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화장실 불법촬영물 유포하겠다” 여성 불안 이용한 협박메일 확산
[단독] “화장실 불법촬영물 유포하겠다” 여성 불안 이용한 협박메일 확산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1.10.06 14:45
  • 수정 2021-10-06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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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폭력이 ‘피싱범죄’ 도구로
변호사 “촬영물 존재·유포 여부
몰라 더 불안… 협박죄에 해당”
대구 중구 여성 보안관들이 중구청 내 화장실에서 특수장비를 이용해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대구 중구 여성 보안관들이 중구청 내 화장실에서 특수장비를 이용해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뉴시스

“이 편지엔 널 위한 정말 중요한 정보가 들어있어. 있지, 내가 네가 출연한 19금 영상을 확보했거든.”

지난 4일 새벽 5시45분. 회사메일로 기자에게 이상한 편지가 도착했다. 제목부터 이상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예쁜 너에게’. 제목이 같은 이메일이 4통이나 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클릭한 이메일은 가관이었다. 글쓴이는 “48시간 내에 비트코인으로 220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공중 화장실에서 찍은 불법촬영물을 가족과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자신이 어떻게 불법촬영 범죄를 저질렀는지 상세히 진술하기 시작했다.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공중 화장실에 3대의 HD카메라를 설치했고 카메라는 블루투스 기기와 연동돼 있어 내 연락처를 특정할 수 있었으며, 스마트폰에 있는 지인들의 연락처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는 오줌을 싸기 전에 모든 화장실 칸에 카메라가 있는지 꼭 확인하라”는 협박성 당부의 말로 마무리했다.

“화장실에서 날 찍었다고?” 처음 이메일을 읽고는 황당했다. 구글 번역기를 돌린 듯한 어색한 말투로 길게 끄적인 스팸메일이 우스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돈을 뜯어내고 싶다고 불법촬영물을 빌미로 협박하냐. 그것도 공중 화장실 불법촬영을!” 게다가 협박 메일을 받은 사람은 기자 한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더쿠’, 트위터에도 똑같은 내용의 이메일이 확산되고 있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지난 4일 기자가 받은 불법촬영 유포 협박 메일 일부. ⓒ여성신문
지난 4일 기자가 받은 불법촬영 유포 협박 메일 일부. ⓒ여성신문

“공중 화장실 불법촬영물 사고파는 나라, 한국 유일”

공중 화장실 불법촬영은 유독 한국에서 성행하는 디지털성범죄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 6월 한국 사회만이 갖는 특이한 불법촬영 문제의 심각성을 보고서를 통해 지적했다.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의 디지털성범죄’라는 제목의 보고서에는 처참한 한국의 디지털성범죄 실태가 고스란히 담겼다.

보고서를 담당한 HRW 여성권리국 공동디렉터 헤더 바는 인터뷰를 통해 “공중 화장실이나 여자 탈의실 불법촬영이 유행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며 “그런 걸 담은 촬영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돼 있는 국가도 한국 말고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보고서에는 시계, 계산기, 옷걸이, 머그잔 등 일상용품으로 위장한 변형카메라 문제도 담고 있다. 변형카메라로 화장실 등에서 불법촬영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불법촬영 범죄 건수는 5만1000여건에 달한다. 최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초소형 카메라 판매 금지 해주십시오’ 청원글은 한 달 동안 23만명 이상이 동의해 정부 답변을 받기도 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2018년 5월 19일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출구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여성신문 

젠더폭력을 피싱범죄 도구로 이용하는 범죄자들

이번 협박메일은 공중 화장실 불법촬영이라는 한국 특유의 디지털성범죄를 도구로 한국 여성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돈을 뜯어내려는 ‘피싱범죄’라는 얘기다.

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젠더폭력이 피싱범죄의 도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법촬영물을 빌미로 유포 협박을 하는 방식은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었던 가해의 양태”라며 “여성의 신체이미지와 불법촬영물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어떻게 취급되는지, 영상이 유포됐을 때 피해자가 입는 타격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용하는 협박”이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로 디지털성폭력의 ‘불안’은 주요한 특성이다. 찍혔는지, 유포되는지 피해자가 스스로 인지할 수 없는 방식의 폭력이기 때문에 불안을 호소하게 되는데, 이 협박메일은 이런 여성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한 것”이라고 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보낸 피싱메일도 처벌할 수 있을까. 박수진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공중 화장실 불법촬영의 경우 실제로 찍혔는지, 어디서 찍혔는지 등 피해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워 피해자는 더 큰 불안을 느낄 수 있다”며 “불법촬영 행위와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고 촬영물 유포 후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입을 지도 명시하고 있다. 형법상 협박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봤다.

*피싱메일 대응법, 메일 열지 말고 대응 말아야

보안 업계에서는 불법촬영물, 사생활 영상 등을 언급하며 가짜 협박을 통해 비트코인 등을 메일로 요구하는 이런 범죄를 혹스(Hoax) 메일이라고도 부른다. 혹스 메일로 의심되는 메일은 일단 열지 않아야 한다. 해당 이메일 주소를 스팸으로 등록해놓는 것도 방법이다. 

효린 한사성 사무국장은 혹스 메일에 대해 “피싱범죄이기 때문에 협박의 내용이 사기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돈을 송금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돈을 보내면 상대는 더 큰 돈을 요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해당 메일을 받았다면 그냥 무시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혹스 메일로 인해 디지털성폭력에 대한 불안이 커졌다면 전문 상담기관에서 상담을 받을 것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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