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정치 선 넘기] 퀴어문화축제 광장에서 대통령이 우릴 반길 그 날
[2030 정치 선 넘기] 퀴어문화축제 광장에서 대통령이 우릴 반길 그 날
  • 조혜민 정의당 전국위원
  • 승인 2021.09.17 09:09
  • 수정 2021-09-17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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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함께 행진'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27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앞에서부터 청계천 광장까지 도심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모두 함께 행진'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6월27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앞에서부터 청계천 광장까지 도심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몇 달 전, 하루 동안 스킨스쿠버를 체험해보는 수업을 신청했다. 물 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수영을 즐겨본 기억이 없다. 그동안 잠수를 했던 기억은 모두 ‘어쩌다 보니’ 물에 빠져서 허우적허우적했던 순간들이 전부였다. 튜브를 끼고 신나게 놀다가 뒤집혀서 물 안을 강제로 봤던 기억, 그래서 물을 잔뜩 먹고 나와서 헉헉 거리며 간신히 살았다며 안도했던 기억이었다. 그랬던 내가 그런데도 스킨스쿠버를 통해 잠수해보고 싶었던 건 ‘할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두기보단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그래야 잠수를 기본으로 한 그 이상의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그렇게 하루 날을 잡았다. 스쿠버에 대한 교육을 받고 실내 수영장에서 다양한 잠수를 시도해보다가 5m 수중으로 내려가 보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잠수를 했고, 물속에서 30분 동안 있었다. 어땠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나는 “저승길을 보고 왔어”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내겐 그 시간은 꽤 두려운 시간이었다. 코치해주시는 선생님도 있었고, 호흡할 수 있는 장치도 있었지만, 그간 가지고 있던 공포증을 한꺼번에 떨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수중에서 위를 쳐다보았을 때, 자유로이 헤엄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로 행복하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건 처음이었다. 그날의 경험은 내게 더 큰 꿈을 꾸게 했다. 수영장이 아닌 바다를 가보고 싶다, 그 안을 보고 싶다, 자유롭게 헤엄쳐보고 싶다 와 같은 꿈 말이다. 아마 내가 그날 경험하지 않았다면 평생 가질 생각조차 못 했을, 내 꿈의 ‘기준선’이었다.

돌아보면 결과가 무엇이든 우선 경험을 해보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상상하게 하는 기준이 되었다.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며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연애하며 내게 맞는, 함께 하고픈 사람을 그려 나가는 일과 같은 것 말이다.

정당 활동도 내겐 그러했다. ‘할 수 있구나’, ‘기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준 지난 대선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많은 후보가 너도나도 ‘페미니스트 후보’라고 말하곤 다녔지만 성소수자 인권 앞엔 ‘나중에’라고 외치거나 혹은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히고, 성차별적인 발언들에 ‘과거의 일’ 운운하며 선 긋기에 바쁜 모습들에 나는 절망했다.

그때, 내게 정치운동의 가능성과 정의당 당원으로서 자부심을 줬던 순간은 당시 우리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의 1분 발언이었다.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들을 수 없었던 말을 했던 순간이었다. 당시 생방송 토론회를 보고 있던 난 처음으로 상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토론회에 나올 수 있구나’, ‘우리도 집권할 수 있구나’와 같은 것들 말이다. 1분 발언은 남성화된 현실 정치판에 기대할 수 없었던 나와 같던 이들을 일으켜 세운 순간이었고, 두려움이 가득했지만 그럼에도 더 많은 것을 상상하게 했던 실내 수영장에서의 첫 잠수와도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2022년의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1분 발언 이후, 유의미한 지지율을 얻었지만 낙선했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진 못했다. 여러 지역에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수 있었지만 많은 성소수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분명 변하고 있는 걸까 싶은 마음이 들었고 자연스레 지난 대선의 순간을 잊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튜브 ‘권손징악’에 나온 한 대선후보의 인터뷰를 보았다. 대통령이 되어 여성의 날과 퀴어문화축제에 누굴 부르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내가 대통령으로서 광장에 나가 인사하고 싶다”, “여성과 성소수자를 청와대로 부르지 않겠다. 내가 광장으로 가겠다”는 이정미 후보의 답변이었다. 지난 2019년, 심상정 후보의 1분 발언의 바통을 이어받아 우리의 세상을 상상하게 한 말이었다.

그 순간 그런 마음이 들었다. 지난 대선 당시에 경험했던 것보다 더 큰 꿈을 꿔도 된다고, 그 정도에 만족하지 않아도 된다고. 지금 2021년 ‘기준선’은 성소수자의 정체성 이해와 인정을 넘어, 환대하며 광장에 나올 대통령을 기대해도 된다고 말이다.

지난 대선 당시 ‘페미니스트 후보’라고 말하던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그런데도’ 페미니스트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우리가 마주했던 현실이었다면 지금은 대한민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그리고 퀴어문화축제 광장에 참여하는 대통령을 그려봐도 되지 않을까.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
조혜민 정의당 전국위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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