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대표적 정치인...혈액암 재발 투병생활

5일 오후 서울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으로 출근하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 ⓒ뉴시스·여성신문
고(故) 이완구 전 국무총리ⓒ뉴시스·여성신문

충청권의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혔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14일 오전 7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 전 총리는 2012년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골수증을 진단받은 후 골수이식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가 최근 혈액암이 재발하며 투병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한때 ‘포스트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로 불릴 만큼 충청권의 대표 정치인으로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 원내대표로 의정활동을 했다. 이후 국무총리직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충남 홍성 출신인 고인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74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경제기획원에서 잠시 근무했다. 이후 치안 분야로 옮겨 31세 나이로 최연소 경찰서장과 충남·북지방경찰청장도 지냈다.

1995년 민자당에 입당하며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는 충남지역(청양·홍성)에서 유일하게 당선돼 주목을 받았다. 이어 16대 국회 재선도 성공해 신한국당 당대표 비서실장과 자민련 대변인, 원내총무, 사무총장 등 중책을 역임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충남지사에 당선됐으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하는 데 반발해 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

2012년 19대 총선으로 국회 입성을 노렸으나 그해 초 다발성 골수종 판정을 받았다. 이후 8개월간 골수이식과 항암치료 끝에 병마를 극복했다. 

이듬해 재보선에서 80%에 가까운 몰표를 받아 재기에 성공했으며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돼 화려하게 복귀했다. 

고인은 박근혜 정부의 두 번째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그러나 2015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불거진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얽혀 70일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정치 활동은 원로로 현안 관련 조언을 하는 데 그쳤고 정계에 복귀하지는 않았다.

지난해 총선 당시 자유한국당의 출마 제의에도 “세대교체와 함께 인재 충원의 기회를 열어주는 데 기여하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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