부터 정보과잉·한일관계까지
한국사회 분열·갈등 대해부
“기자, 작가, 공직자로 산 40년 총결산”

약소국 설움 겪으며 자기비하 내면화
국제적 위상 높아진 지금
객관적 자기평가 거쳐 성숙한 논의 펼쳐야

7월 『상식의 재구성』(한빛비즈)을 펴낸 조선희 작가. ⓒ한빛비즈 제공
7월 『상식의 재구성』(한빛비즈)을 펴낸 조선희 작가. ⓒ한빛비즈 제공

정숙, 세죽, 명자. 조선희(61) 작가의 장편소설 『세 여자』(한겨레출판)의 주인공들은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로서 당대 현실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했다. 조 작가의 글쓰기도 그렇다. 오늘의 사회를 관찰하고, 읽고, 쓴다.

그가 『세 여자』 후 4년 만에 첫 신간을 발표했다. 7월 출간된 『상식의 재구성』(한빛비즈)은 560쪽짜리 사회비평서다. “신나고 괴로운, 짜릿하고도 스트레스 쌓이는”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분석했다. 양극화, 정보과잉, 검찰개혁, 미성숙한 민주주의, 한일관계, 한국인의 불안감 등 방대한 주제를 아우른다. 독일·일본 등 외국 사례도 제시해 독자의 시야를 넓힌다. “기자, 작가, 공직자로 산 40년, 지적인 삶의 총결산”이다.

책 두께에 놀랐고, 의외로(?) 술술 읽혀서 놀랐다. 한 권에 담긴 지식·정보량이 어마어마한데 메시지는 분명하다. “민주주의가 보드라운 양탄자가 아니라는 것, 사회 갈등에 코피 터지고 무릎 깨진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사회다. (...) 어떻게 민주화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느냐, 갈등해결의 내공을 가진 사회로 진화하느냐가 문제다.”

“한국인의 자기애는 함량 미달”이라는 지적도 인상적이다. 초강대국들 틈에서 식민국, 약소국의 설움을 오래 겪은 흔적이다. 오늘날 한국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지위를 인정받고, K팝과 한류가 세계를 휩쓸어도, “한국인이 내면화한 열등감과 자기비하는 여전하다”고 봤다.

그는 “적당량의 ‘국뽕’(과도한 애국심)은 영혼의 종합비타민제”라고 말한다. 특히 세계의 주목을 받은 문화산업과 K-방역의 성과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정당한 평가를 해야 한다”고 봤다. 

물론 한국인의 삶의 질이 ‘선진국’ 위상에 걸맞다고 보긴 어렵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발표한 ‘2020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은 40개국 중 30위다. 자살률은 OECD 1위다. 조 작가도 책에서 한국 사회의 획일적인 줄 세우기 문화와 그 부작용, 급격한 기술 발전이 주는 피로감, ‘헬조선’을 외치는 청년들의 절박함 등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한국인은 경쟁 본능을 무기 삼아 시대의 과제를 돌파하고 급성장을 이뤘지만, 거기에 발목을 잡혔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이 OECD에서 두 번째로 깁니다. 일하고 나 하나 돌보기도 힘들죠. 우리나라 여성들은 ‘이만하면 결혼해도, 애 낳아도 되겠다’고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제 딸들도 ‘난 엄마처럼 자식 못 키운다’고 해요. 아이를 낳는대도 안심하고 키울 집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문제죠. 우리나라 공공주택 비율이 5%도 안 돼요. (임대주택 시장·정책이 발달한) 독일 사람들은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부담이 덜해요. 임대주택에서 20년째 잘살고 있는 사람도 만났죠. 내 집 마련 부담이 덜하니 출산도 덜 부담스러워 하죠.”

『상식의 재구성』(한빛비즈/조선희) ⓒ한빛비즈
『상식의 재구성』(한빛비즈/조선희) ⓒ한빛비즈

“나는 무모한 도전 감행하는 사람”
글과 말은 꼼꼼·정확하게
올해 카페 열어...“뜻 맞는 이들과 노년의 소소한 기획 펼칠 것”

조 작가의 이력은 길고 다채롭다. 연합통신과 한겨레신문 기자, 씨네21 편집장을 거쳐 한국영상자료원장,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지내고 장편소설, 에세이, 사회비평서도 펴냈다.

“제가 일을 벌이는 습관이 있어요. 서울문화재단 시절엔 ‘예술치유’ 사업을 하려고 서울 시내 국유지, 시유지를 보러 다녔어요. 나중엔 ‘고양이 마을’을 만들려고 강원도 곳곳을 찾아다니고 최문순 강원지사도 만났죠. 돌이켜보니 너무 복잡하고, 돈 많이 들고,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큰 구상이었죠. 이번 책도 어찌보면 그런 무모한 도전의 결과물이죠.”

집필 기간 책 100권 이상을 섭렵했다. 2019년 10월부터 2020년 4월까지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 방문학자로 머물며 듣고 보고 느낀 것들도 꼼꼼히 담았다.

그는 엄격한 글쓰기 원칙을 지닌 작가다. 함부로 넘겨짚거나 단언하지 않는다. 사실관계를 꼼꼼히 확인한다. 소설도 그렇게 썼다. “『세 여자』를 쓰는 건 사료를 끝없이 뒤지는 일이었다. 한 줄도 내 멋대로 쓸 수 없었다. 이를테면 그 시절에 축음기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소설에 쓸 수는 없잖나.” 기자와 대화하면서도 명확하지 않은 내용은 놓치지 않고 바로 되물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딱 맞는 인터뷰이였다.

“그래서 힘들었다”고 했다. 책에선 “나의 내면엔 (스스로를 감시하는) ‘노예감독관’이 살고 있다”고 고백했다. “『상식의 재구성』 원고는 무조건 아침부터 썼어요. 1년간 점심 약속을 거의 안 잡았죠. 『세 여자』 후 역사 소설 집필 제안을 많이 받았는데 다 고사했어요. (웃으며) 너무 힘들어. 당분간 지적 중노동은 하지 않으려고요. 추수 끝난 벌판을 또 갈아엎고 씨 뿌릴 엄두가 안 나요. 노년은 좀 다르게 보내고 싶네요.”

올해 5월 카페를 열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 ‘책 읽는 고양이’다. 한양도성 낙산성곽길을 오르면 나오는, 탁 트인 전망이 아름다운 고즈넉한 2층 건물이다. “노년의 소소한 기획”을 펼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이뤘다. 지인들이 요일마다 돌아가며 알바로 일한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정재숙 전 문화재청장이 ‘일일 알바’로 변신해 활짝 웃으며 시원한 레모네이드와 비스킷을 내왔다.

조 작가는 “카페 운영이 꽤 재미있고 생각보다 훨씬 잘 맞다”며 웃었다.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보면서 9월부터 여러 문화 프로그램과 세미나를 열려고요. 뜻이 맞는 사람들과 멋진 일들을 함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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