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잇따라 여성·성평등 정책 공약을 내놓으며 정책 경쟁을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두 후보에게 핀셋 성평등 정책을 넘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전 대표는 대권주자 가운데 가장 먼저 여성·성평등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여성의 생애주기를 살펴 안전·건강권을 강조한 핀셋 정책을 냈다. 이 전 대표는 △변형 카메라 구매 이력 관리제 도입 △데이트폭력 처벌 강화 등 ‘여성 안심 패키지’라고 이름 붙은 안전 공약부터 △자궁경부암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무료접종 연령 확대 △암 경험 여성 사회 복귀 국가책임제를 약속했다.
이 지사는 여성의 안전·고용·돌봄 등 그동안 여성계에서 요구해온 굵직한 의제들을 정책으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육아휴직 확대 △젠더폭력 대응 체계 구축 △고용 성평등 강화 △성과 재생산 건강권 보장 등이 있다. 특히 이 지사는 여성 청소년 건강을 위해 11~18세 모든 여성에게 생리대 구입비를 지급하고, 여성 청소년 건강검진 항목에 생식건강 초음파 항목도 추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들 공약의 공통점은 젠더 폭력에 대한 대응이다. 이 전 대표는 ‘변형 카메라 구매 이력 관리제’를 통해 불법 촬영을 방지하고 범죄 악용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으로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향한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 지사는 ‘경기도 디지털 성범죄자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해 피해자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고 데이트 폭력 수사 과정에서 신변안전 조치의 대상을 확대해 피해자를 적극 보호하겠다고 말했다.
“성평등 국가에 대한 청사진 안 보여”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공약에 대해 미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은 부재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여성들이 차별 받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중에서 고용, 임금, 승진 등에 대한 대책이 없다”며 “또한 실질적 여성 정치 대표성을 제고해서 성평등 국회를 만들겠다는 지점도 한 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 유권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17년 남녀 동수 내각 인선을 단행해 대선 공약을 이행했다”며 “소속 정당인 여당도 총선을 대비해 절반은 여성을 공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 유권자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공약을 제시해야 한다”며 “지금의 공약은 각론에만 치우쳐져 시대정신과도 맞지 않다”고 평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도 “두 후보 모두 여성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한국 사회에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 지 전체적인 진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두 후보가 생각하는 성평등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철학을 제시해야 한다”며 “한국 사회 성별 격차는 핀셋 정책으로 해결될 수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여성대표성 문제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다”며 “여성의 최종의사결정권한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남성이 함께 변하는 가능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은 채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범주화하고 있다”며 “‘남성의 성평등 의식 수준 확대를 통해 여성의 삶을 존중해 주는 나라’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 지사의 재생산권·임신노동자 보장 공약에 “결국 여성을 재생산해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는 결과를 낳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며 “여성노동자의 임신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보편적으로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겠다는 공약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디지털 성범죄, 촬영물 중심 아닌 온라인 전반 아울러야”
두 후보가 함께 제시한 디지털 성범죄 정책에서도 미시적 관점에서 고안됐다는 평도 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두 후보는 디지털 성범죄를 촬영물 중심이 아닌 온라인 공간 전반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사무국장은 이 전 대표의 공약에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답습한다”며 “불법 촬영을 근절하기 위해 카메라를 규제하겠다는 것은 미시적 관점의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의 공약에는 “경기도 지원 센터 모델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으나 조금 더 중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비전이 필요하다”며 “성과 중심의 센터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각 지자체 센터가 아닌 중앙정부 안에서 허브 기능을 하는 센터를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