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신
그 뜨겁던 여름날 옥수수 베어낸 자리에 땀으로 목욕을 하며 들깨를 심었다. 심은 지 석 달 후 수확의 계절, 베어내고 털고 씻고 말리고. 이 일도 만만치 않다. ⓒ박효신

이틀 동안 마당에 널어 말린 들깨를 기름 짜러 방앗간에 가려고 자루에 담는다. 그 뜨겁던 여름날 옥수수 베어낸 자리에 땀으로 목욕을 하며 들깨를 심었다. 심은 지 석 달 후 수확의 계절, 베어내고 털고 씻고 말리고. 이 일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노동의 결실은 정말 아름답다. 힘든 기억은 저 멀리 도망가 버리고 그저 행복한 마음만 가득하다. 이리 해보니 들깨 한 알 지름 1㎜ 남짓, 작은 알 하나하나가 그리 소중할 수가 없다. 행여 몇 알이라도 땅에 떨어지면 일일이 한 알 한 알 다 주워 담게 된다.

방앗간엔 발 들여 놓을 틈도 없다. 이맘 때 방앗간은 대목이다. 고추 빻는 기계는 풀 가동되고 햅쌀 나오니 묵은 쌀 떡 해먹으려 들고 나온 아낙들 떡 뽑아대느라 왱왱 분주하고

“한참 기다려야 혀.”그러나 기다리는 시간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줌마가 쑥 잘라주는 가래떡 한 자루 얻어먹는 재미도 쏠쏠 하고… 드디어 들깨 볶는 기계에 나의 들깨가 들어간다.

잘 볶아진 들깨를 기름 짜는 기계에 넣으니 신기하게도 기름이 졸졸~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기계에 들어간 지 삼십 여 분… 드디어 나왔다. 사먹는 기름에선 상상 할 수 없는 진한 향이 번진다. 아직 따뜻한 기름병을 손으로 감싸니 진한 감동이 밀려 온다.

“그렇게 신기혀? 기름 처음 짜먹는 가베….”

이리보고 저리보고 연신 싱글벙글하는 나를 보고 방앗간 주인아줌마가 웃는다.

서울 살 때 우리 식구들은 들기름을 먹지 않았다. 이상한 향이 싫다고. 그런데 시골에서 직접 농사지은 들기름을 먹어보고는 ‘지금까지 마트에서 사먹은 들기름은 들기름이 아니었다’며 이제는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더 좋아한다.

“얼른 가서 들기름에 말려두었던 취나물 볶아 먹어야지.”

서둘러 집에 돌아와 깨 털고 수북히 쌓여 있던 들깨 죽쟁이에 불을 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르게 물결치던 밭이 휑하다.

불길 사그러들고 누렇게 변한 밭을 보며 쓸쓸해 하는 내게 흙이 말해 준다.

‘비워야 다시 채울 수 있다’고.

채우려 채우려만 했던 지난 날들. 시골로 내려오며 다짐했었다.

‘더 이상 가지려 하지 말자….’

그러나 여전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욕심들, 좋은 땅 보면 사고 싶고 좋은 집 보면 나도 그렇게 해놓고 살고 싶고…

날씨가 겨울로 접어드는 듯 쌀쌀하다. 따뜻한 불길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쓰잘데 없는 잡생각 박박 긁어내어 불길 속에 던져 넣는다. 

박효신<br>
박효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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