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창간 33주년을 보며
여성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또 한 여자로서 그동안 여성신문을 유지 존속시키는데 모든 열과 성을 다 하신 모든 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남성들이 중심이 되는 신문은 어디에나 수없이 많이 있고 특별할 것도 없지만 우리의 여성신문은 제가 알기로는 여성들이 창간하고 40년 가까이 유지발전해 온 세계적으로 유일한 인쇄 매체입니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해서 이제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큰 아름드리로 자란 나무, 그 나무에 깃들은 수많은 새들과 열매, 그리고 그 열매가 날아가서 새로 싹틔운 작은 나무들도 함께 보면서 감탄과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여성신문의 ‘눈’으로 세상보기
이런 감사의 마음은 여성운동을 지원하는 모든 이들이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만일 여성신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여성운동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짧은 지면에 다 열거할 수는 없어 떠오르는 몇 가지만 말해보자면 - 창간 초기부터 바로 오늘의 시점까지 여성신문사의 이름으로 대선 후보들에게 그들이 구상하는 여성정책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보도하는 역할을 과연 어떤 일반 매체가 담당하고 지면을 할애했을까? 어느 신문이 여성의 당 창당 움직임을 보도했을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는 정치인들의 관심끌기 전략에 맞서서 대응 논리를 제시하는 일반 매체는 몇이나 될까? ‘이야기 여성사’며 ‘나의 엄마 이야기’ 같은 시리즈 물이 기획되고 빛을 볼 수 있을까? 일반적 기준으로서는 관심을 두지도 않고 평가하지도 않는 예술, 창작물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소중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의 반 이상이 되는 여성농민의 애환을 담는 좌담회 등 여성신문의 시각을 대체할 매체가 과연 있을까?
성폭력 사건이며 미투 운동을, 여성단체 활동들, 여성경영자들, 각종 직종에서 겪는 여성들의 분투와 성공이야기, 각 지방자치 단체에서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영역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소개하는 지면은 우리 상상 이상의 반향을 일으켜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 일반 매체에서 일하는 여성 기자들과 필자들이 여성계의 동향을 읽고 이슈를 파악하는 통로로 여성신문을 애용하여 확산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역동적 신문으로
성역할 구분과 성별 분업을 고착시키기 보다는 끊임없이 변화를 촉구하는 여성주의적 시각을 담은 기사들은 피하고 싶은 자극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들은 까칠한, 뜬금없는, 급진적인 존재라고 일축하면서 거리를 두고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요즈음 증가하는 젊은 여성 독자들, 취재 대상들, 그리고 필자들은 더 깊은 사회구조적 변화와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여성신문을 이전보다 훨씬 더 역동적 신문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시대착오에 빠진 파워엘리트들은 (주로 남성들) 상대방을 공격할 때 ‘그만두고 집에 가서 애나 봐라’ 할지는 모릅니다. 바로 이런 사고방식과 언행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아 육아에 대한 사회적 가치 절하를 완전히 교정할 수 있을 때 오늘날과 같은 저출산 문제를 비롯한 많은 사회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혼신을 다해 여성신문을 키워가는 분들에게 더 희망사항을 말해도 된다면 - 비록 구름잡는 얘기로 들릴지라도 여성신문은 우리의 꿈을 키우는 장소로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성하는데 앞장서 달라는 부탁과, 아직 여성신문을 접하지 못한 미래의 독자들을 확장하기 위해 독자 1+1, 배가 캠페인이 새로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