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평등문화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
2015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수상자

올해 14회를 맞는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시상식은 2008년 여성신문사가 여성문화예술인들의 성장과 지원을 위해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으로 처음 제정했습니다.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함께하며 연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14년간 총 139명의 수상자를 발굴했으며 많은 문화예술인이 여성문화인상과 양성평등문화상을 통해 문화예술을 통한 젠더인식의 사회적 변화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4회를 맞아 주요 역대 수상자들을 만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더욱 성장한 수상자들의 모습에 많은 기대바랍니다. 매주 공개되는 인터뷰는 11월 온라인 E북(E-BOOK)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조선시대 궁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고 마시며 살았을까? 사극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진짜 저 시대의 음식일까? 현재 그 답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일 것이다. 한 이사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제3대 기능 보유자로, 2004년 한류를 이끈 드라마 ‘대장금’에서 여러 궁중음식을 재현해 선보인 인물이다.

제1대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는 조선시대 마지막 주방 상궁인 한희순 상궁이었다. 한 상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궁중음식을 현대식으로 되살리며 계승,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궁중음식 연구가 황혜성 선생(명예 기능보유자)의 공이 컸다. 그는 숙명여전 가사과 교수로 일하던 시절, 창덕궁 낙선재에 머물고 있던 한희순 상궁을 찾아가 30년 동안 궁중음식을 전수 받았다. 황 선생은 전수 받은 궁중음식의 조리법을 기록하고 재료를 계량화하는 등 궁중음식을 체계화하는 일을 했는데, 궁중음식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등록하고 한 상궁을 제1대 기능 보유자로 올리는 데 힘을 쓴 것도 그였다. 황 선생은 한 상궁을 이어 제2대 기능보유자로 궁중음식에 관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복려 이사장은 바로 그의 맏딸이다.

한 이사장은 현재 궁중음식문화재단과 궁중음식연구원 등을 운영하면서 각종 문헌을 토대로 궁중음식의 원형을 연구·보존하고, 전수 교육을 통해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한 이사장은 2015년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시점,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위치한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여전히 궁중음식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는 한복려 원장을 만났다. 마침 궁중음식연구원 50주년 기념행사와 고전음식연구원 개원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뜻깊은 만남이었다.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 ⓒ한복려

2015 올해의 여성문화인상을 수상하신지 6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늘 “음식도 문화다”라는 것을 주장해왔어요. 이 상을 통해 그걸 인정받아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물론 제가 음식을 잘 만들어서 이 상을 받았다기 보다는 제가 하는 분야가 조선왕조 궁중음식이라는 무형문화재고, 그 기능을 전수한다는 부분에서 더 잘 봐주신 것 같아요. 저는 상복은 없어요. 어떻게 보면 기능보유자 자체가 상인 셈이지요. 여성문화인상이 제가 받은 가장 큰 상이네요.

지난 6년 동안, 어떤 일들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던 일들을 계속해왔어요. 궁중음식을 전수하고, 어떻게 하면 세계로 궁중음식을 알릴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여러 가지 측면으로 해왔지요. 특별히 제가 나서서 뭘 했다고 내세울 수는 없지만, 조금씩이나마 발전 시켜 온 것 같아요.

최근 궁중음식연구원 앞에 또 하나 건물을 지어 음식고전연구소 ‘선일당’을 세웠어요. 그곳에서는 궁중음식뿐 아니라 한식 전반 다루게 될 거예요. 궁중음식의 범위가 궁에서만 국한된 게 아니라, 양반가 등 외부와 교류하면서 영향을 주고받기도 했어요. 그런 곳들에서는 음식을 어떻게 정리를 하고 기록을 해놨는가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궁중음식과 비교하기도 해요. 궁중음식 하나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음식고전연구소를 만들게 됐어요. 음식고전 시리즈인 『계미서』, 『음식절조』, 『봉집요람』 세 권의 책을 출간했어요.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 ⓒ한복려

어머니 황혜성 선생이 훌륭하셨던 분이니, 부담도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늘 부담감이 있었죠. ‘왜 어머니는 나를 맏딸로 태어나게 해서 이걸 하게 하셨을까’하는 마음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만큼 해온 것 같아요. 저는 뭣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억지로, 억지로 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어머니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기능 보유자’를 내려받긴 했지만, 자식이라고 무조건 잇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거쳐 능력이 있는지 보는 선정 과정을 거쳐요. 기준에 적합한지를 살펴보고, 내야 하는 것도 많아요. 지금도 제자들이 과목을 이수할 때마다 테스트를 하도록 정했어요. 음식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일종의 논문도 쓰는 등 여러 가지를 해야 해요. ‘기능인’은 손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으로 체계적인 이론도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계속 공부를 시키고 매해 공개 행사를 해요. 학문적으로 궁중음식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심층적으로 실기까지 겸해서 할 수 있는 곳은 저희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희순 상궁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이 있으신가요?

한 상궁님은 1971년 조선왕조 궁중음식이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되면서 제1대 기능보유자가 되셨죠. 한 상궁님이 보유자가 되신 바로 그 이듬해 돌아가셨는데, 만일 그때 어머니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도록 노력하지 않았다면 어려울 뻔했어요. 인물이 살아 계실 때 기능 보유자로 지정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머니가 급하게 진행하려고 했지만, 나라에서는 음식을 무형문화재로 제정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상궁님은 제가 어릴 때부터 뵈었고, 제 결혼할 때도 오셨어요. 안국동 별궁에 사셨는데, 어린 시절 휴일에는 어머니가 저를 데리고 별궁으로 가시곤 했어요. 저희가 가면 궁중음식이 아닌 궁녀들이 드셨던 된장찌개를 해주셨어요. 궁녀들은 고기를 안 먹거든요. 그래서 고기 대신 표고버섯 꽁다리를 쪽쪽 찢어서 고기처럼 넣어 된장찌개를 만들어주셨죠.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 ⓒ홍수형 기자

궁중요리가 위대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궁은 의례 중심의 공간이에요. 선대 조상에 대한 의례를 할 때, ‘음식을 만들어서 올린다’는 건, 윗사람에 대한 존경, 숭배를 음식으로 표현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함부로 하지 못하고 온갖 정성을 다 드려야 되는 거죠. 재료 선정부터 음식 만드는 과정이 모두 굉장히 섬세하게 진행되죠.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도 규모가 작지만, 음식을 올리는 그 마음은 같다고 생각해요. 

궁에는 왕이 신하에게 내려주는 음식도 있어요.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는 존경과 배려의 마음이 담기게 되죠. 궁중음식은 시공간을 확장해 사람과 사람 사이, 선대까지 넓게 볼 수 있어요.

요즘 사람들은 포장만 뜯으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으니 음식을 쉽게 생각하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가가 음식의 과정에서 나타나요.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면, 누구를 위해서 왜 만드느냐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는 재료가 어디를 통해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해죠. 재료를 다룰 때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고요. 만들 때부터 먹는 이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해요. ‘이것을 이 정도 삶으면 맛있겠지?’, ‘이렇게 써는 것이 더 먹기 좋겠지?’ 이런 생각도 배려가 되니까요.

누가 다음 궁중음식 기능 전수자가 될지 궁금해요.

예전에는 가족으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잖아요. 뭐든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전수 받아서 발전시켜야 하죠. 제자들이 스물 몇 명 있어요. 전수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매뉴얼을 만들었어요. 굉장히 힘들었지만, 지금은 체계를 잡아놓은 상태고요. 그 걱정을 하다가도 ‘뭐 혼자 짊어져도 되겠지, 나도 했는데’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도 됐는데, 나도 쫓아서 했는데 그다음 주자도 하겠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조금 아쉬운 부분은 그들의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그만큼은 아닌 것 같아요. 제 마음은 급하지만, 제작들은 살아왔던 환경이 있기 때문에 제 마음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하는 거죠. 다 경험이 쌓여야 하는 거건데, 그런 것조차 제가 가르치는 거죠. 우선 반복을 통해 경험을 쌓고, 눈치도 있어야 하지요. 저는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서는 바라는 게 굉장히 많은 편이에요.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 ⓒ한복려

궁중요리를 배우려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해주신다면?

‘궁중음식을 만들어서 먹어야겠다’는 것보다는 문화적인 관점에서 음식과 자신이 하는 일을 연관 어 보는 건 어떨까요. 만약 작가라면, 음식에 관한 글을 쓸 때 궁중음식을 배운다면 음식에 대해 잘 표현할 수 있고, 독자들이 더 이해를 하지 않겠어요? 또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궁중음식의 색감이나 닮음새를 전달을 할 수도 있고요. 궁중음식을 배움으로써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을 그 안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하는 일을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봐요.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궁중음식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응용하고 대접을 할 수 있을까 는 노력도 하게 돼요. 그러기 위해 실제를 알아야 해요. 그 모태를 알아야 그 모태에서 조금 변형을 시킬 수 있거든요.

현재 계획하고 있는 일은.

지금은 성공에 대한 욕심이란 있을 수가 없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임무를 하는 과정이고, 그것이 잘 전해지는 걸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돌이켜보면 음식 연구는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갖고 있는 자료 중에서도 아직 외부에 발표를 하지 않은 것도 있어요. 혼자보다는 자료를 공유하고 함께 연구해서 만들어나가야죠. 아직도 제가 해야 할 것들이 있으니, 할 수 있는 만큼 연구를 계속 할 것 같아요.

50주년을 기점 삼아 정리를 잘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교단에 서면 ‘더 잘 가르쳐야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겨요. 가끔 ‘어머니가 계실 때 좀 물어봤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후배들한테는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전수하는 데 조금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