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9일에 실시되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7월12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마련된 접수처에서 직원들이 후보 등록 접수를 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내년 3월 9일에 실시되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자 등록이 시작된 7월12일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마련된 접수처에서 직원들이 후보 등록 접수를 받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150여 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큰일이다. 당선이 유력한 거대 양당의 후보와 캠프 구성원들의 면면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상황을 보면 엉망진창이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제각각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온라인에서 대리 전투를 치르고 있는 그룹들이 생산하고 있는 언어폭력은 선을 넘은 지 오래다. 그러나 각 집단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들을 부추기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현대 한국인들에게 대통령 직선제는 단순한 선거 이상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군부정권의 폭력에 목숨을 걸고 맞선 사람들,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용기를 낸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체육관에서 그들만의 선거들 통해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래되지 않은 30여년 전 이 땅은 그러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 있다. 그리 어렵게 쟁취한 선거제도를 망가트리고 시민들이 선거제를 불신하게 만든 원인 제공자 가운데 많은 사람이 민주화 운동 경력을 앞세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지난 총선에서 그저 자기 집단의 승리만을 위해 ‘위성 정당’사태를 만들어 선거제도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놓은 사람들, 그들에게 진보의 역사와 시민운동의 성과를 상납하며 국회의원이 되길 원했던 사람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1987년 6월 항쟁에서 일궈낸 시민들의 성과를 사적 이익으로 바꿨다.

2021년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은 지금의 집권 세력이 촛불 시민들의 가치를 조직 이기주의로 변질시키는 모습을 보면서도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용납했다. 조국, 안희정, 박원순 등 87년 체제를 대표해 온 명망가 그룹이 도덕적으로 파산하는 과정의 배신감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대의가 훼손되어선 안 된다는 이유로 눈감아 주었다. 갖가지 부정부패와 권력 남용이 사실로 드러나 뉘우치고 사과를 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대안부재의 선악 논리를 내세워 시민들을 협박할 때에도 아주 조금의 선의가 있을 것을 믿고 참아줬다. 그 결과 그들은 반성할 때를 놓쳤고, 국민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린 존재로 변해버렸다. 최선이 아닌 차악, 차악이 없으면 최악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한 번, 두 번 투표를 하는 30여년 사이 우리는 너무 많은 괴물을 이 땅에 만들어 놓았다. 그래놓고선 괴물들을 처치해 줄 용사가 나타났다는 허황된 풍문을 따라 또 투표장으로 향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이 낫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새 체제를 열망하고 이룩한 그 용기는 어디로 사라졌냐고 묻고 싶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살아선 안 될 일이다. 조폭과 양아치 중에 대통령을 뽑아야 하나? 우린 더 나은 대통령을 세울 권리가 있다.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분법을 뛰어넘은 연맹 단위가 나와야 한다.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에 단호히 대응하고, 위법을 저지르지 않으면서 국민을 위해 헌신할 새로운 정치 집단 말이다. 이른바 독일녹색당이라고 불리어지는 독일의 동맹90(Bündnis 90)이 그랬다. 그들은 68혁명의 열기를 이어받아 신사회운동그룹 간의 다종 연대와 동맹을 꾸렸고 지금은 제2당을 노리는 무시할 수 없는 정당이 되어있다. 이들은 연대조합 과정에 따라오는 논쟁과 분란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다원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공존하기 위해 연합정부의 원리, 투표에서의 투명성과 새로운 정당운영방식, 조직 내 독점 권력의 방지 등 여러 고민을 이어갔고 전현직 의원, 운동그룹, 학자그룹, 예술가, 시민 개개인 할 것 없이 동맹단위에 힘을 보탰다. 포데모스나 오성운동 등 최근 해외의 제3세력도 이질적인 존재들의 연대 속에서 탄생했다.

코로나로 벼랑 끝에 몰린 시민들이 목숨을 끊고, 성평등을 비롯한 불평등은 극에 달했고, 기후재앙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는 장이어야 한다. 선거 보이콧은 그저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행동일 뿐이다. 새벽은 어둠 속을 걷는 이들의 발끝에서 열린다. 진보와 보수라는 껍데기만 남은 이분법을 넘는 새로운 대안적 정치 동맹의 출현이 절실하다. 좌우의 날개로 나는 새처럼, 진정한 진보, 보수의 정치적 동맹은 땅에 떨어진 민주공화제의 가치를 들어 올릴 것이다. 지선이 대선 3개월 뒤라며 각각 분할된 채로 거대 양당과 지역구 조율부터 생각하는 건 단기적 성과에 그칠 뿐이다. 당당한 패배는 결코 그 의미가 소실되지 않는다. 아니, 그 길이야말로 정치 변화를 향한 승리의 시작이다. 1987년의 시민들이 우리에게 직선제라는 선물을 주었듯이, 우리도 30여 년 뒤의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의 선거를 안겨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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