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시그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공개면접에서 홍준표 예비후보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9일 서울 금천구 즐스튜디오에서 열린 '국민시그널'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공개면접에서 홍준표 예비후보가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그런데 우리는 흥분제를 구해온 하숙집 동료로부터 그 흥분제는 돼지 수컷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암퇘지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을 나중에 듣게 되었다. 장난삼아 듣지도 않는 흥분제를 구해준 것이었다.”

2017년 대선정국 때 논란거리가 되었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자서전에 나오는 ‘돼지 발정제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뒤늦게 이 내용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확산되자 홍 의원은 “자서전의 특성상 전해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관여한 것처럼 썼다”고 해명했지만, 대체 어떤 사고를 가졌길래 그런 얘기를 무용담 늘어놓듯이 할 수 있냐는 비난은 쏟아졌다. 결국 잘못된 행동임을 알고 반성중이라며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과거 있었던 성폭행 모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대선후보의 모습은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4년 반의 시간이 지났고 다시 대선정국이 돌아왔다. 그때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홍 의원도 다시 당 경선에 출마했고, ‘무야홍’(무조건 야당후보는 홍준표)이라는 구호도 들려온다. 실제로 최근 들어 그의 지지율이 급상승해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앞서는 골든크로스가 발생했다는 얘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물론 민주당 지지층에 의한 역선택의 영향이 커보이니 지속가능성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가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제1야당의 양강 후보로 부상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의 여성관, 그리고 성차별적 사고들은 이제 얼마나 달라졌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본인 자신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는 정치인이기에 그것은 중요하게 따져물어야 할 문제다.

최근 있었던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에 대한 ‘국민면접’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었다. "혹시 예전에 여성비하 막말, '돼지발정제' 등 안 좋은 이미지가 남아 '홍준표는 차마 못 찍겠다'가 많은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홍 의원은 주저없이 "그렇습니다"라고 답해 오히려 면접관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에서 전해지는 것은 자신의 여성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기 보다는 더 이상 지적할 거리를 남기지 않는 능수능란한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과거 그가 쏟아냈던 여성비하와 성차별적 말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대 계집애들 싫어한다. 꼴 같잖은 게 대들어서 패버리고 싶다." (2011년 대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의 발언)

“거울보고 분칠이나 하고 화장이나 하는 최고위원은 이번 전대에서 뽑아서는 안 된다.”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때 나경원 후보를 겨냥한 발언)

“집사람에게 그런 얘기를 한다. 남자가 하는 일이 있고, 여자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하늘이 정해놓은 건데, 여자가 하는 걸 남자한테 시키면 안 된다….. (설거지나 빨래는) 절대 안 한다. 하면 안 된다.” (2017년 YTN 방송)

"주막집 주모의 푸념 같은 것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 “성희롱을 할만한 사람한테 해야지. (2017년 류여해 최고위원을 겨냥한 발언)

이 가운데는 사과를 한 발언도 있고, 배상책임 판결이 내려진 발언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일은 아니다. 홍 의원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시 나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숱한 여성비하와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지금의 생각은 무엇인지, 그것부터 분명히 하는 것이 국민의 절반인 여성 유권자들에 대한 예의이다. 그런데 수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퉁치고 지나가는 그의 모습에서는 진정한 반성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비단 홍준표 의원만을 향한 주문은 아닐 수 있다. 각 진영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유난히도 큰 대선정국이지만,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진화된 비전들은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먼저 경선을 치르고 있는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잇따라 성평등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미시적인 개별 공약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아직 경선 워밍업 단계인 국민의힘이나 다른 야당들에서도 눈에 띄는 대안마련은 보이지 않는다. 진영정치만 격해지고, 젠더정치는 실종되는 대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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