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경 사회심리학자

집에서 잘 쓰던 톱이 망가졌다. 여러 해 썼더니 톱날과 손잡이의 연결 부위가 닳아서 부러져 버렸다. 시골 살림에서 나무 다듬기나 소소한 일에 남편이 워낙 애용하던 것이라, 어떻게 고칠 방법이 없을까 해 철물점에 들고 갔다.

문 앞에서 만난 젊은 남자 직원에게 보여주었더니 난감한 얼굴을 하며 이건 못 고친다고 한다. 내가 봐도 그럴 것 같긴 하다. 별로 비싼 물건도 아닌데 새로 하나 사야 할까보다 싶었다. 한데 포기를 모르는 남편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사장님에게 톱을 보이며 상의를 했다. 그는 고장난 물건을 이모저모로 들여다보더니, 가게 뒤로 가지고 가서 몇 분만에 뚝딱 고쳐 가지고 나왔다. 맥가이버다! 부러진 부위에 고정할 수 있는 적당한 지지판을 대고 꼭 맞는 크기의 나사를 찾아 단단히 조여 끄떡없이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매우 존경하는 이 사장님은 나이가 70 정도인 여자 분이다. 톱을 건네 주면서 쿨하게 하는 말씀, “보기에 새 것 같지는 않지만 쓰는 데는 지장 없어요. 한동안 잘 쓰실 거예요. 아까운데 쓰는 데까지 써야죠.” 나의 존경심은 오늘도 두터워진다.

철물점에는 수많은 사람이 갖가지 필요를 가지고 드나드는데 사장님은 모든 손님들에게 친절한 상담자가 되어준다. 농촌의 철물점은 구멍가게가 아니다. 수천 가지는 족히 넘을 물건을 취급하는 전문 백화점이다. 넓은 뜰에 커다란 플라스틱 배수관, 쇠파이프, 철망, 사다리, 물통, 산책로용 마포로부터 시작해서 농사용 손수레, 삽, 곡괭이, 갈퀴, 호미 등이 쌓여있고, 창고형 건물 안에는 망치, 렌치, 드라이버, 톱, 갖은 모양 온갖 크기의 못, 경첩 등이 종류 별로 전시되어 있고, 수도꼭지에서 강아지 산책줄까지 없는 게 없다. 내 밭농사에 필수품인 엉덩이에 달고 다니는 방석도 여기서 샀다. (노년기 무릎 보호에 꼭 필요한 이 방석은 발명상을 받아야 할 물건이다!) 사장님은 이 모든 물건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기억해서 척척 찾아주고 사용방법을 가르쳐줌은 물론 때론 장단점까지 비교해 준다. 가격도 거의 다 외운다. 경이로운 기억력이다. 그 두뇌의 조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톱 수리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망가진 부위의 구조를 파악하고 적절한 부품을 선택해서 기술적으로 조합해야 하므로, 알고 보면 많은 지식과 기술을 종합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 부러진 톱을 이만큼 고쳐낼 수 있는 사람이 천 명에 하나나 될까? 평소에 공구를 잘 다루고 싶으나 지식도 기술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이 맥가이버 할머니에게 존경을 바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는 사소한 물건도 소중히 여기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고장 난 물건을 들고 가면 “어디 봅시다”하고 어떻게든 고쳐 보려고 노력하니 환경보호가 절로 된다. 버릴 뻔한 물건을 사장님 덕에 고쳐 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새 걸 사야 된다고 하면 당연히 살 것인데, 새 물건을 팔아 돈 벌 생각을 하기 보다 헌 물건을 고쳐 쓰도록 도와준다.

인심이 후해서 간단한 수리는 무료다. 아끼던 물건도 고치고 단골 대접까지 받으니 가게 문을 나올 때는 싱글벙글 할 수밖에. 가끔은 괜히라도 들러서 사장님 얼굴도 보고 가게도 한 바퀴 둘러보고 싶다. 세상에는 이런 멋진 할머니들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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