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검거·신고 수 꾸준히 증가
가정폭력법으로 데이트폭력 막아야

절반 이상의 여성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뉴시스·여성신문
기사와 무관한 사진. ⓒ뉴시스·여성신문

교제폭력(데이트폭력)이 여성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데이트폭력을 처벌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법조차 없다.

최근 30대 남성 A씨는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신과 말다툼을 하던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았다. 또 다른 30대 남성 B씨도 여자친구와 말다툼을 한 뒤 제주에서 오픈카를 몰다가 고의로 사고를 내 숨지게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살인 ‘교제살인’

데이트폭력은 연인이나 연인 사이였던 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일컫는 말로 교제폭력으로도 불린다. 과거엔 연인끼리의 사랑싸움으로 여겨졌으나 근래들어 남편이나 애인에 의한 ‘교제살인’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1~12월 언론에 보도된 관련 사건을 분석한 결과, 1년간 최소 228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배우자나 데이트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각각 45명과 48명이다. 일방적으로 교제나 성관계를 요구한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4명이다. 총 97명이 가까운 남성에게 살해 당했다.

지난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 1만9940건

데이트폭력 검거·신고 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다. 지난 5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9년 데이트폭력 검거 건수는 9858건이었다. 7237건이었던 2013년 대비 1.4배 증가했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데이트 폭력의 현실, 새롭게 읽기’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경찰청이 전국 자료로 집계한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는 1만9940건이다. 이는 1만4136건이 신고된 2017년과 비교할 때 41.1% 늘어난 수치다.

처벌은 집행유예나 벌금 등 솜방망이에 불과하다. 데이트 폭력은 주로 폭행·상해, 체포·감금·협박, 성폭력, 살인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10건 중 6~7건이 폭행·상해에 해당한다. 폭행죄일 경우 2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특히 폭행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 의사에 따라 가해자 처벌이 불가할 수 있다.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데이트폭력 처벌할 법이 없다

우리나라는 데이트폭력을 처벌할 수 있는 단일 법안도 없다. 국회에서는 데이트 폭력 방지법이 19대 국회부터 매년 발의되고 있으나 폐기와 계류를 반복했다. 21대 국회에서는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나 소관 상임위인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데이트폭력은 가정폭력처럼 경찰이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교제폭력 범죄도 가정폭력 범죄처럼 임시조치 등의 피해자 보호가 가능할 수 있도록 법 제2조 1항 가정구성원의 정의에 ‘서로 사귀었거나 사귀고 있는 교제 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했다.

“데이트폭력도 가정폭력법으로 한 번에 처벌해야”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단일법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가정폭력법에 데이트폭력을 막을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허 입법조사관은 “해외 입법 추세”라며 “별도의 단일법을 만들지 않고도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으로 한 번에 처벌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데이트폭력을 가정폭력 범죄로 벌 중이다. 미국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경찰이 가해자를 체포하는 의무체포제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2016년부터 신체적 폭력이 없는 강요·통제만으로도 최대 5년 형이 선고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일본은 2013년부터 교제 상대도 가정폭력 가해자와 같은 법률의 적용을 받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데이트폭력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 제고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 교수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스토킹처벌법)을 만들 때랑 유사한 것 같다”며 “제정까지 22년이나 걸린 스토킹처벌법은 사회적으로 ‘스토킹은 심각한 범죄’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10년 이상 걸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데이트폭력도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현재 가장 필요하다”며 “우리 사회의 법 감정, 법인식이 무엇인지에 따라 데이트폭력 관련 법은 단일법으로 엄격하게 만들어질지 혹은 가정폭력법에 포함시킬지 갈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