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이면 나는 봉숭아 물을 들인다. 옥수수 수확도 끝나고 들깨도 심어놓고 마음 한가해진 하루 날잡아 봉숭아 잎과 꽃을 따서 깨끗이 씻어 체에 바쳐둔다. 물기가 다 날아가게 두었다가 해야 나중에 물이 덜 흐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편편한 받침돌과 절구용 작은 돌을 주어와 깨끗이 씻어둔 물기 쏙 빠진 잎과 꽃을 받침돌 위에 놓고 백반을 섞어 콩콩콩 찧어 일단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한여름 더운 날 손을 계속 써야 하는 낮에 작업을 하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직전 작업을 시작하는게 좋다. 우선 랩을 가로 세로 5센티* 8센티 정도로 다섯 조각, 스카치 테이프도 한 8센티 길이로 다섯 개 잘라 테이블 끝에 붙여 두면 일단 준비 완료. 준비한 봉숭아를 손톱 위에 올려놓고 랩으로 손톱을 돌돌 말아 스카치 테이프로 단단하게 감아 붙인다.

“엣날엔 어른들이 봉숭아물 들이면 뱀한테 물리지 않는다고 했어.”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봉숭아물을 들일 때 매염제로 백반을 넣기 때문이다. 옛날 캠핑 가서 텐트 주면에 백반을 뿌려두면 뱀이 오지 않는다고 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시골에서 언제나 겁나는 것이 뱀이다.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혐오대상이다.

어쨌든 작업 개시, 두 손을 한 번에 하면 한밤중에 화장실 갈 때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 오늘은 왼 손 내일은 오른 손 나누어 한다. 매년 해본 솜씨라 다섯 손가락 작업이 훌륭하게 마감되었다. 일단 잠자리에 들었으나 행여 봉숭아 빤간 물이 흘러 시트를 물들일까 염려되어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하자니 아무래도 편안한 잠이 들지 않는다. 들락날락하는 잠 끝에 어느덧 새벽 동이 튼다.

“됐다!”

가슴이 도근도근... 랩을 풀고 나니 에고 예뻐라~

이틀에 걸친 작업 끝에 열 손가락이 주홍빛으로 곱게 물들어졌다. 빛이 더 곱게 되려면 한 번 더 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3일 후 다시 한 번 작업에 들어가 완성하니 빛은 더욱 깊고 짙어져 정말 예쁘다.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작년에는 너무 일찍 물들이는 바람에 첫눈 올 때까지 손톱 자르지 않고 버티느라고 애 많이 썼다. 그래서 올해는 8월을 훨씬 넘겨 느즈막하게 물들이는 작업을 했으니 첫눈 올 때까지는 손톱 끝에 빨간 물이 남을 것 같다.

나는 봉숭아 물 곱게 든 손을 블러그에 올리려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었다. 손톱과 손가락이 길쭉하게 보이기 위해 카메라 각도를 맞추느라 무척 공들였다. 기왕이면 예쁜 손 곱게 보이려고 포토샾으로 수정 작업도 했다. 그리고 겨우 뽑아낸 사진이 길쭉길쭉 꽤 맘에 들었다. 블러그 작업을 마치고 동네를 한바퀴 돌며 손톱을 자랑한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들 이렇게 자랑하고 싶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내 손톱을 자랑하면서 손을 팔랑거린다. 마침 깨 밭에 가는 영희 엄마에게 다시 한 번 손톱을 보여 주며 유혹한다.

“영희 엄마, 봉숭아 물들여줄까?”

“어머나, 봉숭아 물들였네... 예쁘다.”

“내가 해 줄께...”

“이 손에다 물 들이면 뭐해유... 손톱이라고 있간디?”

영희 엄마가 내민 손톱은 일로 닳고 닳아 내 손톱의 반 토막도 안 되었다. 손톱을 깍아본 기억도 없단다. 일하느라 자연적으로 닳기 때문이란다.

“풀각시 손은 참 곱네. 나도 들이고는 싶은데...”

사실 내 손은 참 밉게 생겼다. 손가락도 굵고 마디도 굵고... 항상 남 앞에 내놓기가 좀 부끄러웠다. 늘 하얗고 긴 손가락이 부럽기도 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 할 때는 품위유지(?)를 위하여 가끔 백화점 네일 숍에 가서 손톱손질을 받곤 했다. 기분이 좀 다운 될 때에도 네일 숍에 앉아 손톱을 다듬고 맘에 드는 색의 매니큐어도 한 번 칠해 보며 기분을 풀기도 했다. 한 번에 몇 만 원이 넘는 꽤 센 비용이었지만 그래도 서비스를 받고 나면 손이 조금은 고와진 것 같아 며칠은 상당히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영희 엄마 앞에서 내 손을 뒤로 숨긴다. 너무나 고은 내 손이 부끄러워서... 

박효신<br>
박효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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