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피해자 얼굴·실명 공개 ‘울분’
군, 2018년 국방개혁 2.0서
여군 근무여건 보장 약속했으나
올해 육·해·공군서 연이어 성폭력 발생
전문가 “예방대응체계 구축돼야”

28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중사 아버지는 딸의 사진을 공개하며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면서라도 호소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할 수 있는 최후의 것을 전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신문
9월 28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추행 피해를 겪은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공군 이예람 중사 아버지가 딸의 사진을 공개했다. ⓒ진혜민 기자

올해 육·해·공군에서 잇따라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있지만 여군 인권은 제자리걸음이다. 군은 2018년 국방개혁 2.0 일환으로 여군 비중을 확대하고 근무 여건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으나 3년이 흐른 지금도 군 내에서 여군의 지위는 여전히 열악하다. 

성추행을 겪고난 뒤 지난 5월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 이예람 공군 중사의 부친은 최근 딸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특검 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방부가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사건수사를 지휘하고 있으나 부실수사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 유족들이 군을 불신하는 주된 이유는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부실 초동수사 의혹 관련자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한 데서 비롯됐다. 현재 공군 법무실장, 20비 군사경찰대대장 등 초동 수사 책임자들은 단 한 명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앞서 지난 9월7일 군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활동을 종료하며 수사 지휘·감독 관련 직무유기 혐의를 받는 공군 법무실장(준장)과 공군 고등검찰부장(중령) 등에 8명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했다. 심의위 운영지침상 국방부 검찰단은 심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고 있어 부실 초동수사 의혹 관련자들이 재판에 넘겨지지 않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군 인권센터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성역 없는 엄정 수사를 지시하고 국방부 장관이 창군 이래 특임군검사까지 임명하며 공군 수사 관계자들의 수사를 진행하게 했으나 모두 말 잔치에 불과한 상태가 된다”고 비판했다.  

성추행 피해 신고 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해 이번 주로 예정됐던 최종 수사 결과 발표는 다음 달로 연기됐다. 당초 국방부는 수사에 들어간 지 4개월 만인 29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8일 정례브리핑에서 '최종 수사 결과 발표가 왜 이달을 넘겼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마무리, 종결 작업이 다소 시일이 걸리고 정리할 문제들이 좀 있어 수사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군 내 성폭력 사건 처벌은 솜방망이

군 내 성폭력 관련자들이 어렵게 기소되더라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방부에서 받은 통계를 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군 형사사건으로 입건된 성범죄 사건 총 4936건 중 기소는 2173건(44%)이었다. 게다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박성준 민주당 의원이 국방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성범죄 사건의 각 군 군사법원에서 다룬 성범죄 재판 1708건 중 실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175건(10.2%)에 그쳤다. 이는 민간인들이 성범죄로 1심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비율(25.2%)보다 15.0% 포인트 낮은 수치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공군 중사 사건의 주요 의혹 대상자들의 통신영장도 군사법원에서 무더기로 기각됐다. 센터는 “수사과정에서 공군본부 법무실과 로펌 간 통화가 오간 정황이 확인돼 관련 혐의자들 간 통신 내역을 확보하고자 청구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군 수뇌부, 공군본부 법무실 등의 부실수사 연루 여부는 진상을 규명할 수 없게 됐다”며 “국방부는 뒤에서는 군사법원을 동원해 특임군검사의 수사를 방해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 내 성폭력전담기구가 있어야”

전문가들은 군 성폭력 예방대응체계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숙경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장은 군 내 성폭력 사건 발생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군의 폐쇄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만났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김 소장은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적 분위기와 군이라는 남성중심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을 만나면서 더 증폭됐다”며 “또 성추행을 해도 쉽게 풀려나는 군의 관행이 학습돼 군내 성폭력 사건이 되풀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해병대 대위로 퇴역한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국방부 내 성폭력전담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팀장은 “국방부 양성평등정책과에서 여군 인사, 일·가정양립, 성폭력 대응 등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국방부 내 성폭력전담기구가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폭력 사건을 민간에서 수사한다고 해도 피해자는 군에 있기 때문에 피해를 신고하고 군에 복귀할 때까지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더군다나 군 내 성희롱 사건은 기소대상이 아니고 조직 내에서 처벌하기 때문에 피해자를 관리할 수 있는 전담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 팀장은 여군의 양적 성장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군의 가부장적인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며 “여군의 양적 성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군의 하부구조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부구조에 여군이 매우 적다”며 “상급에 해당하는 여군을 의무적으로 할당을 해서라도 증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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